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최고의 아이쇼핑 - 신축아파트 임장기(2)
6억 이하의 육각형 아파트 어디 없나요?
네이버부동산에 매물을 올린 공인중개사와 임장 약속을 잡았다. 육각형의 동반자를 찾아 결혼정보회사에 간다면 이런 느낌일까? 임장은 마치 육각형의 동반자를 찾는 과정 같았다.
첫 번째 아파트
[서울과 직선거리가 가장 가까운 경기도의 아파트]
서울과 직선거리가 가까운 만큼 많은 버스들이 지나다니는 아파트다. 대로만 건너면 도보로 접근 가능한 전철역도 있었다.
첫인상도 좋았다. 아파트 문주 앞 분수와 조경이 청량한 느낌을 주었다. 숲, 공원과도 가까웠다.
그러나 소형 평수는 국도와 인접해 있다. 방음벽이 있다고는 하지만 창문을 열면 경적 소리 등의 차량 소음이 적나라하게 들렸다. 소음뿐만 아니라 먼지 문제로 창문을 열고 사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숲과 공원이 싱그러운 인상을 주며 아파트를 감싸고 있는 것과 반대로 정비되지 않은 주변 환경이 아쉬웠다. 이런 경우 주변의 숲, 공원, 도로가 오히려 아파트를 섬처럼 가두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두 번째 아파트
[교통 호재가 있는데 이웃 아파트보다 저렴한 이상한 아파트]
신축임에도 저렴한 호가의 매물들이 존재한다. 다른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돈으로 이 아파트를 산다면 더 큰 평수를 살 수 있다.
이 아파트와 바로 이웃해 있는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인 것에 비해 매매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다. 가두리가 아니냐는 의혹 어린 댓글도 호갱노노에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보인다. 신축 아파트임에도 하자보수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보도블록이 보였다.
또한 사라지기 힘들어 보이는 시설들이 보였다. 공단, 모텔촌, 술집 등.
오후부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아저씨들을 거리에서 보았다.
세 번째 아파트
[한 가지 빼고 완벽했던 화려한 야경의 아파트]
두 번째 아파트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는 세 번째 아파트에 도착했다. 큰 단점을 찾기 어려운 아파트다. 가격은 오름세였고 거래는 활발했으며 부동산 사무실에서 팸플릿을 나눠주며 다양한 매물을 소개하는 모습이 활기 있어 보이고 인상적이었다.
넓은 평수를 매매할 경제적 여력이 된다면 매매하고 싶은 아파트였다.
그런데 소형 평수는 개방형 복도로 창문이 없는 게 문제였다. 샤시 설치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찾아봤으나 요원해 보였다.
임장이 끝나니 어느덧 밤이었다. 오픈된 복도에서 볼 수 있는 아파트 단지의 야경이 매우 화려했다. 넓은 평지에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서 단지 내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조깅하는 사람의 표정도 만족스러워 보였다.
이렇게 넓게 퍼져있는 대단지는 동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내부 커뮤니티나 외부 교통편을 이용할 때의 편의성이 동의 위치에 따라 차이가 클 것 같다는 생각이다.
네 번째 아파트
[열차의 울림을 느낄 수 있는 메가 진화 아파트]
네 번째 아파트는 대단지 그 이상이었다. 보통의 대단지 아파트를 곱빼기로 주문하면 이런 규모가 될까. 메가 진화를 한 듯 보였다. 규모가 워낙 커서 멀리서 바라볼수록 장관이었다.
메가 진화(?)는 나에게 아직 낯선 단계인 걸까. 너무 빽빽한 아파트 숲을 걷다 보니 삭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이곳은 단지 내에 길고양이들이 너무 많았다. 족히 네다섯 마리는 되는듯한 고양이 무리가 나의 걸음을 보고 재빠르게 도망쳤다. 다른 동 앞을 걷다가도 또 고양이들을 만났다.
쿵-쿵-쿵-쿵-쿵-쿵-쿵-쿵-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기차역도 아닌 길 위에서 기차의 진동을 느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진동도, 소음도 꽤 컸다. 그리고 자주 반복되었다. KTX와 일반열차가 매우 자주 지나갔기 때문이다.
대단지 앞이라 젊은 감각의 상권이 만들어져 있는 것은 좋았다. 임장을 끝내고 피곤에 지친 나는 깔끔한 분위기의 펍에 들러 피자와 맥주를 먹었다. 공인중개사에게 연락이 왔다. 임장 했던 매물 중에서 곧 계약이 될 것 같다던 합리적인 가격의 매물은 계약이 된 모양이었다.
다른 매물들의 호가를 알려주는 공인중개사의 문자가 왔다. 하지만 나는 이 아파트들을 재방문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에는 다른 아파트 하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층, 원하는 가격의 매물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 마음에 두고 있던 아파트였다. 네 곳의 아파트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거기서 거기 오십 보 백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차이점이 보였다. 그 사소한 차이는 크게 느껴졌다.
부동산 선생님이 알려준 임장 체크리스트? 부동산 유튜버들이 알려준 투자하기 좋은 아파트? 기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가 살 곳 한 곳만큼은 그냥 머릿속에 들어왔다. 최종 선택은 결국 감성의 영역인 것 같다. 1인가구가 첫 아파트 구입을 위해 너무 오래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육각형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