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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Apr 13. 2022

혼자 하는 피크닉에 맥주 한 캔

자기 자신과 다시 한번 연결되기 

저번 주말 집에서 하루를 보내기 아까울 정도로 날씨가 끝내주게 좋았다. 본래 집순이의 성향을 가진 나지만 이런 날씨에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는 친구 중 한 명은 코로나에 걸려 집에서 격리 중이었고 다른 친구 한 명은 부모님을 뵈러 보르도에 내려가 약속 없이 혼자 보내는 주말이었다. 본디 혼자 있는 것을 더 선호하는 나로서 예전 같으면 이런 약속 없는 주말은 나에게 단비 같은 시간이었겠지만 최근 프랑스에 돌아오고 쉼 없이 사람들을 만났던 터일까 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날씨 좋은 주말에 혼자인 것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결국 집안 주위를 이유 없이 빙빙 돌다 집에서 작업하는 것보다는 외부에 나가는 것이 덜 심심하겠다 싶어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에 도착하고 바로 작업을 할 예정이었지만 근처에서 열리는 흥미로운 이벤트가 있진 않은지 1시간 정도 찾아본 것 같다. 집 근처에서 저녁에 열리는 메탈 콘서트가 있지만 40유로나 주고 가기에는 메탈은 영 내 취향은 아니다. 흥미로워 보이는 이벤트는 집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걸리는데 저녁에 돌아오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에어비엔비를 잡아야 하는 등 결국은 포기하고 오늘은 열심히 작업이나 하자 결심했다. 몇 시간은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봤다 창문에 맑은 날씨를 바라봤다를 반복했다. 결국은 마지막 2시간 정도가 되서야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저녁 7시 카페 영업 종료 시간에 맞춰 작업을 종료하고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바로 돌아가기에는 여전히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결국 저녁은 근처 공원에서 홀로 피크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맥주 한 캔과 샌드위치 그리고 단과자를 하나 샀다. 


천천히 공원 산책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날씨가 따뜻하고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나는 유학시절 이곳에 와서 자주 걸었다. 마음이 슬픈 날, 고민거리가 있는 날, 흥분되는 날등 이곳을 홀로 자주 걸었다. 이 장소는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공간이다. 프랑스에 돌아오고 각각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을 만났다. 쉬는 날만 있으면 집 근처 바로 가 술을 마시고 친구를 사귀는 친구, 자연을 곁에 두고 야채와 꽃을 키우며 자신의 정원을 꾸미는데 인생을 바친 친구, 아티스트로써 철학과 인생에 대해 관심을 두고 세상의 모든 철학책을 도장깨기 하려는 친구, 서핑과 스케이트 및 여러 스포츠 활동에 전념하는 친구, 머리를 염색하고 네일아트를 주기적으로 바꾸며 예쁜 옷과 신발에 관심을 둔 친구 등. 때때로 삶을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좋은 영향을 받을 때도 있지만 때때로 그 삶을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임을 알 때 그것은 욕망이 되어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잊게 만든다. 


 최근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 없이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각자의 개성 있는 취향과 삶의 방식을 꽤나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때때로 나는 파티를 즐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친환경 음식과 야채를 소비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고, 운동을 즐겨하는 활동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고 패션과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식 또한 함께 겸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늘같이 날씨가 좋은 날이면 파티에 가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순간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공원을 걷다 조용한 벤치에 앉았다. 맥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움직이는 커다란 나무들이 주변에 있다. 이 사람 없고 한적한 평야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잔디들과 하늘을 가득 채운 따뜻한 바람과 잔디 위를 튀어 오르는 작은 생명채들로 채워 저 있다. 나는 이 순간 오늘 하루 종일 느꼈던 텅 비어있던 것 같은 마음이 가득 채워짐을 느꼈다. 내 몸은 봄바람에 기댄 듯 날아갈 듯 가볍고 평온해졌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부분들에 대해서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그 후 나를 슬프게 만드는 상황과 때때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혼자 되짚어 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사실 오늘 나는 콘서트에 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늘 날씨가 좋다고 해서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자신의 빈 부분을 채워보려고 했지만 나에게 오늘 정말로 필요했던 건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나는 홀로 마시는 맥주 한 캔의 마법을 믿는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작성하는 작은 노트에는 이 맥주 한 캔에 대한 글이 종종 있다. 매일 마시는 맥주 한 캔이 아니라 날씨 좋은 날 홀로 하는 피크닉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이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 혼맥 두 캔은 생각의 선을 넘어버릴 때가 있다. 한 캔이 딱 좋다. 혼자 마시는 이 맥주는 겸손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신없이 받아들였던 외부의 것들을 각각의 서랍 내부에 정리시킨다. 날씨 좋은 이 봄, 맥주 한 캔과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간단히 챙겨 자신과 피크닉 하기를 제안해보자. 감정이 자신을 지배한 날, 머리가 복잡한 날, 무언가 텅 빈 것 같은 날, 이유 없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날. 

홀로 피크닉을 종료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나는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게 걸었다. 어느 때보다도 스스로가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가 새롭게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저녁 씻고 침대에 들어갈 때까지 그리고 잠에 들기까지 가벼운 봄바람이 내 안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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