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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Jul 27. 2022

해외에서 살아가며 적응하기까지

지금 이곳에 있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  

인생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겠다고 결정한 것은 물론 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대학 등록금이 저렴하고(국립대학일 경우), 대학 다니면서 언어 하나 더 배울 수 있다면 일석이조지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랑스로 날아왔다. 결정한 것은 나였지만 막상 이곳에 도착하니 언어도, 사람도, 문화도 이해가 안 됐다. 길거리 인종차별에 공공화장실은 유료다. 친구들은 어찌 그리 힘이 남아돌아 매일 파티를 해대는지, 나는 집순이에 술 한잔 제대로 마셔본 적 없었고 애초에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는데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들과 파티라니. 매일 저녁 친구들이 "집에만 있지 말고 파티에 좀 나와!"라고 전화를 해대는 바람에 매번 전화기는 무음으로 해두었다. 바캉스 기간에는 거대한 장을 보고 일주일 내내 한국 예능을 보며 집에서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밖에 나가 사람을 마주치는 것도 무서운 지경까지 갔었다. 나 같은 사람은 해외에 와선 안됬었다고 후회하며 눈물로 지새운 밤들도 있었다. 그래도 각자의 인생에는 오직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온다고 했던가, 이곳에 온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유학 선배들이 말하기에 한 나라에서 3년만 버티면 어디서든 적응하며 살 수 있다고 했다. 유학 3년 차, 신기하게도 학교 가던 길에 문득 스스로에게 한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왠지 여기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유학이 끝날 때가 되었을쯤에는 이곳에 남아있겠다고 엄마 언니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며 고집을 부렸던 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올해로 프랑스에 산지 6년 차가 되어간다. 이렇게 오래 머무르게 될 거라는 사실을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 이야기해주었다면 허겁지겁 도망을 쳤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는 한국 학생들을 크게 2개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프랑스를 정말 좋아하거나 혹은 미친 듯이 싫어하거나. 사실 한국에서 만난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정말 좋아하거나 혹은 미친 듯이 싫어하거나. 나는 이 두 개의 카테고리 중 물론 전자에 속한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일하던 시절 회사에서 만나 친해진 외국인 친구가 있다. 한국에 산지 7년이 되어 가는 이 친구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나와 여러 회사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오래 살았다고 해도 외국인의 삶은 쉽지 않다.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시절처럼 친구도 매년 한국에 남아있기 위해 비자를 연장해야 했는데, 당시 회사의 부당한 처우와 비자 신청 기준의 변경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저녁을 한턱 쏘기로 했다. 


한두 잔 마시던 중 친구에게 물어봤다.

 "너는 왜 그렇게 한국이 좋아? 못볼꼴 다 봤잖아.
너 정도 경력이면 너희 나라든, 다른 나라에서든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친구는 대답했다. 

"여기서 좋은 거 나쁜 거 다 경험했지, 좋은 사람도 만나고 나쁜 사람도 만났고,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곳에 있는 내가 좋아"

"더 이상 남아있을 방법이 없다면 떠나야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거야"

"그러는 넌 왜 프랑스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데?"


나의 대답도 같았다. 프랑스에서 나쁜 사람도 만나봤고, 안 좋은 순간도 있었지만 이런 부정적인 기억을 뛰어넘을 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했던 온갖 고뇌와 노력들이 쌓여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프랑스에 돌아왔다. 다른 나라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다시 프랑스에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유학을 갔던 나라가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나는 똑같이 그 나라에 이처럼 사랑에 빠졌을까? 아니면 그 나라를 도망치고 싶을 만큼 싫어하게 됐을까? 

나는 쉽게 사랑에 빠지진 않지만 뭐든지 한번 빠지면 자신을 잃을 만큼 그것에 몰두해버린다.

인생이란 정말 신기하다. 어쩌다 이곳에 이렇게나 사랑에 빠져버린 걸까.

사랑은 결국 끝장을 보기 전까지는 자신의 의지대로 떠나기 어렵다.


이곳에 돌아오고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정말 좋다! 정말 좋아!

말대로 정말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외국인으로서 불안하고 힘든 순간들은 여전히 있다.

여전히 이해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한 순간들도 있다.

다만, 사랑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는가, 단점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큼 좋은 게 사랑 아니겠는가.

이곳을 사랑한다고 해서 이곳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은 외국인의 신분으로써 이곳에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꽤나 즐겁다. 


이곳에 돌아오며 많은 고뇌를 했다. 학업도 아니고 경력을 쌓는 것도 아니고 

이 나이에 이런 추상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다시 돌아가는 게 맞는 건가.


우선 이곳에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리고 기록하자라고 다짐했다. 

이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보고 느낀 점들을 기록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사실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이곳에 있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두 번째 인격이 생기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본래 조용하고 집에 있기 좋아하는 나는 프랑스어를 할 때면 훨씬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된다. 프랑스에서 생존하기 위해 내가 이 인격을 만들어 낸 건지 아니면 이곳이 나를 변화시킨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지금 이곳에 있는 내가 정말 좋다. 애쓰고, 변화되고, 영향받고,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나 자신이 좋다. 


마지막으로 현재 해외에서 정착을 하거나 유학을 하는 사람들 중 환경에, 언어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유학을 하던 때, 그리고 유학원에서 일하던 때 해외에서 적응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마음이 병들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보고 들은 적이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맞는 사람도 만나고 안 맞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지금 있는 곳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해본 것에 의미가 있다. 모든 경험은 가치 있다. 


실제 해외생활이 맞지 않아 금방 한국에 돌아갔던 지인들 중에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고 현재는 한국에서 가장 멋지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멀리 타지에서 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자신이 병들어 갈 때까지 억지로 모든 것에 적응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지금 현재 있는 그곳에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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