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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Mar 04. 2022

2. 다시 마주하는 것들

캥페르 냄새, 건물, 친구들 



 여행도 아무런 보람이 없다. 왜냐하면 반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굳이 한 발자국이나마 움직여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방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된다. 만일 일체가 헛된 것이고 재빨리 지나버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조용히 앉아 있을지라도 기차를 타고 달리는 것보다도 더 빨리 여행을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여행을 회상하게 만들면 된다… 키에르케고르의 <반복> 중(309)


한국에서 일이 끝나고 집에서 잠에 들 때면 항상 이곳을 떠올렸다. 내가 있었던 곳들, 거리들, 순간순간들을. 


한국에 있는 동안 가장 후회했던 것이 있다면, 제대로 저장해둔 사진이 거의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스쳐가듯 찍은 풍경사진이나 거리사진도 없었다. 물론 구글에 검색하면 볼 수 있는 풍경들도 있지만 남이 찍어 남긴 사진과 스스로 남긴 사진이 주는 추억들은 전혀 다르다. 이번만큼은 모든 순간들, 지나가는 것들, 보았던 것들, 그리고 새롭게 보게 될 것들을 모두 하나하나 기록하리라 마음먹고 사진기를 들고 왔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사진도 좋지만 역시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더 오래 곁에 남는 것 같다. 




자, 다시 기차 안으로 돌아와서, 몇 분 후면 캥페르에 도착한다. 친구들이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불행하게도 내가 탄 기차는 2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큰 가방을 올리고 내리는데 남아있던 힘을 다 써버렸다. 역에서 에어비엔비까지는 꽤 거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스 탈지에 젖어있을 새가 없다. 


기차에서 내렸다. 캥페르의 날씨답게 비가 내린다. 부슬부슬 으스러지듯 스며드는 비가 내리는 이곳. 한국의 겨울보다 10도 이상 높은데도 습도가 높아 차가움이 몸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핑크색 풍선과 꽃다발을 들고 다가오는 친구들. 솔직히 이런 것까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조금 감동받았다. 내가 이들과 이렇게 친했던가, 이렇게까지 반겨줄 일인가 싶다. 이 작고 조용한 도시에 작은 이벤트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친구들을 다시 만나니 한국에선 버벅거리던 프랑스어가 언제 잊어버렸나는 듯이 술술 나오는 게 신기하다. 내 몸이, 혀가 이곳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듯이. 


역은 변한 게 없다. 친구들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멜리스의 머리카락이 좀 더 풍성해지고 밝아진 것 같고(일명 구름머리라고 부른다), 마리는 오른쪽 머리카락 한 부분을 탈색했다는 정도지 변한 게 없다. 역을 나오자마자 담배와 동전을 구걸하는 아저씨가 우리를 맞이한다. 멜리스는 방금 산 담배를 쿨하게 건네준다. 


역을 나와 짐을 끌며 길을 걷는다. 캥페르의 돌바닥, 여름방학을 맞히고 이곳에 돌아올 때면 항상 이 돌바닥에 여행가방 바퀴가 망가지곤 했다. 이번엔 튼튼한 바퀴를 가진 가방으로 준비했다. 덜덜 거리며 짐을 끌고 중심가를 향해 걷고 있다. 정신없이 주고받는 대화, 돌바닥에 드륵거리는 여행가방 바퀴소리와 눈앞을 흐리게 하는 비, 눈에 익는 펍 오켈리 Ceili, 카페 데 작 Café des Arts, 맛있는 카레집 Maraja, 캥페르 어디에서나 보이는 성당 Cathédrale Saint-Corentin과 옆으로 흐르는 강, 비에 젖은 풀냄새, 주황색 거리등, 익숙한 거리, 버스, 가게들. 모든 것이 뒤섞인다. 오랜 시간 비행 탓인지 술에 취한 것처럼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 보인다. 모든 소리가 크게 들린고 모든 빛이 사방에 비쳐 반사하는 것 같다. 상상했던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언제 내가 이곳을 떠나 있었냐는 듯이.   


중심가로 가다 보니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새로운 상점들이 생긴 게 눈에 띈다. 친구들 말로는 코로나 이후 많은 상점들이 가게를 닫았고 파리 사람들이 집을 사는 바람에 집값이 올랐으며 나름 안전했던 도시였던 캥페르의 밤은 조금 무서워졌다고 했다. 


에어비엔비를 잡은 곳이 생각보다 꽤나 높은 곳에 있다. 49 Rue de Douarnenez. 이곳에서 3일 정도 묵을 예정이다. 3일 묵는 것 치고는 센터에서 너무 멀리 있지 않나 싶다. 역에서부터 약 30분 정도를 걸어 에어비엔비에 도착했다.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씻겠다고 했다. 온몸에서 묵은 땀냄새가 난다!

마리와 멜리스가 선물해준 꽃다발과 풍선

마리가 자신의 집에 저녁을 준비해두었다고 한다. 치즈와 와인이 있을 거라 하니 얼른 씻고 마리네 집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얼른 씻고 마리네에 가야지. 


친구들이 떠나자 방에는 적막이 흐른다. 나는 이곳에 왜 돌아왔을까. 수도 없이 상상한 이 순간은 적막이 흐르고 조용하고 외롭다. 무엇을 바라고 왔던 걸까. 내가 계획한 것들이 모두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베를린으로 돌아간 키에르케고르, 이 여행이 단순한 반복으로 끝나지 않기를. 


Entre le plasir passé et la sensation présente s'interpose consatamment la nostalgie du souvenir, qui emphêche d'accueillir la nouveauté.

과거의 기쁨과 현재의 감각 사이에는 기억의 향수가 끊임없이 파고들어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방해한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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