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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Aug 19. 2022

프랑스 사람들의 바캉스

프랑스식 바캉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여름, 특히 8월은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바캉스를 떠나는 달이다. 프랑스에서 유학시절, 보통 학기가 끝나고 여름 바캉스가 되면 한국에 돌아와 알바를 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제대로 여름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나도 제대로 프랑스 여름을 즐겨보리라 마음먹고 일부러 8월 일정은 조금 널널이 비워두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바캉스를 계획했다.

클레멍스와 마린은 내가 프랑스에 와서 처음 사귄 프랑스 친구들이다. 내 프랑스어 실력은 거의 이 친구들이 성장시켰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프랑스에 적응하는데 가장 많은 도움과 정신적 지지를 해주었던 친구들이다. 3학년이 끝나고 클래멍스와 마린은 다른 학업을 위해 도시를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거의 5년 이상 보지 못했다. 조금 어색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바캉스 하면 역시 프랑스 남부 아니겠어?” 하며 처음에는 남부 여행을 계획했으나, 파리에 사는 클레멍스와 프랑스 서쪽 끝에 있는 캥페르에 사는 나에게는 이동하는 시간이나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결국 모두에게 중간 지점인 낭트(Nantes)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Pornic이란 도시로 바캉스 장소를 결정했다. Pornic은 프랑스 중부에 있는 작은 바닷가 도시로 보통 겨울에는 유령도시처럼 고요하지만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바캉스를 보내러 온다.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많고 으리으리한 전원주택이 많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이상하게 어색한 게 하나도 없다. 마치 엊그제 만났던 것처럼 익숙하다. 오랜 친구란 이런 건가. 클레멍스의 차로 낭트에서 Pornic까지 이동하며 대화하고 바캉스 메들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간단히 장을 보고 숙소에 짐을 내려놓은 뒤 곧바로 바다로 향했다. 현재 프랑스는 한낮 온도가 38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덥다. 숙소에서 10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해변은 전형적인 프랑스 바캉스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파라솔, 수건 위에서 피부를 태우는 사람들, 비치볼을 하는 젊은 친구들, 모래성을 만드는 아이들, 수영하는 사람들, 몸을 반만 담그고 수다 떠는 사람들, 남에 시선에 개의치 않는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연인들.


수건과 짐을 펼쳐놓을 장소를 물색한 뒤 곧바로 땀에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바로 바다에 몸을 담갔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도 바다 온도는 약 19-20도 정도로 차갑다. 한 번에 온몸을 물속에 담그는 클레멍스와 발을 적시고는 소리를 지르는 마린. 바닷물이 차갑기 때문에 조금 머물렀다 싶으면 금방 닭살이 돋는다. 몸이 조금 차가워졌다 싶으면 다시 해변으로 나간다. 물속에서 나온 물개들 마냥 젖은 몸을 말리러 모래사장 위에 펼쳐놓은 수건 위에 냅다 눕는다. 그리고 수다를 떤다. 그동안 있었던 전 남친 썰, 가족, 연예인, 회사 이야기, 해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몰래 속삭이기 등 머리 아픈 주제보다는 가십거리로 대화가 채워진다. 차가웠던 몸이 뜨거운 햇볕과 따뜻한 바람에 따뜻해지면서 슬슬 잠이 온다. 잠에 들다가도 웃긴 이야기가 들리면 다시 대화에 참여한다.

몸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다시 바다에 몸을 담그러 간다. 이렇게 서너 번을 반복하다 보면 훌쩍 세 시간이 지나간다. 태어나 제대로 몸을 태워본 적이 없는 나는 본래 넘처나는 멜라닌이 너무 과도해지지는 않을지 조금 걱정이 된다. 19시, 날씨는 여전히 뜨겁다. 큰 해변이 아니었기 때문에 점점 수면 위로 차오르는 밀물에 해변에서 쫓겨났다. 여전히 마르지 않은 수영복 위에 대충 훌렁한 원피스를 입고 시원한 맥주를 한잔 하러 근처 바로 향한다. 그늘 아래에서도 여전히 더운 것으로 봐서는 정말 올해가 덥기는 한가보다. 바닷가에 오래 있으면 금방 피곤해진다. 맥주 한잔에 몸이 스르르 녹는 것만 같다. 저녁에 바닷가 근처에서 콘서트가 있다고 하던데 숙소에 도착하면 바로 잠에 들어버릴 것만 같다.

