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아이쇼핑
경기도에 있는 6군데의 신축 아파트를 더 임장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과 살아갈 동네를 정한다고 생각하니 신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30년을 살지, 10년을 살지, 3년을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떠날 때 이곳이 싫어서 떠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했다.
여섯 군데 중에서 서울과 직선거리가 가장 먼 한 곳은 후보에서 바로 제외했다. 근처의 구축 가성비 아파트를 임장할 때 그곳에도 들러본 정도였다. 그곳은 건물이 정말 '신축'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장점이 느껴지지 않는 아파트였다. 먼 곳을 임장하고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누웠던 기억이 난다.
재미가 있어야 체력의 한계도 극복되는 것 같다. 나머지 다섯 군데 아파트는 지치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임장했다. 같은 시에 있다고 해도 위치가 조금씩 달라 찾아가는 길도 제각각이었지만, 왠지 내가 그 시 안에서 정착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 아파트가 다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여도 장단점이 다 제각각이어서 재밌었다. 최고의 아이쇼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최종 결정을 하기 정말 어려웠다. 마음에 든 아파트는 최종 결정을 전까지 여러 매물을 보러 여러 날을 왔다 갔다 했다.
연속해서 너무 많은 매물을 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매물을 본 뒤 아파트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며 메모하고 생각을 정리한 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나는 왠지 그 동네의 기운을 받는 느낌도 들었다. 처음 가는 동네의 처음 가는 카페에 한가로이 앉아 창 밖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떤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일까?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에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살게 될까?'하는 좋은 상상을 했다.
부동산 사무실에 앉아 공인중개사 소장님과 담소를 나누었던 것도 기억에 남았다. 혼자 아파트 임장을 다니는 내가 신기했는지 부동산 소장님은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아파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근처 다른 아파트도 임장할 것이라고 운을 띄우면 그 아파트에 대한 부동산 소장님의 냉정한 평가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 평가가 결국 맞았기 때문이다.
A 아파트 부동산에서는 B 아파트를 넌지시 물어보고,
B 아파트 부동산에서는 A 아파트에 대해 넌지시 물어봤다.
임장을 갈 때는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대중교통을 탔다. 올 때는 근처의 상권(마트, 카페 등)도 이용해 보고, 아파트 단지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도 걸어보고, 매물이 있는 동에서 지하철 역까지도 걸어보았다. 입주민이 들어갈 때 같이 살짝 들어가서 커뮤니티도 구경하고 나왔다. 내부 시설은 주민 인증으로 열리기 때문에 로비의 분위기만 엿본 정도지만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단지의 조경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도 들어봤다. 테이블이 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움직일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투자 목적이라면, 내 첫 번째 선택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 곳을 정하는 게 목적이라면, 마음이 가장 이끌리는 곳으로 가장 좋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