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색의 매력
석
그러고 보니 우리도 10년 차야! 석은 커피를 마시다가 눈을 둥글게 말아 웃으며 말했다. 벌써 그렇게 됐나? 흠칫 놀라 세어보니 진짜였다. 석과 나는 1년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꼬박꼬박 안부와 만남을 이어왔다. 석은 만날 때마다 90%의 확률로 밥을 사줬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모는 차가 바뀌어 있었다. 경차부터 이름도 모를 아주 커다란 차에 이르기까지.
그 정도로 차를 좋아하면, 그리고 끝없이 사고팔고를 반복하면 차량 전문 블로그를 해도 크게 됐을 텐데. 입 밖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석을 만날 때마다 그 생각을 한다. 석은 자동차에 대해 이야기하면 한층 밝은 얼굴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주워섬긴다. 난 잘 못 알아듣는다. 나는 일반인, 아니 일반인보다도 적은 관심도를 갖고 있다. 우왕 캐스퍼 귀엽다~ 수준. 미션이 어떻고 구동이 어떻고 하면 알 길이 없다.
올해의 만남에서는 내가 밥을 사줬다. 우리 둘 다 가고 싶어 하던 국밥집에 갔는데 어떤 리뷰어의 말 그대로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기만 했다… 그래도 석은 거의 남김없이 잘 먹었다. 헤어지는 길에 나는 석에게 가벼운 포옹을 했다. 어떤 이야기든 다 꺼내서 온종일 떠드는 사이는 아니지만 10년이나 쉼 없이 나를 찾아 불러내던 석.
내가 먼저 불러낸 기억이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은 포옹이었다. 석은 어색하고 떨떠름하게 받아줬다. 앞으로는 나도 너를 먼저 찾을게.
현, 소
이들에게 나는 정말 많이 얻어먹었다. 밥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먹고 술을 받기도 하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랜만에 얼큰히 취해서 몰려다니는 즐거움을 받은 게 제일 크지 않을까.
오늘 고? 물어보면 내가 어딜 ‘고’ 하자는 건지도 모르면서 일단 ”고!“하는 이 사람들은, 같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이다. 일종의 동지애를 갖게 한다. 이들과의 느슨하고 얼큰한 시간은 대학 생활의 어느 구간을 통째로 잘라서 복사 붙여넣기한 것 같다. 대학생 때는 늘 그런 식으로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차이가 있다면 조금 더 노쇠해진 지금의 나는 술을 절제한다는 정도.
보통 소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현과 내가 ‘얼’, ‘큰’을 담당한다. 드물게도 셋이 다 몽땅 취한 날이 있었다. 그날은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현과 소가 택시를 잡고 떠났다. 나는 집으로 걸어가다가 가로등 불빛에 눈이 부셔서 한쪽 눈을 감았다. 아무런 상관 관계도 없지만, 나는 갑자기 내가 매우 기분이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은 기분을 걸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집으로 뛰어서 갔다. 집에 가는 길에는 야트막한 오르막이 있다. 내 다리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사뿐하게 뛰어 단숨에 올랐다.
아직도 우리는 그런다. 오늘 고? 고! 근데 어디 가서 뭐 할 거냐고 물어보긴 해야 하지 않아 얘들아?
돌, 정
돌은 정말 이상한 애였다. 이상하게 광기에 찬 눈동자를 하고 무표정으로 얘기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크카칵 웃어 버리는 애. 예상 밖으로 활짝 웃는 애. 웃을 타이밍이 예상은 안 되지만 이상하게 대화는 매끄러운 애. 걔랑 잘 노는 나도 어쩌면 조금 이상한 애인 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돌을 통해 알게 된 정 또한 그렇다.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던 말 그대로, 정이야말로 언제 웃을지 예측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으하하 웃는, 대놓고 광기는 아닌데 은은하게 광기를 가진 사람… 설명이 어렵다. 정은 간간이 내 브런치를 언급했다. 오마이갓. 자기는 브런치를 안 하면서 내 브런치를 종종 보는 그런 사람이 진짜로 있다고? 놀라운 경험을 주었다.
어쨌건 돌과 정이 호방하게 웃으면 나도 따라서 웃게 된다. 그들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커다랗고 유쾌한 웃음이 내게도 옮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는 좀 엉뚱한 구석을 가진 사람들을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끔 부적절하다고 할 만한 말, 전문 용어로 ‘빻은’ 말도 아닌 척 유쾌하게 말하는 돌과 정은 아무튼 별나고 웃기다.
현과 소를 만나듯 급 만남으로 자주 만나 놀고 싶지만 돌과 정은 각자 일정이 너무 바빠서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드럽게 비싸네, 퉤. 아니다. 만나서 웃기면 됐지. 퉤는 취소할게. 앞으로 덜 일하고 더 벌길 바라. 그리고 나에게 많이 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