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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Apr 26. 2022

9.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애도의 편지

곧 다시 혼자가 될 순간이 다가온다고 해도 

나에게는 현재 가족 같은 친구들이 있다. 마리, 멜리스, 시몽. 유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가족 같은 친구들이다 말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올해 2월 프랑스에 돌아오고 나서 더욱 친해졌다. 모두 같은 학교에서 만났다. 시몽과 나는 2019년에 졸업을 했고 마리는 현재 석사 마지막 학년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멜리스는 이년 전 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만나 식사를 함께 하거나 날씨가 좋으면 맥주 한잔을 가볍게 걸치거나 커피를 마신다. 종종 마리의 아뜰리에에 가서 작업을 함께 하기도 한다. 


최근 날씨가 매우 좋았다. 4월 중순이었지만 6월 날씨에 가까울 정도였다. 심지어 4월 Pâque 바캉스 기간이었으므로 동네의 분위기는 마치 여름 바캉스 마냥 들떠있었다. 겨울 동안 그렇게도 조용하던 캥페르 거리는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캥페르 Corentin 성당 옆 광장은 거대한 테라스로 변했다. 시몽은 가족과의 주말여행으로 노르망디로 금요일 저녁 떠났다. 캥페르에 남은 우리는 함께 피크닉을 계획했다. 우리의 피크닉 장소는 당연히 Moulin Vert(물랑베르) 공원이다. 비교적 센터에서 가까우면서도 사람이 많지 않고 돗자리를 펼 수 있는 넓은 평원과 주변을 둘러쌓은 자연으로 한적하게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토요일 아침에 열리는 장에 들러 피크닉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샌드위치 재료들을  샀다. 바게트, 아보카도, 잠봉, 모차렐라, 토마토, 샐러드 그리고 간단히 함께 먹을 맛살과 마요네즈. 계획에는 없었지만 신선해 보이는 굴 12개를 함께 구매했다. 지난번 피크닉 때 미처 까먹고 먹지 않은 귤과 초콜릿 과자를 후식으로 챙겼다. 마지막은 슈퍼에 들러 맥주를 구매했다. 

샌드위치에 가볍게 맥주나 마시자 한 피크닉이었지만 어느새 손에는 돗자리와 그릇, 샌드위치 재료 등 짐 봇다리로 가득했다. 내리째는 햇볕과 짐 봇다리에 지쳐 물랑베르까지 바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는 잠시 시네빌 근처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굴은 신선할 때 바로 먹어야 제맛이다. 마리는 굴을 까는 칼을 집어 들고 굴 껍데기를 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에서 개인적으로 구매한 레몬의 반을 가르고 즙을 내어 굴 위에 뿌려 나에게 건네주었다. 공원에서 신선한 굴을 먹어본 건 내 인생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종종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마담들이 우리는 쳐다보았지만 마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굴 껍데기를 깠다. 신선한 굴을 가장자리가 검은색이라며 예전에는 굴 까는 방법도 몰랐는데 시몽이 알려주어 이제는 굴 전문가가 되었다며 웃었다.


각자 4개씩 굴을 먹고 강에 대충 손을 씻은 후 물랑베르로 향했다. 20분 정도 걸어 도착한 물랑베르는 예상대로 한적했다. 강아지를 산책하는 마담과 조깅을 하는 무슈, 벤치에서 점심을 먹는 가족뿐이 없어 한적했다. 우리는 나뭇잎 사이로 살짝 그늘이 져있는 평평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장에서 사 온 재료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한 명은 맥주를 열었다. 한 명은 아보카도를 잘랐고 또 한 명은 모차렐라를 썰었다. 서로의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햇볕은 매우 따뜻했고 우리는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다 했다. 함께 노래를 듣고 춤을 추었다. 샌드위치를 먹고 잠시 누워 하늘을 보았다. 13시가 넘어가자 햇볕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아 행복한 토요일 점심. 맥주는 이미 미적지근 해지기를 넘어 따뜻해져 있었고 모차렐라는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멜리스가 가져온 초록색 돗자리는 살짝 젖어있었던 풀 아래로 녹아내릴 것처럼 따뜻하고 눅눅해졌다. 오후 햇볕이 약 두시 방향으로 가 있을 때쯤 우리의 오른쪽 팔에는 모두 빨간 자국이 생겼다. 


