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돌보고 아끼는 소박한 일상의 반복
유학시절에도 그렇지만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마트에 가서 천천히 장을 본 뒤 직접 저녁을 요리하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한다. 정말 피곤한 날에는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때도 있지만 보통은 늦은 오후 시간이 되면 무엇을 해먹을지부터 생각해서 19시쯤에 장을 보고 20시 전에는 밥을 먹는다. 한국에서는 보통 19시 정도면 저녁을 먹었지만 프랑스는 저녁 시간이 보통 20시-21시, 아페리티프가 길어지면 22시 이후에 저녁을 먹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이곳 리듬에 적응되어 보통 20시 정도에 밥을 먹게 되었다.
저녁 약속도 없고 바쁠 것도 없는 저녁에는 와인 한잔과 좋아하는 노래를 아페리티프 삼아 곁에 두고 음식의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근사하고 복잡한 요리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직접 고른 야채들과 재료를 천천히 손질하고 입에 적당히 맞는 요리를 완성하고 나면 꽤나 근사하고 평화롭게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자취생이 하는 음식과 다를 바 없는 간단한 저녁이지만 내가 혼자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에는 소박한 일상의 반복이 주는 안정감에 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말했지만 한국에 있을 때에 살이 7kg 이상이 빠졌다. 그렇게나 먹는 걸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 당시 이상하게도 먹기 위해 메뉴를 고르고 식사를 하는 행위 자체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었다. 회사 점심시간에는 끝까지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음식을 입에 넣고 위가 차오르는 기분에 불쾌감을 느꼈고 사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면 아얘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음식에 대한 거부감마저 생겼었다. 물론 삼시 세 끼는 꼬박꼬박 챙겨 먹었지만 맛있는 저녁 메뉴를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하는 날은 없었다. 분명 현대인들이 달고 사는 단순한 위장장애 또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일 것이라 가볍게 넘겼다. 아무리 음식을 입에 넣어도 살은 차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보통 엄마가 음식을 해주거나 친구들과 가게에 가서 밥을 먹거나 이미 만들어진 음식을 배달해 먹었기 때문에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자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보통 밖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날이면 자극적인 음식을 찾곤 했다. 최대한 자극적이어야 무언가 먹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에 다시 돌아온 직후 내가 유학시절 이곳에서 무엇을 먹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이 주 정도는 친구들이 자주 밥을 해줘서 다행이었지 도저히 어떻게 장을 보고 밥을 해 먹어야 하는지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치 한 번도 요리를 해보지 않은 갓 스무 살 된 자취생처럼 무슨 재료를 사야 되고 어떤 소스를 넣어야 하는지 동시에 생각하는 게 불가능했다.
신기하게도 다행히도 다시금 이곳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잃어버렸던 입맛과 동시에 장을 보는 스킬이 되살아났다. 마트에 산책하듯 슬슬 걸어 도착한 후 천천히 재료를 살핀다. 양파 한두 개, 마늘 한쪽, 파프리카 두 개, 파 한대, 양상추, 토마토 여러 개, 당근 몇 개, 호박 가지 몇 개 등을 산다. 돼지고기도 한 덩어리 집는다. 계란은 필수니 10개 산다. 바나나, 사과, 초콜릿 그리고 오트밀도 샀다. 적은 양에 다양한 야채를 구매하여 하루하루 다양한 음식을 해 먹는다.
최근에는 고기보다 야채를 더 많이 소비하게 되었다. 야채를 하나하나 손질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프랑스 친구들의 영향도 있다. 내 주변의 프랑스 친구들은 음식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편이고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토요일 아침에만 열리는 시장에 나가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친환경 음식과 지역제품을 선호한다. 무조건 저렴한 재료를 골랐던 나였지만 주변 친구들의 영향에서인지 최근에서는 친환경 재료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프랑스인들이 다 이렇게 먹는 건 절대로 아니다. 보통 스파게티면에 소금과 치즈만 간단히 뿌려 끼니를 해결하는 젊은이들도 꽤나 많다)
내가 저녁을 해 먹는 순간에 얻는 또 다른 기쁨은, 내 입으로 들어가는 재료를 직접 고르고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나 자신을 돌보고 아끼는 행위와 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건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스스로에게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을 만드는 것.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만들어 먹을 때도 같은 느낌을 가진다. 함께 요리할 메뉴를 고르고 하나하나 재료를 골라 함께 손질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속에는 서로를 향한 애정과 돌봄 그리고 순간에 대한 소중함이 담겨있다.
나는 한국에서 자신을 돌본다는 개념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내 삶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낄 수 없었다. 스스로가 행복해하고 만족할만한 걸 찾기보다는 타인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고르고 입고 마시고 먹었다. 그렇게 이 년 반이 흐르자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무엇을 보고 싶은지, 하고 싶은지 전혀 알 수가 없게 돼버렸다.
프랑스에 다시 돌아오기로 한건 내가 좋아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풍경, 먹거리, 문화 등. 사랑하고 애정을 주었던 것들은 분명 우리를 다시금 회복시킨다. 혼자 장을 보고 밥을 해 먹는 행위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저녁 메뉴를 고르고 나를 행복하게 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상의 소박한 반복이 주는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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