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상징이라 하기엔 너무나 평화스러운 곳

Bilá Hora

by 혜솔

빌라호라까지는 집 앞에서 트램을 타고 한정거장인데 걸어서는 10분 정도 걸렸다.

트램이 지나가는 방향을 따라 주택가를 끼고 걷다 보니 붉은 교회 지붕이 보였다.

트램 두대가 정차해 있는 것을 보니 종점인 듯했다.

Bilá 는 체코어로 희다(White)를 의미하고 Hora는 산(mountain)을 의미한다. 하얀 산, 즉 백산이다.

파란 하늘빛에 붉은 지붕이 단연 돋보이는 예배당은 단단히 문이 걸려 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란다. 성당을 한 바퀴 돌아 마을길을 빠져나왔다. 넓게 펼쳐진 초원이 눈에 들어온다.

멀찍이 작은 나무 한 그루만 그림처럼 흔들리는 초원.

드넓은 초원, 이라는 말을 써야 할 것 같다.

푸른 풀빛 사이로 한 줄기 흙길, 그 위로 조그만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한 폭의 그림 속을 걷듯....

22번 트램 정류장 앞엔 빌라호라에 대한 안내글이 게시되어 있다. 빌라호라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이곳이 백산전투가 벌어졌던 전쟁터였다고 한다. 멀리 오보라 공원의 별집도 보인다.
전쟁을 기념하는 기념비 하나 달랑있다.


자그마한 나무벤치 하나와 돌 기념비 하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벤치에 앉았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여유 있는 모습의 내가 앉아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따사로운 봄볕에 노출된 채 얼마 동안 그렇게 앉아있던 순간이 참 편안했다.

1618년 5월 보헤미아의 프로테스탄트파 귀족은 국왕의 대리 등 3명을 프라하성에서 떨어뜨리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프로테스탄트 박해자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가 1617년 7월 보헤미아 왕에 취임한 것에 대해 반대하여 일어났다. 이것을 계기로 예수회 수도사와 가톨릭 성직자 여러 명이 추방되었고, 1619년 8월 보헤미아의 신분제 의회는 페르디난트를 폐하고 프리드리히 5세를 왕으로 선출하였다. 이것을 반역으로 본 페르디난트는 교황과 에스파냐의 지원 아래 보헤미아를 공격하였다. 30년 전쟁의 발단이 된 보헤미아-팔츠 전쟁(1618∼1620)의 결전이며, 이 전투를 계기로 전쟁은 전유럽으로 확대되었다.

1620년 11월 빌라호라 전투에서 페르디난트가 승리하였으며, 프리드리히 5세는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반란의 주모자 20여 명은 교수되고 참가자 대부분은 추방되었다. 보헤미아는 다시 가톨릭 국가가 되었으며, 프로테스탄트파는 근절되었다. 빌라호라는 백산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위키백과 참조)


전투가 벌어졌던 전쟁터였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은 비극적인 장소다.

체코인의 비극적 상징인 빌라호라, 내가 청명한 오후를 즐기며 걸어왔던 이곳엔 전쟁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나치면 모를 작은 기념비 하나만 이 드넓은 초원 위에 작은 쉼터처럼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노랗게 핀 민들레가 잔디처럼 퍼져있는 길을 걸으며 전쟁터였을 당시를 상상해 본다.

매년 가을이면 빌라호라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말과 창과 방패를 둘러맨 기사들이 오보라 공원 앞에 막사를 치고 몇 날 밤을 숙식을 한다. 빌라호라에서 전투하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빌라호라 전투는 종교적 의미보다 체코인에게는 민족적인 의미가 더 컸던가 보다.



참고: 백산 전투
https://en.wikipedia.org/w/index.php?search=백산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