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브 Mar 01. 2022

1. 반복의 여행을 시작하며

추억을 반복한다는 것, 프랑스 브레타뉴 지방으로 되돌아오다.




그 당시 논문 주제로 선택했던 들뢰즈의 반복과 차이, 키에르케고르의 반복.

28살, 나는 1년간 이 주제를 몸소 체험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래, 그곳에 다시 돌아가자.


“기대를 하려면 젊어져야 한다. 상기에도 젊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복을 원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기대만을 원하는 자는 비겁하다. 회상만을 원하는 자는 추잡하다. 그러나 반복을 원하는 자는 참된 인간이다. 그리고 반복이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분명히 의식하면 할수록, 그는 그만큼 깊이 있는 인간이 된다. 그러나 인생이 반복이고, 반복이야말로 인생의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자이고, 어차피 면할 길이 없는 운명 속에서 자멸할 수밖에 없다.”  

키에르케고르의 <반복> 중(233-234)





네덜란드 경유 포함 대략 18시간의 비행을 끝마치고 파리에 도착했다. 샤를 드골 기차역에서 바로 브레따뉴로 가는 기차를 끊었다. 파리에 대한 낭만이나 추억이 없는 게 부끄럽진 않다. 


공항 기차역에서 버려진 가방 하나가 발견돼 1시간 정도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지만 다행히 기차는 연착되지 않고 재 시간에 도착해주었다. 6시간 정도 후면 캥페르에 도착한다. 어떤 기분이 나를 맞이할까. 






캥페르 Quimper, 프랑스 브레타뉴 지역의 소도시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20살부터 25살을 보냈다.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친구를 만들고, 술을 마시고, 사랑도 했다. 이 동화 같아 보이는 도시에는 노숙자도 있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정신병자도 있고 공원에서 마약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고 구석에는 뜨거운 사랑을 하는 청년들이 있다.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바캉스를 즐기러 온 여행객들이 있고 은퇴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다. 



보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 직원과 30분 동안 싸우는 어르신이 있고 담배를 구걸하는 이와 기꺼이 담배를 말아주는 학생들도 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장을 보는 사람들과 토요일 아침 신선한 치즈를 사러가는 아줌마와 초밥을 파는 중국인이 있다. 프랑스인과 결혼한 베트남 여자도 있고 한껏 멋을 부리고 클럽에 가는 대학생들이 있다.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약 2년 반 동안 평범하게 일했다. 유학원에서 일하고 가방 만드는 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다. 끊임없이 이곳을 떠올렸다. 캥페르, 친구들, 사랑했던 사람. 


28살이 되고 퇴사와 동시에 이곳에 다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1년 프랑스에 머물 수 있는 비자를 받았다. 

무엇을 할지 큰 가닥만 추상적으로 잡아 두고 무작정 이곳에 돌아왔다. 더 이상 소속된 곳이 없다는 것과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사라진 것, 그리고 28살, 친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캐리어를 쌓아가는 동안 나는 이곳에 있을 거라는 것이 순간순간 불안하게 만든다. 


기차는 파리에서 떠나 브레타뉴를 향해 가고 있다. 불안함을 잊기 위해 일렉트로닉 노래를 틀고 흥분되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창문에 지나가는 풍경이 늘 그랬듯 평화롭고 고요하다. 내가 정말로 이곳에 돌아온 걸까? 


한국에 있을 때 이 풍경을 자주 상상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프랑스에 돌아와 브레타뉴를 향해 가는 기차를 타며 보는 풍경, "이곳에 오기까지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니..." 라며 눈물을 흘리는 상상을 했는데 현실은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나 익숙해 언제 내가 한국에 있었던 걸까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브레따뉴 지역의 Rennes도시에 기차가 도착하자 바로 먹구름이 하늘을 덮은 것이 보인다. 아 이건 잊고 있었군, 브레따뉴 지역은 질리도록 비가 많이 온다는 걸. 상상 속 과거는 항상 달콤하다. 상상 속 브레따뉴는 화창했지만, 현실의 브레따뉴는 늘 비가 오고 구름이 많고 바람이 분다. 


곧 기차가 캥페르에 도착한다.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결국 내 고집으로 이곳에 돌아오고 말았구나. 아직 캥페르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역에서 나를 기다린다고 했다. 조금이나마 두근거린다. 




Instagram @yoon_yves / @magazine_picnic 

Blog https://blog.naver.com/heonzi

Contact heonzi123@gmail.com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