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을 장점으로 볼 수 있는 아파트

OOO, 너로 정했다

by 낮잠
"너희 아파트 언덕에 곤돌라 설치 예정이라며?"
"우사인볼트급으로 10분 달려야 역세권이라며?"


내가 매매하고 싶은 아파트는 칭찬글 못지않게 조롱글도 있는 아파트였다. 요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언덕 위에 있다는 것. 둘째, 비역세권 아파트라는 것. 하지만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민의 시간은 있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이 아파트만 서너 번을 임장 했었다. 단지 산책도 해보고, 다양한 대중교통편도 이용해 보고, 여러 명의 부동산 소장님을 만나 사려고 하는 평형보다 더 작은 평형의 매물도, 더 큰 평형의 매물도 임장해 보았다.

*<언덕>, <비역세권>이 내게 감당가능한 단점인 이유
(1) 끝동 앞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마을버스 배차간격이 5분~10분으로 짧았다. 마을버스 회차지여서 좌석도 항상 여유로웠다.
(2) 평탄화가 되어 있다. 앞동의 지대를 높여서 지었기 때문에 실제 지형의 경사도에 비해 단지의 경사도가 완만하다. 단지 입구에 있는 잠깐의 경사만 지나면 언덕을 오르고 있다는 걸 인지하기 어려웠다. 또한, 마을버스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단지 입구에서부터 걸어올 일이 별로 없다.

직접 움직여서 체험해보지 않고 멀리서 동네의 풍경만 보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아파트 끝동을 지나 더 위에 있는 다른 아파트 단지로 가면 등산로가 보인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리고 단점을 감당하면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단점을 뒤집어보면 보이는 장점
(1) 언덕 위의 비역세권 아파트여서인지 주변 신축에 비해 호가가 낮았다.
(2) 숲세권인 덕분에 열차 소음, 대로변 소음 공해로부터 자유로웠다.
(3) 횡단보도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다. 평지로 이루어진 대단지는 길을 사이로 두 개의 단지로 나눠지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이 아파트는 대단지임에도 단지를 가로지르는 길이 없다. 평지가 아니기에 생겨날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1)번과 (2)번은 임장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점이지만 (3)번은 임장을 하면서 알아챈 장점이다. 단지가 도로로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커뮤니티나 스카이라운지 등의 편의시설로 이동하기에 용이했고 나는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육각형 아파트는 구할 수 없지만 내가 원하는 장점을 갖추고 양보할 수 있는 단점을 갖춘 아파트는 존재했다.


열심히 임장을 다니지 않았다면, 내게 맞는 집은 없다고 생각하며 육각형 아파트의 시세에 맞춰 돈을 더 모을 생각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결국 돈을 모으는 것에도, 아파트를 사는 것에도 실패했을 것이다.


또한 내가 불편한 집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어떤 단점을 감당할 수 있고 어떤 단점은 감당 못하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도보만 가능한 준역세권보단 가까운 버스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언덕에 있는 집에 사는 것은 불편하게 느끼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것이 내가 다양한 집에 살며 나 자신에 대해 깨달은 점이었다. 사람들이 실패한 연애를 통해 맞는 사람을 찾아가듯 나 역시 그렇게 집이라는 동반자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아파트로 마음이 기울게 된 이상, 이곳에서 적합한 매물을 찾아 계약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매물을 찾으면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매매가'였다. 주변 신축보다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원하는 매물의 호가는 싱글인 내가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매매가를 조정하기 위해 협상이 가능한 매물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에게 던져졌다.


"대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감당하실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열심히 대출 계산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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