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밈혜윤 Mar 22. 2024

아빠와 글을 짓던 주말

친애하는 여러분

   아빠는 활자 중독

   아빠는 독서광이었다. 나는 아빠 덕분에 활자 중독이라는 말을 배웠다. '활자 중독? 우리 아빠?' 할 정도로 그는 늘 뭔가를 읽고 있었다. 아빠는 새벽같이 일어나 종이 뉴스를 구석구석 읽고,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한 후 인터넷 뉴스를 왕창 읽었다. 점심을 마치면 0의 개수를 세어 보다가 포기하게 되는 숫자가 많은 보고서, 어려운 말로 가득 찬 아주 두꺼운 책 등을 읽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 그가 좋아했던 책은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였다. 아직도 아빠의 책장엔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가 전집이 꽂혀 있다. 심지어는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그는 아무 물건을 집어 뒷면의 제조 업체, 영양소 표시 따위를 읽고 있었다. 


   아빠가 서재에서 독서에 골몰할 때 나도 내 책장에서 책을 골랐다. 일요일 오후면 집에 찻물처럼 우러나던 독서의 분위기는 놀이터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좋았다. 유년 시절의 좋은 날을 생각하면 8할은 일요일에 누워서 책을 읽던 기억이다. 자전거 소리, 엘리베이터가 띵 울리는 소리, 두부를 팔러 온 아저씨가 종 치는 소리 따위가 메아리치던 복도식 아파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소란했다가 또 믿을 수 없게 고요했다. 아빠의 방은 늘 고요했다. 컴퓨터가 윙- 돌아가는 소리. 아빠가 책을 넘기는 소리. 두 소리만이 방을 채웠다. 


   우리 삼 남매가 들어가서 방해하지 않는 한 아빠의 서재는 쇠락한 왕국의 영지처럼 조용했다. 우리 삼남매는 아빠 서재에 쳐들어가서 아빠의 계산기 두드리는 걸 좋아했다. 우리가 마구 쳐댄 탓에 망가진 계산기도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빠의 계산기를 몇 개나 망가뜨렸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과연 우리 아빠는 계산기를 몇 개 갖고 있었을까가 더 궁금해진다. 아빠는 책상에도 계산기가 있었고, 서랍을 열면 또 서랍마다 계산기가 있었고, 가방에도 있었다. 


   가내 백일장 

   아빠와 가진 좋은 추억 중 하나는 이야기 짓기였다. 아빠는 일요일마다 이야기를 짓자고 했다. 단어를 하나 정해서 각자 이야기를 지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더 좋은 이야기를 고르게 하는 식이었다. 단어는 토끼, 소 같이 동물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짧은 동화 수준이었지만 아빠는 철학적인 고찰이 담긴 긴 글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어린이와 대결하면서 심오한 주제로 최선을 다하다니. 늘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하는 우리 아빠답다. 


   우리는 주로 엄마에게 심판을 맡겼다. 엄마는 처음 몇 번은 내 손을 들어주었다. 나중엔 귀찮았는지 아니면 자식에게 더는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할 수 없었는지 TV를 본다며 슬쩍 피했다. 나도 슬그머니 귀찮아져서 그만두었다. 아빠는 아쉬워했던 것 같다. 내가 이제 안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몇 번인가 은근하게 대결을 청했고, 나중엔 상금까지 걸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전통을 이어가지 않았다. 아마 창작의 고통을 어설프게 느꼈던 듯도 하고, 친구들이 좋아질 때였던 것도 같다. 


   일요일마다 이야기를 지으며 가내(그래봐야 참여자는 아빠와 나뿐이었지만) 백일장을 치러냈으니 초등학교의 짧은 글짓기 숙제가 어려울 리가 없었다. 한두 문장짜리 짧은 글짓기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가 잘해서 좋아하는 것이 되었다. 일기 쓰는 숙제도 싫어하진 않았다. 밀려서 두 달 치 일기를 하루에 쓰긴 했지만, 싫어서 안 했다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를 즐겨서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럴 수가. 그러고 보면 나의 한량 기질은 그때부터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내가 글을 즐겼던 데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참 컸다. 막 한글을 뗐을 때 엄마랑 계몽사 <디즈니 동화집>을 읽던 기억, 초록색 마을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가던 기억, 일요일 고요한 집에서 각자의 방에 도시락처럼 담겨 책을 읽던 기억과, 아빠와 글을 쓰고 겨루던 기억. 엄마도 아빠도 내게 글 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줬다. 다만 읽기를 넘어 쓰기까지 즐긴 부분은 아빠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아빠는 전문 서적을 몇 권이나 찍었다. 심지어는 해마다 내용을 갱신해서 몇 판이고 찍었다. 그는 늘 컴퓨터 앞에서 원고 작업을 했다.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어릴 때 내가 즐겨했던 행동은 타자를 치는 척 노는 것이었다. 나도 컴퓨터로 뭔가를 쓰고 싶었다. 


   뭔가를 쓰고 싶었다. 학교 숙제처럼 강제성 있는 것 말고, 생활기록부에 올리기 위한 것도 말고, 순수하게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을. 문장을 조몰락거리면서 나와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실은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언제쯤 쓸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마음속에 보관된 소설을 향한 내 욕망은 어쩌면 유전이 아닐까 싶다. 요즘 우리 아빠는 소설 집필에 열심이다. 가족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비밀스레, 성실히 만들어지고 있는 소설은 근면한 아빠를 게으른 나보다 훨씬 일찍 작가에 등단시킬 수도 있겠다(왜 당연히 등단에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게으르게 딴청을 피우고 있다가 언젠가는 그를 따라 소설을 쓴 사람이 될 것이다.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처음으로 내가 썼던 소설은 그때 일요일에 짓던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전 12화 L과 함께한 밤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