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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Apr 05. 2022

위로가 때때로 독이 될 때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는 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 

최근 같이 살고 있는 친구가 연인과의 마찰로 한동안 우울한 적이 있었다. 이 친구 역시 나처럼 감정의 기복이 꽤나 있는 편으로 기쁠 때는 에너지가 넘쳐흐르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다가도 한번 우울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편이다. 자세히 상황을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식사도 거르고 그렇게 좋아하는 초콜릿 과자를 2주간 입도 안 데는 모습을 보니 그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 나는 친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고 싶어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치거나, 저녁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연인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친구의 기분이 쉽게 좋아질리는 없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감정에 나 역시 흡수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친구와의 약속이 있는 날에는 집에서 혼자 우울하고 있을 친구가 떠올라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일찍 들어갔다.분명 별 문제도 없는데 나 역시 기분이 우울해졌고 일하는 내내 기운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친구와 내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 인건 아니다. 이곳에 살게 된 지 1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서로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친구의 일 뿐만은 아니다.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의 감정에 쉽게 영향받는 성격으로 주변에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 기분을 풀어주려 하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예전에 친한 친구 한 명이 나에게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나는 친구가 겪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설명하며 위로해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위로는 친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위로를 듣던 중 친구는 갑자기 화를 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 상황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 나는 단지 네가 진심으로 나를 응원해주기를 원했던 거야." 나는 좋은 마음에서 했던 위로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친구의 반응에 덩달아 화가 났다. 물론 이미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더 부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이해할 수 없었지만 친구에게 사과를 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침, 거실에서 함께 티비를 보다 친구는 갑작스레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위로가 될만할 말들을 뱉어 데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상상하는 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야!" "울고 싶다면 펑펑 울어도 돼!" "너의 연인이 보낸 메시지를 보니 이건 분명 좋은 신호라고 생각해!" 눈물을 닦으며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괜찮아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그리고 나는 너에게 내 감정을 전달하고 싶지 않아, 여긴 너의 집이기도 해" 


친구가 나에게 한 대답은 내 머리를 콩 하고 때렸다. 그렇다. 사실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고 내 문제도 아니다. 내가 친구의 기분을 풀어줄 의무도 없다. 설사 내가 선한 마음에서 그를 위로하려 했다고 해도 내가 했던 위로의 말들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 같은 말들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내가 위로라고 던졌던 문장들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친구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친구의 부정적인 감정이 나에게까지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슬픔을 애도하는 시간은 각자 다르다. 그 슬픔이 며칠이 갈 수 있고 몇 년이 갈 수 있다. 내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위로는 함께 감정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가 기다리는 위로를 충족해줄 수 없다. 그리고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는 그 무게를 함께 견딜 필요가 없다. 해결되지 않을 문제를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도 너무 쉽다. 그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그 그 문제를 털어놓을 준비가 되었고 그 문제의 해결에 내가 개입되기를 바란다면 그때는 각자의 방법으로 도움을 주면 된다. 헛된 희망의 위로를 주는 것보다는 그들이 건너고 있는 힘든 순간에 우리가 곁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면 된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스스로를 위해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 문제가, 감정이 우리의 책임이 아님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되 위로자가 그 감정을 떠않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 그들을 위로해야 하는 건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것인지 구분하는 게 항상 어려웠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나에게 토로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가 적절한지 알 수가 없었다. 프랑스에 돌아오고 친구들을 보며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된 한 가지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는 있지만 고민에 연관되어 있는 감정은 스스로의 것이다. 위로를 받는 사람과 위로를 하는 사람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서로의 감정을 섞어 하나로 만들 필요는 없다. 사실 나에게 여전히 위로라는 개념은 뿌연 안개 같다. 이 글에서 명확하게 위로라는 개념에 대해 정리할 수는 없지만 때때로 자신과 타인에게 독이 되는 위로가 있음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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