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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Apr 19. 2022

8. 서로의 공간을 공유하며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삶

프랑스에서 공동생활을 한지 두 달이 되어가는 오늘

프랑스에 다시 돌아온 지 2주 정도가 되었다. 정신없이 이동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공동생활을 하게 된지도 1주일 정도가 되었다. 서로 다른 취미와 생활 패턴을 가졌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꽤나 순조롭게 지내고 있다. 같이 사는 친구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내가 고양이의 밥을 채워준다. 서로 시간이 없어 설거지를 못하고 나가는 날에는 시간이 날 때 서로의 설거지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틈이 나면 함께 청소를 한다. 각자의 친구를 데리고 올 때나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미리 메시지를 남기는 등. 다른 듯 하지만 계획적인 면에서나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면에서는 꽤나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것 같다.

이곳에는 애초에 15일 정도 머물기로 했기 때문에 나가기로 약속한 날까지 1주일 정도 남아있는 상황, 이제는 정말 이 도시에 정착할 집을 알아봐야 한다. 사실 이 도시에는 한 두 달 정도 잠깐 머무른 뒤 다른 동네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이곳에 대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한 뒤에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명확한 직장이나 계획 없이 섣불리 큰 도시로 이동하는 것은 정면에서도 리스크가 크다. 프랑스 주변 다른 큰 도시에 비하면 캥페르는 비교적 안전하고 집값도 그럭저럭 저렴한 편이다. 주변에 갈 수 있는 해변도 많고 아직 가보지 못한 근처 작은 도시들도 많다. 이 모든 것들이 이곳에 더 남기 위한 변명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은 이곳에 몇달 좀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


프랑스에서 외국인으로서 집을 찾을 수 있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 학교에 소속된 학생으로서 부모님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받거나 Visale 같이 보증인이 없는 신분의 사람들에게 대신 보증인이 되어주는 곳에 가입하거나

2. 회사에 소속된 직장인으로서 일정한 월급을 받으며 CDD, CDI와 같은 계약서를 가지고 있거나

3. 운 좋게 친절한 집주인을 만나거나


이 밖에도 다른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나는 더 이상 학생도 아니고 프랑스 회사에 소속된 것도 아닌 외국인 백수로써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3번이 되겠다. 2년 반 동안 한국 직장에서 뼈 빠지게 일해 프랑스에서 1년 정도의 집 월세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돈은 모아두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은행 잔고 증명서도 미리 준비해놨지만 이 정도 서류로 집을 찾는 건 프랑스에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부동산에도 연락을 취해봤지만 날아오는 답변은 보증인이 없거나 직장인이 아니라면 집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대답만이 매번 돌아왔다. 다행히도 애초에 부동산을 통해 집을 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커미션과 두세 달치 보증금, 그 밖의 서류비까지 생각하면 너무 큰 비용이 한 번에 들어가기 때문에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세입자를 찾는 집주인을 찾을 계획이었다. 캥페르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도시기도 하거니와 친절하고 인심 좋은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기에 이것만 믿고 프랑스에 돌아왔다.

다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내가 이곳에서 유학하던 시절과 지금의 캥페르의 분위기가 똑같을 리 없다는 것. 2년 반 사이 코로나가 있었고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등 프랑스인들 마저 이 근처 지역에서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 친구가 이야기해주었다. 당근 마켓의 프랑스 버전 leboncoin을 통해 부동산 없이 작은 스튜디오의 세입자를 구하는 집주인들을 찾기 시작했다. 적어도 30통 이상의 메일을 보냈지만 직장인이 아니거나 보증인이 없다면 계약이 불가능하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어쩌면 집도 없이 거리에서 지내거나 친구들의 집을 전전긍긍하며 돌아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글을 쓸 수 있는 책상도 없거니와 거리 와이파이를 근근이 끌어다 쓰며 연맹해야 할 것이다. 불안과 스트레스에 사로잡혀 일주일이 지나갔다. 스튜디오를 찾는 데는 실패하였고 결국은 같이 사는 친구에게 15일 정도 이곳에서 지내는 것을 연장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도 친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결국은 전략을 바꿔 공동생활(Colocation)을 하는 집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도 간단히 설명했지만 꽤나 큰 집에 적게는 3명 많게는 5명이 각자의 방을 가지고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을 나눠 사용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Colocation의 집주인들은 거의 모두 긍정의 대답을 보내주었고 5-6개 정도의 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외국 시트콤처럼 각자의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같이 밥을 해 먹고 농담을 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방은 꽤나 크고 맘에 들었다. 나는 같이 사는 친구에게 신이 나 이 사실을 말해주었다. "어쩌면 나 금방 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스튜디오를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Coloation을 하는 집 몇 군데에서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어!"


나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살짝 놀라며 나에게 대답했다. "다행이다 집을 구했다니! 난 네가 Colocation도 찾고 있는 줄 몰랐어." 그리곤 여태까지 이곳을 지나갔던 3명의 세입자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한 명은 스페인 사람이었는데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항상 헤드폰을 끼고 혼자 요리를 해 휑하니 방에 들어갔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항상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였는데 처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 친구의 문제에 공감하고 위로해주다 어느 순간 그 친구의 엄마가 된마냥 매일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 친구의 감정에 전염되어 함께 우울해졌다고 한다. 그 외 마지막 사람은 항상 예고 없이 친구를 데려와 파티를 하고 온통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뒤 청소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끝마치며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넌 여태까지 내가 만난 Colocateur 중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야. 우린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하지. 또 각자 활발한 외부에 활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삶에 침범하려 하지도 않아. 만약 이곳이 너에게 불편하지 않다면 네가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돼." "여긴 지금 너의 집이기도 해".


물론 공동생활이 좋은 점만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내 집이지만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아닌 공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내 삶의 리듬과 습관에 완벽히 맞출 수 없다. 목욕을 하고 나와서는 남아있는 머리카락이 없는지 확인한다. 내 취향의 노래를 빵빵 틀어댈 수 없다. 설거지거리는 최대한 다음에 사용할 사람을 위해 즉시 해두는 것이 좋다. 냄새가 나는 음식을 요리한 후에는 환기를 하는 것이 좋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지켜야 할 약속 등이 있다.

사실 난 이런 점에서 공동생활에 매력을 느낀다. 우리는 함께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개인적인 공간과 사생활에 대해서는 철저히 존중하고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때때로는 서로의 친구를 초대해 각자 소개해주고 함께 요리를 해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삶을 서로에게 공유하기도 한다.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공유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이 섬세한 관계가 꽤나 마음에 든다. 내 첫 공동생활에 배려있는 친구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좋은 점이 있다면 사람의 존재감이다. 최근 나라는 사람이 참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난 외로워 죽을지언정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걸 더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사람들과 어색한 순간 역시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서로 대화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위로를 받기도 한다. 요즘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는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해 주는데 이 공동생활의 경험이 나에게 큰 기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예정했던 15일의 공동생활이 딱 2달째가 되가는 오늘. 함께 사는 친구는 이번 주말 Morlaix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가 집을 비울 예정이라고 했고 나는 친구의 아뜰리에에 나와 함께 작업을 한뒤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며 공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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