다행히 숙소를 향해 조금 걷다 보니 정신이 돌아온다. 숙소에 도착해 피부에 있는 소금 잔여물을 씻어낸 뒤 함께 저녁을 준비한다. 클레멍스의 레시피를 따라 호박, 코코넛 밀크 카레를 만들기로 했다. 마린은 호박을 썰고 나는 쌀을 씻어 밥을 준비하고 클레멍스는 야채를 볶는다. 


이미 거실에 큰 테이블이 있지만 선선한 바람이 부는 테라스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아페로로 올리브, 소시송, 감자칩과 맥주를 준비했다. 샤워를 한 뒤 시원한 테라스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문뜩 이 시간이 여태까지 내 삶에 지나온 여름 중 가장 최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맥주 취기가 올라오니 친구들이 괜스레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우리 셋은 각자 성격이 매우 다르다. 클레멍스는 매우 이성적이고 차분한 반면 마린은 쉽게 흥분하고 감동받는 성격이다. 나는 그 중간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공통점은 모두 이기적이지 않고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점이다. 5일 동안의 바캉스 동안 서로에게 시킨 것도 아닌데 각자 자신의 역할이 있는 마냥 자연스럽게 청소를 하고 저녁을 하고 일정을 계획했다. 오랜 시간 보지 않았지만 이미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을 먹은 뒤 다시 낮에 갔던 해변을 향했다. 해변 근처에 있는 바 맞은편에는 매우 작은 간이 무대가 있는데 여름 내내 매일 다른 공연이 진행된다. 바에는 이미 사람들이 넘처났기 때문에 우리는 마실 것을 테이크 아웃해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해변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자 모두들 어깨를 들썩이고 박수를 친다. 바 테이블 위와 무대 앞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다. 공연이 막바지를 향해 가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우리도 슬리퍼와 가방을 내팽개치고 무리에 동참해 함께 춤을 추었다. 여기서 멋지게 춤을 추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다들 덩실덩실 흔들 수 있는 신체 부위를 자유롭게 흔들어 댄다. 

안타깝게도 공연은 23시에 막을 내렸다. 동네 주민들을 고려해 이곳에서는 거의 모든 바와 공연이 23시에 막을 내린다. 아쉬운 마음에 숙소로 돌아와 테라스에 앉아 다시 수다를 떤다. 그리고 잠에 든다. 이런 일정으로 바캉스의 3일을 보냈다. 바닷가에 가고 숲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단장을 한 뒤 저녁에 다시 해변에 돌아가거나 중심가에서 가볍게 한잔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제 모두 20살 후반이 되어가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파티보다는 부드러운 대화에 곁들이는 한잔 정도를 선호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게 새삼 웃기다. 


바캉스 4일 차, 하룻밤 사이에 온도가 10도가 내려갔다. 바닷가 동네는 이렇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변하고 비가 오면 여름이더라도 금방 날씨가 추워진다. 오히려 다행이다. 해변에 가는 게 슬슬 지겨워질 때쯤 날씨가 시원해졌으니 말이다. 결국 이날은 Pornic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Baule이라는 도시를 구경하기로 했다. Baule에 가면 크림 와플과 Niniche(캐러멜 류)를 먹어야 한다며 클레멍스가 우리를 와플가게로 데려갔다. 와플을 들고 길거리에 나와 비를 맞으며 거리를 구경했다. 바캉스 기간이긴 한가 보다. 일요일에다 날씨까지 안 좋은데 중심가에는 바캉스를 보내러 온 사람들로 넘친다. 이후에는 전시를 보고 카페에 간 뒤 다시 차를 타고 Pornic으로 돌아왔다.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저녁, 모두들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마치 인생에 어떤 걱정도 없었던 것만 같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걱정 없이 지냈던 순간이 최근 있었던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즐겁고 긍정적이었던 하루들. 정말 신나게 놀았다. 난 모든 것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이 여름 바캉스를 절때 잊지 못할 것 같다. 언제 다시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 


난 솔직히 프랑스인들이 왜 바캉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여태까지 잘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바캉스를 통해 왜 이 이러한 순간들이 삶에 필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의 스트레스와 걱정에 파묻혀 살다 보면 때때로 인간으로서 느끼는 풍만한 행복이란 감정을 잊고 살게 된다. 또 매일 즐겁게만 살다 보면 행복이란 감정의 가치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근사한 바캉스 장소나 비싼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잠시 일상을 빠져나와 보는 새로운 풍경과 오랜만에 다시 보는 친구들 그리고 말하기에 즐거운 대화들만으로도 완벽한 바캉스를 보낼 수 있다. 이런 순간들이 종종 있는 것은 인생을 사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 상기시키게 만든다.

바캉스는 끝날 때 조금 아쉬워야 좋다. 다음을 기다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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