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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Jun 08. 2022

나의 아름다운 도시 캥페르

프랑스 작은 소도시 캥페르에 산지 6년 차가 돼가며


최근 친언니가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 브레타뉴 지방의 캥페르 도시에 방문했다. 6년이란 짧으면 짧고 길면 길 수도 있는 시간이다. 눈에 익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던 캥페르의 골목, 건물, 가게, 사람들, 풍경 등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여태까지는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를 썼지 내가 사는 곳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계기로 이곳에 산지 6년 차가 돼가는 내가 바라본 캥페르라는 도시에 대해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글에는 그림 대신 내 사진첩에 조금씩 쌓아둔 캥페르의 풍경 사진을 넣기로 결정했다.

캥페르의 심장 같은 Saint-Corentin 성당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의 소도시 캥페르는 5월부터 10월까지 여행객들로 붐비는 관광도시이다. 캥페르에 도착해 시내에 처음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은 아기자기한 도시의 전경을 보며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도시 같다며 감탄을 한다. 다른 도시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이 보기에도, 유럽 이웃나라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좀 더 먼 나라에서 이곳까지 온 모두에게 이곳은 아름다운 도시임이 틀림없다. 차를 타고 캥페르를 조금 벗어나면 숲과 바다를 끼고 있는 더 작은 매력적인 도시들을 구경할 수 있다. 자연이 둘러싸고 있는 이 아름다운 프랑스의 소도시에 산지 6년 차가 되어간다. 5년은 학생으로 있었고 1년은 백수로 지내고 있다.


 겨울에는 많이 추워봤자 -2도 이상 내려가는 날이 별로 없고 여름에는 30도 이상 올라가는 날이 매우 드물 정도로 사계절 내내 비교적 온화한 날씨를 자랑한다. 다만 바다가 근처에 있어 대부분 흐리고 비가 자주 온다. 이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게 아름다운 조용한 프랑스의 소도시이다. 어떤 도시던 빛과 그림자는 존재한다지만 이 도시가 유난히 아름답고 고요하기 때문인 걸까 나에게 이곳의 빛과 그림자는 때때로 다른 도시보다 더 밝고 어둡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공원으로 산책하러 가는 길에 찍은 사진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조용한 곳에 집을 사고 은퇴 후에는 정원을 가꾸며 이웃과 바베큐를 해 먹는다. 시장에 가면 빨리 빨리란 게 없어 보인다. 모두들 구매를 하러 온 건지 수다를 떨러 온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몇십 분을 서서 이야기하고 있다. 친환경 야채와 신선한 생선을 사러 온 한 마담은 그저께 동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 만났던 꺄홀린과 우연히 다시 마주쳐 오랜만에 본다는 듯 서서 몇십 분간을 수다를 떨고 있다. 이웃흉을 보던 어제 Ouest-France 신문에 난 기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최근 가격이 너무 오른 머스터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 역시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시장에 간다. 야채와 치즈, 빵, 그밖에 조미료 등을 파는 평범한 시장이다. 물론 나는 가격이 좀 더 저렴한 대형마트에서 대부분의 장을 보는 편이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와 바글바글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슬쩍 엿들으러 간다.



이 지역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세기로도 유명하다. 분명 역사적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내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비가 자주 오는 특성이 이 지역 사람들을 술과 가까이하게 만든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보통 비가 오면 바다에 간다거나 숲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동네에 이벤트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심심한데 사람도 볼 겸 한잔 하러 갈까 하며 모두 바에 모이는 것이다. 캥페르를 포함해 주변 작은 도시들은 저녁이 되면 거리에 개미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다만 바 근처로 가면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바라고 해 봤자 큰 바도 아닌데 비가 오는 날에도 바람이 부는 날에도 모두 작은 테라스에 옹기종이 서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요즘처럼 비교적 날씨가 좋고 해가 10시까지도 지지 않는 계절이 오면 오후 6시만 돼도 사람들이 부글부글 넘처난다.

내부보다 외부 테라스에 사람이 더 많은 Ceili 바

바에 혼자 가면 반드시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홀로 맥주 한잔을 걸치러 온 이들은 보통 계산대 근처 바에 기대서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주변을 두리번 살핀다. 계산을 하러 온 젊은 친구들에게 슬쩍 농담을 던진다. 젊은이들은 야외 테라스에 그룹으로 모여있다. 귀는 그룹의 대화에 집중하되 눈은 요리조리 주변을 훑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모두들 변화 없는 일상을 반전시킬만한 만남과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외로운 밤의 나방 마냥 따뜻하게 바랜 노란 불빛을 찾아 모두들 바에 들어온다. 바라고 해 봤자 매번 가는 술집이 거기서 거기다 보니 안타깝게도 마주치는 사람들은 크게 변함이 없다. 아는 사람에 아는 사람이 꼭 전 여자 친구의 친구이거나 전 남자 친구의 사촌이다. 걔는 이렇다더라 얘는 저렇다더라 진실 없는 소문이 한 명 한 명에게 꼬리표처럼 달려있다. 분명 내 얼굴을 종종 봤던 사람들도 내 꼬리표를 만들고 있겠거려니 생각한다. 이런저런 소문이 매주 들려오는 이 도시에 작은 바 Ceili에는 캥페르의 이런저런 소문이 죄다 모여있는 듯하다. 이곳이 소도시인만큼 좋게 말하면 그들만의 결속력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폐쇄적이라고 종종 느낀다. 물론 이런 폐쇄적인 분위기가 때때로 안정감이 되기도 하지만.

