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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똥으로 만든 노트에 글을 쓰면서 든 생각

스리랑카에서 시작된 공정무역 이야기... 거침 속에서 느껴진 땅의 숨결

by 혜솔

"엄마! 코끼리 똥으로 만든 공책이 있다는 거 아세요?"

교사 연수를 다녀온 며느리가 새로운 정보를 전한다.

"코끼리 똥? 아, 코끼리는 초식동물이니까? 그래도 똥은 좀…"

웃으며 대답했지만 사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코끼리 똥으로 만든 종이나 노트가 있다니, 솔직히 믿기 어려웠다. 나무를 베어야 종이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 숲이 줄고 있다는 현실도, 숲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도 익숙하다. 하지만 '나무 대신 똥으로 종이를 만든다'는 발상은 뜻밖이었다.

궁금한 것은 그냥 못 넘어가는 편이라 검색을 해보니, 공정무역 가게에서 실제로 판매가 되고 있었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비싼 이유가 있겠지 하며, 수첩 두 권을 주문했다. 요즘은 모든 기록을 휴대폰에 남기지만, 가끔은 펜으로 직접 쓰고 싶다. 손끝에 남는 감각, 잉크의 흐름이 주는 집중이 그리워서 일까.

IE003550875_STD.jpg ▲거친 종이 위에서 땅의 숨결, 자연의 질감이 전해졌다. ⓒ 신혜솔


코끼리와 사람이 함께 사는 법


공정무역 가게'울림'의 소개글에 따르면, 코끼리 똥 종이는 스리랑카에서 시작되었다. 코끼리는 하루 종일 풀과 나뭇잎을 먹지만, 대부분의 섬유질을 소화하지 못한 채 배설한다. 그 속엔 여전히 종이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식물 섬유가 가득하다. 어느 기업이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 나무를 베지 않고도 종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발상은 '환경을 지키는 기술'이 아니라 '생태를 존중하는 지혜'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코끼리가 애물단지였던 지역, 코끼리 때문에 농작물이 망가진다고 마을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똥이 자원이 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똥을 모으고, 삶고, 말려 종이를 만드는 일이 지역의 새로운 수입원이 되었다. 코끼리는 이 지역민에게 '피해를 주는 동물'이 아니라, 마을을 먹여 살리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공정무역(Fair Trade)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과 소비를 이어주는 윤리적 경제 활동이다. 단순한 물건 거래를 넘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연대의 형태다.


이처럼 코끼리 똥 종이도 공정무역의 정신을 품고 있다.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지 주민에게 공정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지속가능한 선택을 제안한다. 태국, 인도, 스리랑카 등지에서는 이 종이로 엽서, 봉투, 노트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 관광객에게는 기념품이 되고, 코끼리에게는 숲으로 돌아갈 시간을 선물한다.


IE003550876_STD.jpg ▲코끼리똥으로 종이가 만들어진 이야기 ⓒ 공정가게 울림



거친 종이 위에 새겨 넣는 생명의 소리


주문한 노트가 도착했다. 첫 장을 펼치자 종이는 거칠었다. 볼펜이 매끄럽게 미끄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거침 속에서 땅의 숨결이 느껴졌다. 자연의 질감이 손끝에 전해지는 듯했다. 코끼리 똥으로 만든 노트에 글을 쓰는 일은, 하루의 속도를 늦추는 일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얗고 반듯한 공책 대신, 풀잎과 흙의 냄새가 스민 종이에 글을 적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다.


'지구도 이런 호흡으로 숨을 쉬겠구나.'


인간은 효율을 추구하다 잔인해지기도 한다. 숲을 베고, 강을 막으며, 더 부드럽고 빠른 세상을 만든다. 그러나 자연은 완벽한 직선이 아닌 불완전한 순환으로 살아간다. 그 불완전함 속에 진짜 생명이 있으니까. 나는 노트의 첫 장에 이렇게 썼다.


"걸음을 멈춰야 들리는 소리가 있다.

코끼리의 발자국처럼,

느리지만 묵직한 생명의 소리."


'순환의 아름다움'과 '공정한 나눔'을 한 장의 종이에 담아, 지구에게 보내는 손편지를 써 보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https://omn.kr/2g4fv

공정무역 가게 '울림'https://ullimft.com/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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