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결정에 후회가 따른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프랑스에서 5년간 유학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 2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죽기 살기로 모은 돈을 가지고 다시 프랑스 소도시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 나를 처음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항상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디에서 왔니? 그래서 지금 여기서 뭐해?"
그럼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Je dessine, j'écris et je voyage de temps en temps, une pénanrde quoi "
"그림 그리고 글도 쓰고 종종 여행도 하고 있어, 한량이지 뭐"
사실 이곳에 돌아와 하고 싶었던 일은 '하고 싶었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해야 하는 일이었느냐 묻는 다면 사실 크게 할 말은 없다. 이곳에서 끝마치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곳에 다시 돌아왔다. 그것이 미련이었는지 도피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 순간이 몇몇 인생 선배들에게는 비판의 요소가 될 수 있을지 언정 내 삶에 후회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하고 싶었다. 어찌 되었던 이곳에 돌아와 다시금 그림을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이 대단한 글과 그림이 아닐지언정 나에게 주어진 이 일 년의 시간 동안 나는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용기를 되찾았다. 이곳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도 있었고 나름의 걱정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거기 가서 정확히 뭐할 건데, 너도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넌 착한데 은근 고집이 쎄" 또는 "넌 착한데 할 말은 다해" 나는 이 말들이 항상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이 도저히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넌 원래 착하니 고집을 조금만 더 꺾으면 좋겠다는 말인가? 마치 착한 것의 반대말이 고집 또는 자기주장인 것 마냥 들린다.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불행해진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곧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못했던 이유를 외부에서 찾기 시작한다. 남의 결정에 따르기로 한 것도 자신의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한 체 외부의 요소가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까지 나아가게 된다. 외부에서 찾은 원인은 결국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자주 듣는 유명한 말이 있지 않는가,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 다라는 말.
10년 지기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함께 유학을 준비하고 20살에 프랑스에서 갔다. 곧 군대에 가야 하는 때가 되어 나보다 조금 일찍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온 어느 날 친구의 자취방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나 이제 내 과거도 상황도 탓하지 않기로 했어." "탓한다고 현재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거든"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멘탈이 강한 사람들의 가치관 5가지' 등의 게시물에서 흔히 슥슥 보고 넘기는 간단한 말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학창 시절부터 친구의 상황과 성향을 알았던 나는 친구가 내뱉은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실제로 약 3년 만에 다시 본 친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훨씬 성숙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좋아하는 사람들로, 같은 흥미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둘러 싸인 삶을 살고 있었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만들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때때로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가는 것이 남들 눈에는 배려가 없다가 보일 수 있을지언정, 또 그게 좋아하는 누군가를 상처 낼 수 있을지라도 자신의 고집대로 밀고 간 삶에 만족과 후회는 다 자신의 몫이기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다.
아무리 누군가 옳은 조언을 주고 좋은 길로 이끌어 준다 한들 그것이 내가 내린 결정이 아니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모든 결정에는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고 그 후회에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비난하게 된다면 그 감정은 어떤 감정보다 고통스럽고 후회스럽다. 나는 그 감정을 뼈저리게 느껴봤다.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은 잘못된 결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것에서 남을 원망하게 되는 감정이다.
그리고 불행한 나는 누구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나 역시 내가 내린 선택에 뒤따르는 결과에 낙심할 때도 있었다. 다만 나를 지금까지 단단하게 성장시킬 수 있었던 건 내가 밀고 나간 결정 안에서였다. 그 속에서 나는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유익했던 것과 나빴던 것들에 대해서 가늠할 수 있었다.
종종 연애 상담을 하러 오는 친구들에게 최대한 이런 조언을 하는 것을 피하려 한다.
"딱 봐도 나쁜 놈이네 고집부리지 말고 당장 헤어져, 후회하기 전에"
헤어지라고 정말로 헤어질 사람은 거의 없고 결국은 끝을 보고 나서야 마무리 짓게 돼 있다. 어떤 결과에든 후회가 남을 텐데 적어도 왜 나에게 나쁜 건지 알지 못한다면 다음 만남에서도 뭐가 나쁜지 알 수가 없을 테니. (물론 실제로 최대한 빨리 거리를 두어야 하는 독 같은 관계도 존재한다.)
