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영 스테파노 시인을 생각하는 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 켜는 촛불 하나
굶주린 이들이 켜는 촛불 하나
우는 이들이 켜는 촛불 하나
박해받는 이들이 켜는 촛불 하나
오늘밤 내 병든 몸 밝히려고
저 혼자 타고 있는 촛불 하나
허공으로 흔들리거라
김형영 시
조광호 그림
조광호 신부님께서 페북에 올리신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신부님께서도 오늘의 이 기쁨을 선생님과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 분이니까요.
30년 전 선생님께서는 이미 '한강'이라는 작가를 눈여겨보시고 선생님이 평생 몸담으셨던 잡지 [샘터]의 기자로 부르셨다고요. 그녀의 작품들을 문화영성 잡지 <들숨 날숨> 창간호에 게재하는 등 많은 힘을 쓰셨다고요. 아, <들숨 날숨>은 이제 없어진 거 알고 있습니다. 폐간 전 몇 호정도는 저도 받아 보았으니까요. 한강 작가를 향한 선생님의 믿음은 무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기억합니다. 언젠가 작은 모임에서 한강 작가의 진실을 향한 예리한 시선이 남다르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 말씀을 하실 때 선생님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어요. 물론 저는 한강이라는 작가를 잘 몰랐었지요. 다만 제가 시를 전공하고 논문을 준비하는데 지도교수가 홍**라 말씀드렸더니 그의 아내가 한강이라고 말씀해 주셨죠.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과 격려를 마다하지 않은 딸 같은 작가가 세계가 주목할 만한 큰 일을 해 냈다구요 선생님.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이 소식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을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선생님, 그곳에서도 행복하시죠? 드디어 우리 강이가 해 냈구나 하시죠?
가톨릭문인회 회장으로 재직하실 때만 해도 젊으셨는데 제가 일 좀 도와드릴 만하니까 임기가 끝나고 뜻하지 않게 저는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되었지요. 시인협회와 가톨릭문인회 일을 동시에 보던 어느 해였어요. "신 선생, 이제 그만해도 돼. 그만 다 내려놓고 신 선생 글 써야지?" 하시는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제가 뭔가를 잊고 살았던 거지요. 나 아니면 안 될 일도 아닌데 뿌리치지 못하고 질질 몇 해를 그러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지요. 이듬해 저에게 맡겨졌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저는 프라하로 떠났습니다. 돌아와서 1년 만에 선생님을 어느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만났어요. 식사자리에서 뵈니 선생님은 여전히 소주를 좋아하시는 분이셨어요. 건강 생각해서 그만 드시라 하니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딱 소주가 깨끗해서 좋아. 젊을 땐 독한 위스키도 마셨는데.." 하시더군요. 하긴 야유회나 협회 행사 후 식사 때 소주 한팩 챙겨드리면 무지 좋아하셨더랬죠. 저는 그날 선생님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습니다. "제가 다음에 만날 때는 좋은 위스키 한병 가지고 올게요. 좋아하시는 거 있음 말씀해 보세요." 선생님, 그때 미소가 어떠셨는 줄 아세요? 해맑은 소년이셨어요. "아무거나 다 좋지 나야..." 하시면서 볼이 발그레해졌거든요.
다음에 만날 때.... 그때가 언제인 걸까요.
어떤 문학상 시상식이나 문단의 행사에 초청되는 날일터인데 그 후 저는 한 번도 행사에 참여한 적이 없었고 선생님은 몇 번이나 나가셨을까요? 그 후 1년 뒤 부고 문자가 날아왔으니까요. 선생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다니요. 그 마지막도 저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멀리 있어서...
오늘밤 내 병든 몸 밝히려고
저 혼자 타고 있는 촛불하나............ 허공으로 흔들리거라
조광호 신부님이 천국에 계신 선생님께 쓰신 절절한 편지글을 읽고 저도 선생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어요. 가을이 가기 전에 신부님을 뵈러 가야 할까 봐요. 저도 신부님 뵌 지 너무 오래되었거든요.
선생님, 오래도록 자랑스러워하시고 기뻐하세요. 선배님(한승원 작가)의 딸이니 선생님의 딸도 되지요. 이젠 한강 작가는 대한민국의 보배랍니다.
*김형영(스테파노) 1945. 1. 6. ~ 2021. 2. 15.
1945년 1월 6일 전북 부안 출생. 1969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샘터사에 재직했다.
1966년『문학춘추』에 시「소곡」이 당선되어 등단했고 1967년 시「형성기」로 문공부 신인예술상을 수상했다. 강은교, 박건한, 윤후명, 임정남, 정희성 등과『70년대』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첫 시집『침묵의 무늬』(1973)을 간행한 후 그의 시는 짐승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동물적인 속성을 보여줌으로써 자아와 세계 사이의 단절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 두 번째 시집 『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를 친다』(1979)에서는 예리한 기지와 풍자적인 수법이 돋보인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에는 서정성의 폭과 깊이를 더하면서 구도자적 자세와 기독교적 인간관과 세계관이 구체화된다. 시집으로『다른 하늘이 열릴 때』(1987),『기다림 끝나는 날에도』(1992),『홀로 울게 하소서』(2000),『낮은 수평선』(2004),『나무 안에서』(2009), 땅을 여는 꽃들』(2014) 등이 있다. 1988년 현대문학상, 1993년 한국시인협회상, 1997년 제7회 서라벌문학상, 2005년 제8회 가톨릭문학상, 2009년 제1회 구상문학상 등을 받았다.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