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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Jun 30. 2022

11. 함께하기에 이미 가치 있다.

나라는 존재만으로도 특별하단 말, 정말 믿을 수 있나요?

어느 날 시몽과 마리가 나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혹시 네가 원한다면 우리 그룹에 들어오지 않을래?" 

그들이 말하는 ‘우리 그룹’이란 캥페르 보자르 대학을 졸업한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예술그룹을 말한다. 나는 이미 그룹원들과 크고 작은 친분이 있다.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졸업 이후에도 꾸준히 자신의 예술 작업을 이어왔다. 나의 경우, 대학을 졸업한 이후 한국에 돌아가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여러 변명을 대며 예술작업을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렸다. 은연중으로는 이런 자신이 계속 비겁하고 초라하다고 느꼈기에 이 친구들을 그리워하면서도 마주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분명 그들은 다시 만난다면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할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요즘도 작업하고 있어? 그동안 뭐했어?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했어." "2년 동안 시간이 없어서 어떤 작업도 못했어" 


그 그룹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 듀오가 있다. 학생 시절에 약 한 달간 어시스턴트로써 그들의 작업과 전시 준비를 도왔다. 애초에 너무 좋아했던 것이 문제였던 건지,…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 점점 더 나 자신을 무능력하고 초라하게 느끼게 했다. 흥미롭지 않은 대화 주제를 던지며 어색한 웃음으로 한 달을 보냈고, 나는 그들에게 어떤 좋은 인상도 주지 못한 채로 실망만 안긴 것 같다 생각을 했다. 어시스턴트 기간이 끝나고 그들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 이때의 기억이 너무 속상해서 어떤 날은 맥주 한잔을 마시고 그들에게 구구 절절 편지까지 썼지만 끝끝내 그들에게 전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시몽과 마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난 더 이상 작업도 하지 않고 있고, 내가 이 그룹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너희가 괜찮다면 난 좋지만 말이야" 


프랑스에 돌아오며 다짐한 것이 있다. 

나에게 다시 주어진 이 시간을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경험하자고, 두려워 말고 내게 주어진 것들을 마음껏 즐기고 누리고 오자, 내 부끄러운 자존심을 지키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다. 

그렇게 다시 한번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캥페르 보자르 바로 옆, 우리가 자주 갔던 작은 술집에 함께 모였다. 나는 어색하게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내가 무엇을 했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별로 묻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언제 한국에 2년 동안 떠났었나 할 만큼 공백 기간에 대한 나의 근황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곧바로 한 달 후 있을 전시와 행사에 대한 회의를 시작했다. 나는 진행 상황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맥주만 한 모금씩 아껴 마시며 멀뚱멀뚱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날 내가 한 말은 인사말 두세 마디뿐, 동그란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유령처럼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역시 그들을 만나지 말걸 하며 마리와 시몽에게는 그룹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로 생각했다. 




내가 3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읽었던 책 하나가 있다. 프랑스 작가 Olivier Steiner의 La Main de Tristan. 

이 책은 오토 픽션으로 저자는 작은 선물가게에서 일하며 시간이 남으면 종종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책은 그와 프랑스의 연극 연출가 고 Patrice Chéreau와의 우연적인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내가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 Je commence à me morfondre, Je me dis que j’ai tout gâché, qu’il m’a trouvé bête, qu’il s’est ennuyé, qu’il ne m’a pas trouvé désirable. Il a forcement été déçu. Il s’était imaginé quelqu’un de plus séduisant, plus intelligent, plus,, moins,,)"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모든 걸 망처 버렸고, 그는 나를 멍청하고 지루하며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당연히 실망했을 것이다. 그는 좀 더 매력적이고 명철한 사람을 기대했을 터인데... "



무언가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반대로 모든 게 부자연스러워지는 때가 있다. 믿어왔던 자신의 가치가 사실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 그럴수록 별 의미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자신을 치장하여 가리려고 해 보지만 임시적인 방편밖에 되지 못하고, 결국은 발가벗겨져 자신의 연약함과 마주하게 되는 그런 순간.



그룹에는 들어가지 않겠다 말하려 했지만 계속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은 한 다리만 걸친 것 마냥 애매하게 그룹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시 준비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작은 임무가 나에게도 주어졌다. 나는 대단한 유머감각도 없고 그렇다고 날카로운 지적을 할 만큼의 명철함도 없고 색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할 만한 창의력도 없지만 매번 회의에 참석했다. 매번 회의를 가기 전 생각했다. "그래! 참여하는데 의의를 두자, 그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하여 생각하기 이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경청하고 바라보자" 



시간이 흐르고 전시 준비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하는 회의 시간과 식사시간이 사실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하고 즐거워졌다.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나는 함께 전시를 준비하는 한 구성원이 되어있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은근한 애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나는 소심하게 생각했다. "분명 그들도 나와의 어색한 자리가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들과 좀 더 함께 하고 싶다."


전시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왔고 전시장은 잔치 분위기였다. 전시 개막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는 저녁시간, 모두 살짝 취기가 올랐을쯤 나는 그들에게 용기 내어 감사인사와 전시 준비를 하며 느낀 점 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 그룹에서 전시와 행사를 함께 준비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그리고 너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작업하는 순간이 나는 너무 좋았어. 이런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마워, 오랜만에 이런 기분을 다시 느껴보는 것 같아." 


그리고 아티스트 듀오 중 한 명인 까미가 나에게 대답했다. "네가 학생이던 시절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우리는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었어. 우린 정말 멋진 순간들을 함께 했잖아." "네가 다시 프랑스에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정말 기뻤어" "이번 전시에 너의 도움이 매우 컸어, 너를 다시 만나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뻐,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해줄 거지?"


대화를 계속하던 중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아티스트 듀오의 어시스턴트로 함께했던 시간이 서로에게 전혀 다르게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초라하고 무능력한 모습만 보여준 채 그들을 실망만 시키며 끝나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나와 시간을 보내며 함께 했던 그 순간을 여전히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무능력하고 재미없는, 매력적이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뿐더러 함께 할 수 있음에 그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주변에서도 인정하고 나 역시 그렇게 인정하는 것 중에 하나는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인복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운 좋게도 여태까지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고 종종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 이야기에 친한 친구가 나에게 대답으로 해준 말이 있다. "너 역시 좋은 사람이라 그래"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만큼 아마 그들도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꺄미와 또마가 나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맞춤해주었다. 폴은 여전히 나에게 못 알아먹을 농담을 던지지만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며 함께 껄껄 웃는다. 기욤과는 일상 대화 주제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시몽은 존재만으로도 이상한 용기를 주고 마리는 언제나 괜찮을 것이라며 나를 안심시켜준다. 더 말하지 않아도, 내가 더 특별하지 않아도, 내가 무언가가 되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느끼더라도

 '나'라는 존재는 이미 가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서 더욱 가치 있어진다. 



능력 주위와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아가며 자신이 믿어왔던 가치는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기고 소비되기도 한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사회가 평가하는 가치 등급 피라미드의 맨 아래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은 불안 속에 매일을 살아간다. 다만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애정 하는 마음은 그런 사회가 규정한 가치 기준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개인과 공동체에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잊지 말자.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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