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의 가방 속 방랑

친애하는 여러분

by 밈혜윤

F는 총총거렸다.

F에 대한 인상은 종종 대는 걸음걸이로 남아있다. 다만 왜 F가 총총 걸어 다닌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F는 걸음이 빠른 편은 아니다. 심지어는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편인데, 나는 늘 F가 총총거린다고 생각했다. F를 보고 있으면 참새가 생각났다. 본인은 느긋하게 다닐지 몰라도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통통 튀어 다니며 서두르는 것 같은, 앙상한 다리의 작은 새.


F는 늘 바빴다. 교환 학생으로 떠나 외국에서 적응하느라 바빴을 텐데,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대외활동을 하고 자격증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해야 할 일이 출석과 술 마시기 밖에 없던 대학교 1, 2학년 때는 연애를 하느라 바빴었다. 고학년 땐 오랜 연애에 마침표를 찍느라고도 수고스러웠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참새는 어둡고 습한 지하의 과방에서 사랑스러운 개소리를 짹짹 내뱉었다. 시험기간에 절정을 찍는 F의 개소리에 우리는 배가 찢어지도록 웃어댔다. 한참 웃고 나서 열람실에 앉으면 그렇게 잠이 쏟아졌다. F의 농담을 되새김질하며 이길 수 없는 잠과 싸우는 시간은... '대학생다운' 시간이었다. 어릴 때 봤던 드라마 <논스톱>에 나오던 대학생들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눈을 깜박 감았다가 뜨면 해는 저문 뒤였다. 밖에 나가보지 않아도 해가 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인문대는 한여름에도 밤이면 쌀쌀함이 피부를 간질였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그때는 중앙도서관, 본관 등 학교의 핵심 건물만 환하게 밝혔다. 농담 삼아 등록금만큼만 불을 밝혀준다고 말했던, 학교 안에서도 외곽에 있어 어두컴컴한 인문대 앞에 모여서 허리를 짚고 짝다리로 서있던 F가 눈에 선하다. 다들 왜인지 푹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한 얼굴로 저녁 메뉴를 주워섬겼다. F는 어어, 난 상관없어, 나는 다 좋아, 하다가 예의 걸음걸이로 함께 저녁을 먹으러 다녀왔다.


보부상 F의 방랑

F는 불룩한 가방과 노트북을 짊어지고도 모자라서 쇼핑백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F의 짐 속엔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궁금했다. 네 가방엔 뭐가 그렇게 많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F의 가방에는 에어컨 바람에 맞설 카디건, 틴트, 사용감이 묻어나는(그러니까 더러운..) 거울이 달린 화장품 쿠션, 주로 수업 시간에 필담을 나누는 용도로 사용되는 노트와 필통, 들고 다닐 수 있는 선풍기 따위가 있었다. 재밌게도, 필통이 있었지만 필통 밖에 굴러다니는 펜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미니멀리스트였다. 학교에 가방조차 들고 가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주변에 노트 두어 장을 찢어달라고 했고 과방의 지저분한 책상 위에 놓인 주인 모를 펜들을 빌려 썼다. 내가 번거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방조차 들고 가지 않은 날이면 F는 사뭇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언니, 가방 없어? 그러면 나는 씩 웃으면서 답했다. 응. F는 장난스럽게 화답하곤 했다. 너어는 진짜, 공부 되게 싫어한다. 이제야 말하지만 너어는 가방은 꼬박꼬박 들고 다니지만 공부는 같이 더럽게 싫어했잖아.


F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여기저기를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갑자기 신촌을 갔다가, 강남에 갔다가 했다. 어느 날엔 대외활동 회의, 또 어느 날엔 취업 스터디, 어느 날엔 영어 시험. F는 어깨가 많이 아플 거 같다는 내 생각에 화답하듯 틈만 나면 어깨나 목을 문질렀다. 무거운 짐 진 자는 내게 오라던 예수도 F의 짐더미를 보면 깜짝 놀라서 도로 돌아가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F의 지독히 바쁜 나날들은 F에게 어떤 결과를 재빨리 성큼 쥐어주진 않았다. 도리어 큰 고민을 줬다고 생각한다. F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곱씹으며 방랑했다. F의 고민 어린 여정은 방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갈팡질팡 어쩔 바를 모르는 방황이 아니라.


무거운 짐과 그보다 무거운 고민과 걱정, 피로를 안아 들고 서울과 해외를 누비며 방랑했을 F의 시야엔 무엇이 있었을지, 나는 때때로 궁금히 여긴다. 방랑이 F의 시야를 좁아지게 만들고 있을까? F는 자기의 발걸음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까? F라면, 불안과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F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F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F는 할 수 있는 것, 할 줄 아는 것이 많았다. 너무 많기 때문에 도리어 특별히 도드라지는 게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스스로 특별하지 않다고 섣불리 믿어버린 F는 드넓은 선택지에서 헤맬 수밖에 없었다.


F의 여러 재능, 특히 함께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우 특별한 재능은 F의 눈에 띄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F, 내가 너에 대해 아는 것들을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네가 찾는 특별함과 너의 방랑의 끝은 언제나 네 커다란 짐가방 속에 너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겠지. 넌 뭐든지 할 수 있으리란 걸 알게 될 거야.

금요일 연재
이전 13화아빠와 글을 짓던 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