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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Mar 19. 2022

5. 고독은 늘 새롭다

프랑스 공동생활 Colocation을 시작하다


에어비앤비를 이틀 정도 연장해 총 5일 정도 머문 것 같다. 이틀 동안은 한국에서 미쳐 끝내지 못한 작업을 끝내느라 밖에 나가지 못했다. 물론 나갈 날씨가 못되었다. 이틀 내내 비가 오고 엄청난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가지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무척 외로웠다. 3일 연속으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일까, 혼자인게 이렇게 어색할 수 있을까. 


 에어비엔비 생활을 종료하고 아는 친구의 도움으로 친구의 친구네 집에서 15일 정도를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짐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지쳐있었는데 드디어 잠깐의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겠구나. 애초에 집을 알아보고 돌아왔었어야 했지만 외국인의 신분으로 학생이 아닌 이상 직업과 월급이 없다면 집을 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나마 이곳이 파리 같은 큰 도시가 아니기에 운이 좋다면 프랑스 보증인이 없어도 몇 달치 보증금만 내면 외국인을 받아주는 집주인들을 종종 만날 수 있어 이것만 믿고 프랑스에 돌아왔다. 이곳에 잠시 머무르면서 정착할 집을 찾아봐야겠다. 그렇다고 캥페르에 얼마나 머무르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집을 찾는 것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에서는 친구들과 집을 나눠 쓰는 Colocation (꼴로까시옹)이 매우 흔한 일이다. 각자의 방을 두고 거실, 주방, 화장실 등을 나눠 쓴다. 보통 2명, 3명 많게는 집의 크기에 따라서 5명 이상이 같이 살기도 한다. 보통 개인 스튜디오의 월세가 지방은 400-700유로 정도, 파리는 1000유로가 훌쩍 넘기 때문에 혼자 살면서 모든 월세와 전기세, 인터넷, 물세를 다 감당하는 것보다는 같이 살면서 나눠 내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일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은 공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유학 기간 중에는 꼴 로까 시옹은 엄두도 못 냈다. 나는 개인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인간관계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사람을 너무 오래, 자주 만나면 반드시 하루 이틀 정도는 온전히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고갈된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 5년간의 유학기간 동안 개인 스튜디오에 지내면서 이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라 단정 지었었다. 고독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온전히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나는 누군가와 쉽게 친해지거나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데 항상 어려움을 느꼈다. 사회생활에서는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는 활발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전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단지 내 마음을 온전히 여는데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아마도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면 반드시 외면당하고 버려질 것이다. 그렇기에 최대한 좋은 이미지만을 수면 위에 올려 깔아놔 수면 안을 얕게 가리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런 성향은 유학기간 동안 (강제로) 조금씩 조금씩 변해갔다. 이는 내가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곳 문화의 영향이 크다. 자꾸만 수면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이들 덕분에, 만남 덕분에 사실은 수면 안이 나에게나 그들에게도 훨씬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사실 이 때문이다. 고독과 사색을 거울삼아 자신을 바라보며 이해한다 믿었지만 사실은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누군가에게 부끄러움 없이 자신을 보여줄 때 가능한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꼴로까시옹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최대한 집 월세로 지출하는 돈을 아끼려는 의도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족 이외의 사람과 산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분명 이 경험이 또 다른 나의 부분에 영향을 주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할 것이라 예상한다. 물론 조금 무섭기도 하다. 친구들의 꼴로까시옹 경험담을 들어보면, 공동생활은 잘 맞으면 정말 잘 맞고, 안 맞으면 평생 못볼사이로 끝난다는 것. 유학시절 학교 친구 Claire도 약 일 년간 단짝 친구와 꼴로까시옹을 했는데, 결말은 파국이었다. 


 친구가 짐을 차로 싫어다 주어 편하게 집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중심가에서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리는데 이 정도 거리는 운동삼아 걷기 괜찮을 것 같다. 10 Rue Jaqueline Domergue. 동거인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편을 할애해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동거인에게는 동값내기 연인이 있는데 그 친구 역시 캥페르 외곽 주택에서 5명과(남자 2명, 여자 3명으로 프랑스에서는 커플이 아닌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님) 함께 꼴로까시옹을 하며 캥페르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파란 방을 하나 받았다. 큰 매트리스와 두 개의 서랍장, 주황색 옷걸이가 하나 있다. 마리가 빌려준 이불과 침대보를 깔고 그동안 여행가방에서 숨도 못 쉬고 있던 옷 등을 꺼내 서랍장에 정리했다. 15일 머물 거지만 어느 정도 내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어 개인 물건을 조금 꺼내 구석구석 배치해두었다. 친구가 집에 돌아가고 동거인과 둘이 남게 되자 주변 공기마저 어색하다. 나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자신의 이야기도 종종 꺼낼 뿐이다. 자신은 꽤나 신중한(reservé)한 편이고 그게 자신이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라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여기서 웃어야 하는지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이미 저녁 약속이 있었던 동거인이 외출하고 집에 혼자 남게 되자 긴장이 풀리고 배가 고프다. 간단히 저녁을 먹기 위해 쭈뻣쭈뻣 주방에 갔다. 이것저것 설명해줬지만 아직 모든 것이 어색하다. 가스레인지를 어떻게 키는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내일 다시 물어보자. 

프랑스 유학시절에 가장 힘들었던 건 고독이란 감정이었다. 유학시절 초반에는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동자에도 긴장했다. 그래서 자주 혼자 집에 있었다. 먹을걸 잔뜩 사서 겨울 방학기간에는 일주일 동안 나가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고독에 대해 사색하고 이 고독과 함께 하는 삶을 배워갔다. 하지만 고독은 여전히 매번 새로웠다. 커피를 마시며 창문 밖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습관은 이때 생겼다. 


 물론 사람이 곁에 있다고 고독하지 않은 건 전혀 아니다. 외국인으로서의 삶은 온전히 맞는 옷이 아닌 조금 크거나 꽉 끼는 옷을 입은 채로 생활하는 것이랑 비슷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불편한 감정이 되살아난다. 한때는 온전히 이곳의 사람이 되려고 한 적이 있다. 프랑스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먹고 마시고. 그리고 완전히 내가 이곳에 맞는 옷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더 큰 고독을 느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정했다. 이 옷은 나에게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라는 걸.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그런 새 옷이라는 것을. 


 이번 프랑스 여행은 훨씬 마음이 편하다. 나는 이곳에서 프랑스인이 되려고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곳의 문화를, 사람들을, 장소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한 부분은 그 애정으로, 이곳에서의 소중한 만남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이곳에 나를 잘 순응시켰던 게 아니라 이곳에서 받은 '영향'이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이곳에서 영향받아 변한 내 긍정적인 부분을 지극히 아끼고 소중히 대하고 있다. 이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 마음을 모두와 공유하고 싶다. 내가 삶을 감사하게 된 것, 순진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것, 따뜻한 눈빛을 나누게 된 것, 자연을 사랑하게 된 것, 고독을 삶의 동반자로 인정하게 된 것, 불편함에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 것, 그렇다고 억지로 살아가지 않는 것, 자연스러운 내가 되는 것 그리고 그런 나를 보여주는 것. 이 마음들이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나는 내가 받은 영향을 선하게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각자의 고독함을 가진 모든 이들이 함께 선한 마음을 나누는 것.   


아직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공동생활에 기대가 된다. 분명 불편한 점들도 있겠지만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굳은 벽 하나를 깨부수고 한껏 더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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