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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Aug 18. 2020

오디션 by 무라카미 류

50p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은 시간뿐이다. 상처가 치유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너무나 상처가 깊은 경우에는 시간에만 몸을 맡기고 하루가 끝났으니 오늘은 우선 나의 승리다, 고 생각하는 것이 최상이다. 


111p

야마사키 아사미와의 시간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즐거웠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평가가 그 쾌락에 의해 결정되어버렸다. 아오야마는 야마사키 아사미에 관한 의심을 자동적으로 거부하고 있으면서 스스로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126p

야마사키 아사미가 창백해진 안색으로 그런 말을 하였으므로 아오야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었다. 양복 위로도 표시가 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131p

어느 책에선가 읽었는데 어떤 학대 경험자는 자라서 타인에게 미움받을 행동을 무의식중에 해버린대. 그래서 주위에서 실제로 자신을 싫어하면 오히려 안심한다는 것이지. 


138p

젊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노골적으로 호감을 표시했다는 들뜬 감정은 택시 안에서 혼자가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몸을 흐르는 혈액이 꿀이 되어버린 듯한 달콤한 느낌이 아오야마를 묘하게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택시 시트에 남은 야마사키 아사미의 코롱 향기를 느끼고 손을 잡을지 말지 진지하게 망설였던 자신을 음탕하다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마흔두 살의 중년남자 역시 그럴 때가 있구나, 하고 그때의 자신을 달콤한 고양감의 힘을 빌어 긍정했다. 그러자 모든 중년남자에 대한 까닭 모를 동정심 같은 것이 생겨났다. 흐뭇한 기분이 되어 돌연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진 것이었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온 세상의 중년남자에게 지금의 자기 기분을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물론 요시가와 이외에는 그럴 친구가 없었다. 


164p

야마사키 아사미가 바로 옆에 있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데도 어깨를 부딪치며 나란히 앉아 있으니 아오야마는 긴장했다. 목이 말라 청주를 비우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긴장해서 침착함을 잃고 게다가 같이 있는 이성의 마음에 들고자 애쓸 때 인간은 말이 많아진다. 


204p

야마사키 아사미의 손가락 끝은 얼음 같기도 하고 새빨갛게 달궈진 금속 같기도 하다. 아오야마는 어느 틈엔가 트윈베드 사이에 서서 스웨터를 벗고 있었다. 


228p

누군가에게 고백하거나 우는소리를 하는 것이 일시적인 기분 전환조차 되지 않으며, 결국은 그때까지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상실감에 익숙해질 때까지 괴로운 시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게히코는 알고 있었다. 


229p

잡지의 그라비어에 톱모델의 누드가 실려 있는 것을 보면 아오야마의 전 신경이 그 여자는 이런것이 아니었다고 호소한다. 마약과 같다, 비유법으로 마약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흥분계와 진정계 양쪽에 마약 성분과 똑같은 것을 야마사키 아사미는 아오야마에게 제공한 것이다. 그것을 대신할 만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아오야마 자신보다도 아오야마의 전 신경이 알아버렸다. 신경은 정직하고 생리적이다. 설득 따위는 듣지 않는다. 



<작품해설> 


271p

이인증을 안고 있고 자기평가가 낮은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몸짓이 하나하나 스트레스가 되므로, 패닉을 피하기 위해 감정마비에 빠지게 된다. 싱글벙글 웃는 가면을 쓰고, '좋은 사람'을 연출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를 필사적으로 읽어내려고 한다. 이런 것에 전념하는 동안, 자신은 뭐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런 류의 사람들에게는, '거짓 자기'라는 두터운 갑옷이 발달하게 된다. 


277p

생각해보면 부부관계란 어린이로 되돌아가려는 경쟁 같은 것이다. 술집에서 만난 알코올 중독자 두 사람의 관계와도 비슷한 것이어서, 먼저 취해 널브러진 사람이 이긴다. 진 쪽이 술값을 계산하고, 널브러진 자를 집까지 데려다준다. 보통 이기는 쪽은 남자이며, 아이로 돌아간 남자는 아내의 보살핌을 받는다. 남자가 이기는 것은 세상이 그것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잖게' 보이는 남자여도 집에서는 아이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한편, 여자이면서 승리한 사람은, 앞에서 이야기했듯 일종의 독특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다. 패배한 남자에게도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특유의 경향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례가 적어진다. 


278p

슬프게도, 가장 드문 것은, 친밀하면서 대등한 남녀 관계가 결혼 후에도 계속 유지되는 경우이다. 성숙한 어른끼리의 관계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되기 위해서는, 한 편이 다른 한 편의 아이가 되려고 하는 야심이, 의식적, 의지적으로 배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이런 두 사람은 두 사람 모두 어딘가 외롭다. 그래서, 외로움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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