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처럼 눌려버린 노예 역무원

호떡 아저씨가 부러워졌다.

by 낮잠

이 회사는 시키는 사람들만 있나?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시키는 사람들만 회사에 있으면 회사가 돌아갈까요? 당연히 그 일을 하는 노예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역무원은 노예입니다.


현금 수입금을 가져가는 업체가 왔습니다.


업체 직원이 자투리 돈뭉치를 나에게 들고 오더니 이런 식으로 돈을 나눠놓지 말라고 한마디 합니다.


수입금을 가져가는 업체가 한마디 하는 건 처음이라 저도 되묻습니다.


- 담당 직원이 그렇게 묶어놔서 저도 왜 그렇게 해놨는지 이해가 안 되기는 하는데요. 일단 자투리 돈이 두 개로 나뉘어 있다면 지폐계수기로 합계를 세면 합계가 맞지 않을까여?


수입금 업체 직원은 그동안 돈을 그렇게 분류했던 그 직원 때문에 화를 많이 참았었는지 짜증을 냅니다.


- 아니 그럼 그것까지 우리가 맞춰봐야 하나요?


황당한 건 저도 마찬가지지만 죄송하다고, 담당 직원께 이야기하겠다고 대답합니다.



새벽 단전작업 후 역무 기기의 전원이 고장나 기술 분야 직원에게 보수를 요청합니다.


꺼진걸 다시 켜볼 생각도 하지 않고 보수해 달라 시키기 좋아하는 일부 역무원들 때문에 이미 역무원을 믿지 못하는 기술 직원분들은


항상 기기를 껐다 켜보고 신고하라고 답해줍니다.


이미 주간 근무조에서 해봐도 안 되었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역무원도 있다는 걸 알기에 한번 더 두 번 더 세 번 더 기계를 다시 켜보고, 고쳐보려고 노력합니다.


정말이지 시키기 좋아하는 일부 직원들은 본인들 자리에서 사용하는 휴대용 정산기의 전원 코드가 뽑혔지만 선을 찾아서 다시 꼽아볼 생각도 못합니다.


기술 직원을 부르면 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본인도 염치가 없는지 기술 직원을 부르지 못하고 일을 미루다가 시일이 지나니 다른 직원에게 기술 직원을 부르라고 시킵니다.


전원이 공급되지 않아 기계가 계속 꺼진 지 며칠은 지난 모양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역무원은 그 책상에 가서 수십 년 묵은 책상 밑의 먼지들을 손으로 만져가며 전선을 찾아 다시 꼽는 데 성공합니다.


자기 책상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책상 밑 부분을 한 번쯤은 들여다보게 되지 않나? 역무원은 의문이 듭니다.


다들 본인은 하기 싫고 시키기만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단전 후 비상게이트가 고장 나 카드 인식부 전원이 잘 들어오지 않는 편입니다.


그동안은 그런 고장이 잦지 않아서, 비상게이트를 리셋할 줄 모르는 역무원은 기술 직원에게 조치 방법을 문자로 안내받아 조치하려 합니다.


바쁜 기술 직원은 비상게이트에 두 개의 기둥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당연히 기둥을 열고 선을 뺐다가 뽑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역무원이 반대쪽 기둥을 열고 조치를 했다가 고장이 났습니다.


기술 직원은 몇 시간 뒤 역을 방문해 역무원에게 말합니다.


- 다음부터는 그쪽 기둥은 열지 마세요.


노예 역무원은 네 알겠습니다. 순순히 답합니다.




종착역에서 일하는 역무원은 종종 열차 차장님들의 다급한 무전을 받습니다.


차내에 만취자를 끌어내라는 말입니다.


역에는 사회복무요원도 없고, 운전 직원과 역무원 둘 뿐이었습니다.


역무원은 혼자 차내로 들어가 100킬로는 족히 되어 보이는 남자를


차내에서 질질 끌어냅니다.


금방 나오지 않는다는 화난 무전도 종종 받았습니다.