때때로 고집쟁이는 곧 남들의 조언을 전혀 듣지 않는 꽉 막힌 외골수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진짜 고집쟁이들은 오히려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찌 됐는 저찌됬든 사람들은 조언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귀가 있는 이상 우리는 그 조언을 들을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선택은 사실 결국 남들이 해준 조언과 바라본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고집쟁이들은 오히려 다른 남들의 고집에 더 열려있다. 남의 뜻대로 따라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 조언을 듣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내 의견을 존중하듯 그들의 의견도 인정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나는 고집 있게 살되 그 고집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크고 작은 선택들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물론 당연히 후회의 감정은 있었지만 이 후회가 있었기에 지금에 조금 더 단단해진 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고집 있게 밀고 왔던 선택들에 대해서 나는 이상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좋지 않게 끝난 결말에서도 나는 결국 그 결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천성적으로 이런 성격을 타고난 건 아니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비교적 소심하고 항상 움츠러들어 있었다. 집은 가난했고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고 있었으며 몸이 아픈 아버지는 16살에 급작스레 돌아가셨다. 가족은 슬펐고 나는 여전히 소심하고 구석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 내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별로 없었다. 상황을 따라가고 인정하는 것뿐이었다.
다만 어느 날 그림을 좋아하니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 했고 또 어느 날 무슨 생각이었는지 대학은 유학을 가겠다고 대뜸 엄마 언니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돈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해외에서 유학을 한 것이 나를 더 고집쟁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부정할 수 없다. 20살부터 자취를 하며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일까지 대부분 홀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외국인으로서 이곳에 적응해 살아가기 위해서 하루하루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야 했다. 스스로가 긍정적이고 자신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로 했다. 결국은 별생각 없이 내렸던 자고 큰 선택들이 쌓이며 조금씩 단단한 고집을 만들었다. 물론 이 선택들을 믿고 뒷받침이 돼주었던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때로 주변에서 내가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조금 더 딱딱하고 냉정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나는 그렇게 변한 내가 꽤나 좋다. 매우 거만하고 철없어 보일 수 있으나 적어도 내가 밀고 나간 선택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나에게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그 삶이 성공을 했던 아니던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알고 그것을 향해 가는 사람들. 내가 한국이던 프랑스 던 꽤나 멋진 사람들 사이에 둘러 쌓여 있다는 것을 최근 깨달았다. 고집쟁이들은 고집쟁이들을 끌어들인다. 한국과 다르지 않게 이곳도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오는 사회적인 압박이 있다. 다만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그런 틀을 인식하되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자신만의 비전이 있는 고집쟁이들이다.
이 고집이 우리를 어떤 삶으로 이끌어 갈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 거만함 때문에 인생의 쓴 맛을 보고 철철 눈물을 흘린다 해도, 누군가 "거봐 그렇게 될 거라고 했지" 라며 조언이랍시고 떠들어 댄다 해도 주눅 들지 말자. 적어도 그 고집 속에서 우리는 계속 성장한다. 내 고집으로 내린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선택 속에서 우리가 길을 잃는 건 당연한 것이다. 하루하루 자신을 더 믿고 응원하며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오늘 입은 티셔츠와 눌러쓴 라임색 모자도, 오늘 점심에 해먹은 야채샐러드도,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것도, 가족과 멀리 떨어져 유학을 가기로 결정한 것도, 무릎이 약한 가족력에도 달리기를 계속하기로 결정한 것도, 연인을 만나고 헤어진 것도, 누군가와 친해지고 누군가를 끊어냈던 것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도, 2년간 한국 회사에서 일했던 것도, 이곳에 다시 돌아온 것도, 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도 모두 나의 결정이다. 이 모든 결정에 존중하고 응원해주고 조언해준 가족들과 주변에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모두 고집 있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