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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Nov 08. 2024

사랑은 약점?

대전, 반쪽짜리 혼자 여행

   여행지에선 나를 생각하게 돼

   여행지에서는 늘 은근한 피로와 즐거움이 함께 한다. 태어나서 몇 번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걷는 것. 달리는 버스와 가로수, 제각기의 일상에 잠겨 피곤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떠나온 곳의 것과 다르지 않은 풍경을 신기하다는 듯이 지켜본다.


   그렇게 걸어 다닌 후에는 기분 좋은 피로감을 그러안고 커피를 마신다. 그럴 땐 창문이 큰 카페의 창가 자리가 좋다. 커피를 마시면서 다시 한번 창 밖으로 모르는 사람들의 순간을 지켜본다. 저 사람은 저녁으로 뭘 먹을까. 저 사람은 동물을 키울까. 어떤 사람과 저렇게 웃으며 연락하고 있을까.


   타인에 대한 관심은 곧 나에게로 옮겨온다. 나는 저녁을 뭘 먹지. 우리 토끼들은 뭘 하고 있으려나. 나를 웃게 하는 내 카톡 속의 친구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이름 석자 모를 사람들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오지랖 넓은 사람? 실없는 궁금함이 많은 사람? 전술한 두 문장은 별로 긍정적이진 않다.


   사람들은 주로 나를 섬세하다거나 다정하다는 말로 설명했다. 맘에 든다. 결국은 다정함만이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천지가 개벽해도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에 기대게 되어 있다. 단 하나의 자질을 가져야 한다면 그건 다정함일 거라고,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걸 지키기 위해 애쓰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행복

   다정함을 갖는 것. 그리고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 경중을 따지기 어렵지만 난도를 따져보자면 후자가 어렵다고 느낀다. 정말 피로할 때, 스스로의 궁박함에 휘청대고 있을 때. 우리는 미소를 잃는다.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을 낸다. 내가 그랬던 적과, 타인이 내게 그랬던 적을 생각한다. 우리의 적의는 잠깐이었지만 그 잠깐이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스스로 채찍질을 한다. 너무 가혹하다는 기분이 들 때도. 사람을 증오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 때도. 군인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버텨내는 훈련을 하듯이 제련한다. 돌아보면 내 마음은 반드시 폭포 옆에서 힘겹게 봉오리를 내민 꽃처럼 조금 더 자라 있다. 그게 나를 지킨다. 나의 주변 사람들을 지킨다. 그렇게 믿는다. 그러면 지난 고난은 별 것 아닌 게 된다.


   넌 사랑이 많은 아이야. 엄마는 늘 말했다. '사랑이 많은 아이'가 사랑만큼 증오를 감춰놓은 줄도 모르고 엄마는 거듭 말했다. 아니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을까. 조금 더 사랑이 많아지길 바라서. 엄마가 사랑이 많다고 말한 그 아이는 품에 가진 사랑이 약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사랑을 던져버리고 싶었고 사랑 앞에서 도망쳤고 사랑 뒤에서 울었다.


   그 애는 사랑이 많은 청년이 되어서 더 높은 용적률의 사랑을 갖고 싶어졌다. 언제라도 주머니에서 쓱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랑은 나이를 먹고 세상에 실망하고 사람에 영리해질수록 작아졌다. 사랑과 다정함이 같은 말은 아니지만, 다정함 또한 바닥나곤 했다. 그래서 애써야 한다. 배터리를 충전한다는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사랑은 약점? 맞다. 그렇지만 세상엔 기꺼이 약해지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 또한 그러기로 한다. 여행지의 창이 큰 카페 창가에서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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