 점심 피크닉 이후 아뜰리에에 가서 작업을 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일정을 포기했다. 그래 우리 오늘만큼은 이 순간을 만끽하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아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마리도, 프랑스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급함을 느끼며 이것저것 벌려둔 나도, 최근 새롭게 일자리를 옮긴 멜리스도 모두 주말이라 할 것이 없이 계속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함께 있는 이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자 결심했다. 햇볕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두둑이 차오른 배와 눅눅한 맥주 흐르는 땀에 모두가 녹아 버리기 직전 우리는 피크닉 짐을 정리하고 근처 바에 가기로 결정했다. 바리바리 짐을 싸고 자리를 정리한 후  벌겉게 익은 얼굴과 햇볕에 지친 팔다리를 질질 끌며 다시 센터로 돌아왔다. Corentin 성당을 바로 마주하고 있는 비교적 저렴한 바에 들어갔다. 이곳은 성당을 바로 마주 하고 있어 멋진 풍경을 자랑하지만 거대한 성당이 햇볕을 가려 낮에 몇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그늘져 있는 게 아쉬운 바이다. 평소 같으면 그늘에 불어오는 바람이 사늘해 별로 좋아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이 그늘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시원한 바람과 맥주를 술술 들이켜니 속에 있던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리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도시인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마리는 멜리스는 이곳에서 기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낭뜨라는 도시에서 살았다. 나는 한국에서 20살에 프랑스 캥페르라는 도시로 유학을 왔다. 마리와 멜리스는 내가 4학년일 때 이 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 것이 너무나 큰 행운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각자 너무나 다른 성격과 관심사를 가졌다. 나는 꽤나 조용한 편이다. 그렇게 말이 많지 않지만 아무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제야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말을 꺼내는 편이다. 그 외에는 남들의 말을 듣고 맞장구치는 위치에 있다. 멜리스와 마리는 끊임없는 대화 소재를 가지고 있다. 그녀들은 말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재미없는 주제도 그녀들의 표정을 보고 있자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변해간다. 멜리스는 주로 패션과 자신의 룩에 대해서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마리는 자신 또는 지인에게 있었던 웃겼던 일화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안타깝게도 날씨와 먹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이 순간을 너무나 사랑한다. 우리가 나눈 대화들이 잊히지 않는다. 서로를 소중히 하고 서로 맞지 않는 부분에서도 화내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것, 내가 외국인으로서 대화에 다 참여하지 못할 때도 조용히 다가와 내가 모를 것 같은 단어를 속삭이며 설명해주는 마리, 직설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섬세하게 사람의 마음을 캐치하고 배려하는 멜리스. 프랑스에 돌아오겠다고 결심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사람과 마음을 나누게 될지 몰랐다. 나는 애초에 사람에게 크게 애정 주는 방법을 잘 모르는 편이기에 항상 거리를 두며 어색하게 웃었다. 프랑스에 돌아오고 나서도 여전히 난 어색하게 웃는다. 다만 애정이 묻어있다.


마리는 졸업 후 시몽과 함께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멜리스 역시 몇 달 후면 자신이 살던 동네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나 역시 이 동네에만 1년 동안 있으려고 프랑스에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처럼 함께 하는 이 시간도 곧 끝날 것이다. 각자의 삶에서 서로가 멀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당연히 모두 잘 살아가겠지만 나는 곧 다가올 그 헤어짐에 시간이 조금 무섭다. 유학을 끝마치고 한국에 돌아가 2년 반 동안 지내면서 내가 프랑스에서 보냈던 순간들이 모두 꿈같다 느꼈었다. 그리고 이곳에 다시 돌아온 후 다시 보내는 일상에 마무리에는 항상 마지막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미리 조금씩 이 순간을 애도하는 것이다. 그만큼 이 순간이, 이곳에 만난 사람들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혼자인 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함께 있는 시간이 어쩜 이렇게 다정하고 즐거울 수 있는지. 우리의 맛을 알아버린 지금 다시 혼자가 될 순간이 무서워질 만큼 나는 이곳과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을 언젠가 그리워할 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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