당황한 역무원과 사회복무요원은 그때마다 차내에 들어가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냈습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을 끌어내느라 고생하고 있는 저희들 옆으로, 일을 재촉하고 자신의 일을 끝냈다고 생각한 차장님이 유유한 걸으며 지나갑니다. 한 번 눈길을 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걸어갑니다.


고생하는 역무원을 본 역장님이 한 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거 원래 역무원이 하는 일은 아니야. 우리가 도와줄 수는 있는데, 원래 차내에서 일어나는 일은 차장이랑 기관사가 해결해야 돼."


하지만 역장님은 역무원에게만 그런 말을 해 주었을 뿐, 막상 일을 시키는 그들에게는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그들은 역무 분야보다 노조의 힘이 센 승무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역장님이 아니라 역무원과 사회복무요원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역무원은 직대(직무대리)입니다.


근속승진을 해서 높은 직급이 된 분들이 부역장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근속승진 폐지 후 승진도 못한 직원이 부역장을 대리해서 맡았습니다.


그래도 맡은 바를 열심히 하려던 어떤 역무원은, 그냥 자신은 역무원도 부역장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곧 깨닫습니다.


하루는 역무원이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부역장님이 하셨던 것처럼


파쇄기에 쌓인 종이 조각들을 부지런히 큰 비닐에 모아두었다가 김장 비닐이 어느 정도 찼을 때


사무실을 청소하러 와 휴지통을 비우는 청소 여사님께 조심스럽게 그 봉지를 건넸습니다.


- 이거 다 모였는데 부탁드려도 될까요?


청소 여사님은 핀잔을 줍니다.


- 아니 이렇게 종이들을 모아서 주면 나 보고는 어떻게 하라고요. 2년을 넘게 근무하면서 이렇게 종이를 모아 주는 사람은 첨 봤네.


다른 부역장님이 봉지를 내어 줄 때는 말이 없었기에 괜찮은 줄 알았더니, 안 괜찮으셨던 것입니다.




한 번은 휴일을 보내고 다음날 출근을 했는데 근무하지 않은 전날 일어난 일에 대해서 서무 직원이 물어봅니다.


어제 변기에 등받이를 설치하지 못한 이유가 궁금하다며 변기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합니다.


역무원은 변기에 등받이를 이리 대 보고 저리 대 보면서 힘들게 사진을 찍어 서무에게 보냅니다.


서무와 본부 담당자는 역무원이 보낸 사진을 보더니 등받이 설치가 가능할 것 같은데 왜 안 될까요? 물어봅니다.


어제 작업한 업체 반장님께 전화해서 물어봅니다.


반장님은 ‘철도공사 이래서 문제야! 인수인계가 전혀 안 돼! 내가 어제 다 설명을 했거든! 근데도 아직도 전달이 안 됐어?’라며 투덜대는 말투셨지만 죄 없는 역무원에게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상황을 이해한 역무원은 본부 담당자에게 이를 전달했고 상황은 정리되었습니다.



- 내가 보고한 거 안 읽어봤어? 안 읽어봤냐고.


야간에 출근한 부역장님은 주간에 일어난 상황을 브리핑받고 직대 역무원에게 면박을 줍니다.


- 읽어봤어요. 그런데 제가 이해를 못 한 건지, ‘중심이 안 맞는다’고 적혀있어서


앞으로 중심이 쏠려서 기울어진다는 건지, 옆으로 중심이 안 맞는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서요..


- 아니 본인이 이해가 안 됐어도, 본부에서 물어보면 내가 보고한 그대로


중.심.이. 안. 맞. 는. 다. 이렇게 읽으면 되잖아. 그게 어려워?


- 서무랑 본부에서 그 보고 문서를 읽고 다시 되묻는 건데 그걸 그대로 읽어드릴 수는 없어서…….


- 그걸 내가 어제 얼마나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다 끝내놨는데. 제가 보고한 문서 열어보세요.


열어보세요.


이거 읽어본 거 맞냐고요.


다른 직원들과 공익요원들까지 눈치를 보며 분위기는 싸해질 대로 싸해졌는데, 부역장은 멈추지 않고 직대 역무원을 잡도리합니다. 역무원 계정으로 로그인되어있던 업무 포털 메일함을 열더니 역무원이 메일을 읽었는지 직접 확인까지 합니다. 역무원은 메일을 읽고 그 메일을 중요한 메일함 폴더로 옮겨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억울한 역무원은 대답했습니다.


