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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Aug 13. 2024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은 악덕업주들의 단골 멘트

가스라이팅에 유의하세요

희망 근무지 조사에 넣을 조직을 검색하다가 생각 없이 어떤 팀장님의 프로필을 누르게 되었는데 '도망친 곳에 낙원은 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피식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괜찮은 문구인데?'


흔히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한다.  말을 못돼 먹은 인간들이 써서 문제가 되곤 하는 말이다.


회사 내에서 근무지를 이동할 때 나는 가끔 이런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걱정하는 의도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결국 듣는 이에게는 덕담이 아닌 말.


[여기가 차라리 나을 텐데]


나는 어차피 떠나는 것이 정해진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잘하셨으니 거기서도 잘하실 거라 믿어요.]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절대적인 업무량이 더 많은 소속으로도 이동해보고, 적은 소속으로도 이동해 보았지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은 '업무량이 적은 소속'인 경우에도 해당이 되었다. 어차피 다 그 나물에 그 밥 된다는 론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떠날 때 [여기가 차라리 나을 텐데]라는 류의 말은 하지 않는 편이다.


늘 이동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결국 낙원행은 불가하다. 그렇다고 떠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지금 있는 곳도 낙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각자의 떠날 때가 왔다면 떠나는 것일 뿐이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회사 포털 자기소개란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용기 있게 적을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있다] 역설의 문구를 말이다.

만난 적은 없지만 나를 깨우쳐준 포털 속 직원분께 감사하다. 가는 사람 뒤에 재 뿌리는 이야기를 하는 주변 사람들보다는 훨씬 내공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아직 가능성이 있는 젊은 신입 친구들에게 말하곤 한다.

-꼭 도망쳐요...도망쳐......


도망치는 것에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 축하와 부러움의 박수를 쳐준다. 그리고 생각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어요.

그 나물의 그 밥을 결국 먹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대가 선택한 그대만의 낙원에 다다른 걸 축하해요.



"여기가 힘들면 다른 회사 가서도 적응 못해."

나의 넋두리에 선배는 정색하며 말했다.


여름만 되면 덥다는 민원이 잔뜩 들어오고, 겨울만 되면 춥다는 민원이 잔뜩 들어오는 지상 역사였다.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 잠깐 역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인내심을 자극할 만큼, 냉방과 난방이 소용이 없는 지상 역사에서 하는 직원들은 얼마나 덥고 춥겠는가.


점심시간에 요깃거리를 사러 옆 마트에 들렀는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너무나 청량하고 상쾌했다.

계산대에 서 계시는 이모님들이 보였다. 계산대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도, 냉방의 강렬한 행복감을 맛본 그 순간은 이모님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도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

여기서 일하는 한 이루어지기 어려운 바람이었다.


"은행이나.....사무실에서만 일하는 직장에 취업할 걸 그랬나 봐요. 여름에 땡볕에서 일하려니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투덜거렸던 것이다. 


나에게 면박을 주던 선배는 종합안내 업무를 배워보라는 상사의 지시로 종합안내소에 갔지만, 업무 교육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안내소를 박차고 뛰쳐나갔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헛웃음이 잔뜩 나왔다.


사람은 역시, 말은 말일뿐이고 막상 자기가 겪은 일 앞에서는 한없이 약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가 힘들면 다른 곳에서도 적응 못한다던  선는 그 역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오래지 않아 떠났다.


우리는 모두 도망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본인의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들만이 강함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지 않을까.


다음에 또 누군가가 '어딜가나 똑같으니 도망쳐봤자~' 식의 격언을 좋지 못한 의도로 들이댄다면, MZ답게 이렇게 대꾸해보는 상상을 한다.


다 똑같으니 도망쳐도 되는 거 아닌가요?

거기도 낙원은 아니지만 여기도 낙원은 아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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