출처 : L'OBS Pourquoi il y a toujours un drapeau breton quelque part

캥페르를 포함, 브레타뉴 지역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16세기까지 브레타뉴는 프랑스와 분리된 하나의 공국이었고 국기와 언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프랑스 지역들 중 자신들의 뚜렷한 정체성과 문화를 지닌 지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어디를 여행하던지 반드시 브레타뉴 국기를 챙겨가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이 지방 국기가 집에 없는 브레타뉴 출신 사람을 본적이 거의 없다. 적어도 자동차나 어딘가에는 스티커로라도 자신의 지방을 알리는 상징이 붙어있다. 브레타뉴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오게 돼있다고 같이 사는 친구가 이야기한 게 기억난다. 모든 도시가 다 그렇겠지만 누군가는 이 아름다운 동네에서 안정감을 느끼지만 또 한편에서 누군가는 그 속에서 마음이 병들어가기도 한다.   



친언니와 맥주를 한잔 마시러 나간 날 나에게 말했다.

"여기 정말 평화롭고 예쁘다. 근데 너무 오래 있지는 말아"



사실 이 글에서 도시가 문제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곳에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익숙해진 이 도시가 정말 좋다. 다만 이곳에서 내가 느끼는 폐쇄적인 안정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다. 수동적인 안정감이라고 해야 맞을까. 때때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더 이상 찾을 것도 욕심낼 것도 없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말하기 좋아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불평은 제외하고. 항상 자기 계발과 커리어 쌓기에 바쁜 한국사회와 비교한다면 확실히 이곳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훨씬 높다. 좋게 말하면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더 욕심내고 그게 때론 이 안정감 속에서 뒤틀려 버리기도 한다.

친구네 집 정원 풍경

이곳에 20살 때 처음 와 5년을 학생으로 보내고 28살에 다시 돌아와 지내면서 대조적인 감정을 계속해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 도시는 나에게 이상한 안정감을 준다. 이 안정감은 마치 내가 죽어 어딘가에 편안히 묻힐지까지 미리 예비해놓은 그런 안정감과 비슷하다. 엄마는 타지 생활하는 내가 걱정돼 힘들면 돌아와라고 종종 이야기해주시만 사실 이곳에서 못 견딜 만큼 힘든 적은 없다. 오히려 나는 한국에서 걱정거리나 힘들일이 있을 때 이곳을 떠올렸다. 외부의 변화에 문제의 해결을 두기보다는 스스로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 중요성을 두는 편이기에 작고 조용한 이 도시는 비교적 나의 성격과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도시가 주는 변함없이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병들어가는 사람들을 종종 주변에서 보기도 한다. 적당히 학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더 이상 크게 노력할 필요가 없는 어떤 이들에게 심심함은 곧 외로움으로 변한다. 변화 없는 현실에 맞서 외부의 변화를 찾아 나서본다. 다만 이곳에서 외부의 변화는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소극적이게 조금 자극적인 것들을 찾아 나서 보기 시작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지루하지만 어쩌면 생길지 모르는 만남 속 작은 변화를 기대한다. 다만 곧 아는 얼굴을 향해간다. 또는 계속해서 이성을 만나고 상처받기를 반복해본다. 그 상처가 준 자극적인 감정이 가장 신랄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뭔가 특별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점점 더 강한 환각을 바라기도 한다. 이렇다 저렇다 할지라도 이곳에서는 크게 무언가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과 절망이 함께한다. 이 지루한 반복 속에 상처받은 이들은 더 깊은 안정감을 찾아 저 아래로 계속해서 떨어진다. 그렇기에 이곳은 집중할 무언가가 없다면 무언가에 쉽게 중독되어 버린다. 사실 모두들 이 늪 같은 안정감속에 더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해 무언가에 강하게 매달리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무언가에 집중하고 매달릴만한 목표나 욕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어떤 나라에서나 어떤 도시에서나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 외국인으로서 살아가기 때문인지 이곳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어서 그런 건지 이런 격차는 더 강하게 느껴졌다. 유학생에게 때어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외로움이란 감정이다. 아무리 하루가 바삐 지나고 저녁에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파티를 와장창 한다 해도 타지에서 홀로 채울 수 없는 무언가를 항상 가지고 있다. 비록 혼자 있는 것을 비교적 좋아했던 나지만 유학 당시 뼈저리게 느낀 외로움이란 감정은 매번 어색하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욱 이런 안정감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는데 애를 써왔다. 안정감이란 쉽게 외로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 외로움이 안정감으로 변하기도 하기 때문에. 나 역시 유학 당시 그 안정감속에 길을 잃어봤기에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 살면서 내가 가장 조심하는 부분은 이점이다. 이 아름다운 곳에 사는 대신 이 도시에서의 삶에 너무 푹 빠져들지는 말 것.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그리고 또 언젠가 종종 시간을 내어 돌아올 수 있도록.


 이 도시는 쉽게 사람을 부르고 어렵게 떠나게 만든다. 이곳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결정한 이유를 스스로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앞서 말한 단순한 반복이 아닐까 하는 불안에 이 여정을 기록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서 끊어내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그것들의 정리를 하고 매듭을 지어 나가는 과정 속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금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 도시 Odet 강을 바라볼 때면 여전히 아름다움과 쓸쓸함에 도취되곤 한다. 곧 이곳에서 할 일이 더 이상 없어지면 난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에서 이렇게 오래 머무는 일은 내 인생에서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조심한다고 했지만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무른지도 모르겠다. 캥페르의 각각 다른 풍경 속에는 나의 20대의 불안과 고민 그리고 여러 다양한 감정이 물들어 배어 있는 것 같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캥페르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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