- 읽어 봤다고 말씀 드렸는데요…제가 읽고도 차마 그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서요...


- 봤어? 본거 맞아? 봤으면 그대로 읽어서 답변하면 되잖아. 그러면 되는걸 왜 본인이 생각을 해보고 답을 해요? 됐어요. 퇴근하세요.


알아보고 답변한 죄밖에 없는 노예 역무원은, 퇴근하겠다는 본인의 인사에 아무도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담담히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갑니다. 매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역무원의 경험상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매너가 없었습니다.


본인이 전달한 문서를 본인 외의 여러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면,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설명이지 면박이 아닐텐데....... 수능 언어영역 1등급 출신에 읽기라면 일가견이 있는 역무원도 독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사들을 자주 만날 때마다 역무원은 이 곳에서 배울 점이 없다는 생각을 자꾸 거듭하게 됩니다.


이번엔 상사라고 하기도 뭐합니다. 어쨌든 같은 부역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직대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다른 부역장이 직대 역무원과 똑같이 행동을 했다면


그 날 부역장은 '읽어 봤어?'라는 말을 감히 다섯번이나 반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찌는 여름이라 스크린도어가 열을 받아 동시에 여러 군데씩 고장이 납니다.


몇 년 전 스크린도어 보수직원이 스크린도어 장애 조치를 하다가 돌아가시는 가슴 아픈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보수 직원분들은 장애가 났을 때 안전수칙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고 협의하고 역 현장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오시기 전까지 평균 한 시간 정도는 역무원이 스크린도어를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35도가 넘어가는 폭염 경보가 있는 날은, 우리 역뿐만 아니라 많은 역들이 동시에 문제가 생겨서


다른 역들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보수 직원이 한나절이 걸린 후에 도착한 적도 있습니다.


오전 11시에 고장신고를 하고 어느덧 오후 4시였습니다.


역무원은 보수직원분들이 오실 때까지 체감온도 40도가 되는 승강장을 지킵니다.


출입문이 고장 난 상태에서는 승객의 안전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크린도어 장애는 매우 자주 있는 일입니다.


사고 이후로 보수 직원은 무조건 2인 1조로 근무하라는 보장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역무원은 현실적으로 혼자라도 출동해야 합니다. 빨리 출동하지 않으면 열차 직원과 운전 담당자에게 많은 연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후에 올 보수 직원을 기다리느니 스스로 기계를 고쳐보다가 위험할 것 같은 느낌도 받습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그것에 점점 무뎌집니다.


하지만 연속된 폭염 경보에는 몸이 무뎌지기보다 상하는 느낌일 수밖에 없습니다.


퇴근하고 다음 출근까지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잦아졌습니다.




역무원은 35도가 넘어가는 여름날 아파트 앞에 호떡 트럭을 대고 호떡을 파는 아저씨를 보며 생각합니다.


밖에 조금만 있어도 더워 기절할 것 같은 날씨에 호떡을 파는 아저씨가 마치 자신 같다고 말입니다.


고생하는 아저씨를 위해 더운 날 호떡을 팔아드렸습니다.


더운 날씨에도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의 호떡은 참 달고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 아저씨는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니라 나보다 나은 처지였구나 생각이 들어 뒷맛이 씁쓸했습니다.


호떡 아저씨는 당당하게 노동하신 만큼의 수입은 벌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예는 10년을 일해 기본급이 딱 300만원이 되었습니다.


그보다도 돈을 적게 번다는 가정을 하더라도 호떡 아저씨가 부러워졌습니다.


어떤 역무원의 일은 주도성도 없을뿐더러,


노예보다 월급이 두 배인 분들이 본인들은 하기 싫다고 시킨 일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더운 날에도 뚝심 있게 호떡을 파는 아저씨는 사업가였고,


줏대없이 노예처럼 끌려다니기만하는, 호떡이 된 '어떤' 역무원은 그냥 노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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