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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수면제와 작별했다

정말 이런 날이 오는군요

by 밈혜윤 Dec 04. 2024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공황과 함께 내 삶에 불쑥 찾아와 오래도록 날 못 살게 굴던 수면제와 작별했다. 과장 많이 보태서 한 움큼씩 먹던 수면제는 이제 한 톨도 먹지 않는다. 약 없이도 머리를 베개에 대면 잠이 온다. 졸음이 곰살맞게 내 머리를 헤집는 느낌은, 한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무감했던 것. 지금은 매일매일 감격스러운 것. 


   처음 수면제를 처방받았을 때 약봉투를 달랑거리며 걷다가 좁게 쪼개진 골목에서 울었다. 물론 그때는 멘탈 이슈로 짐작할 수 없는 것들에 셀 수 없이 눈물이 났다. 그럼에도 수면제 이슈는 생각보다 컸다. 짜고 찐득한 눈물이 죽죽 났다. 잠자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구나. 나는 끝내 그렇게 되었구나. 울며 불며 받은 수면제는 효과가 대단했다. 더 눈물 흘릴 틈도 없이 잠에 들었다. 전원이 꺼진 컴퓨터처럼 툭. 


   잠을 못 자는 것이 스트레스였으나 잠을 잘 잔다고 해서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다른 스트레스가 툭하면 내 잠의 영역에 찾아와 시비를 걸었다. 여전히 전원은 잘 꺼졌지만 자꾸 깼다. 약이 반 알, 한 알, 자꾸 늘었다. 마지막에 먹던 수면제는 두 알 반. 매일 약봉투를 찢어 내 입에 털어 넣기 전에 어떻게 생겨먹은 약인지 뜯어봤다. 그리고 내가 이걸 얼마나 더 먹어야 할지도. 


   때때로 벌 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잠도 못 자는 한심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으니. 한심한 인간이 된 것은 나의 여러 선택과 과정의 업보인 것만 같았으니. 물론, 이 모든 우울한 이야기는 상당히 오래전의 이야기. 생선 잔가시를 바르듯 내 과거를 한 땀 한 땀 뜯어서 나를 단두대에 세우려 덤비던 때가 있었다. 현명한 인생 격언처럼,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나는 발랄해졌다. 나의 과거, 나의 투약에 무감해졌다. 사람이 멍청한 짓 좀 할 수 있지. 힘들면 약 좀 먹을 수 있지. 잠 좀 못 잘 수 있지. 그리고 마침내. 나는 잠에 들기 시작한다. 어찌나 졸렸는지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둔 약봉투를 집지도 못하고 쿨. 다음날 아침에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대박. 나 2년+@만에 약 없이 잤네. 단 하루의 우연하고 비루한 영광일까 봐 무서운 마음을 비웃듯 그다음 날도, 다다음날도 나는 잘 잤다. 


   웃으면 눈이 가로로 길어지고 세로로 짧아지는 의사 선생님은 눈이 일직선으로 보일 정도로 웃으면서 이제 수면제는 모두 빼도 되겠다고 했다. 그게 약 한 달 전. 나는 여전히 잘 자고 있으며 변함없이 발랄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매일매일 감사하고 있다. 무엇을? 나의 회복을.


   회복. 사람들 덕이었다. 습관적으로 나를 단두대에 세우려는 나에 맞서서, 습관적으로 나를 변호해주던 사람들.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말을 들려주며 좋은 곳에 같이 가자던 당신들. 나는 포기하려던 내 미래를 먼저 나서서 생각하고 말해주던 다정한 입매들. 맛난 음식 마지막 한 입을 밀어주던 얼굴. 나를 생각해서 시간, 돈, 때로는 죽고 싶은 마음까지 포기하는 마음들. 


  나는 아마 너희와 작별할 수 없어서 나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나 봐. 항상 고맙다, 친애하는 녀석들아. 오늘도 잘 자고 일어나서 새삼스럽게 감상적이란다. 앞으로 또 힘든 날이 올 테고 그러면 또 약을 먹을 수도 있겠지. 또 내가 미울 수도 있겠지. 그때도 또 나를 변호해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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