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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사랑하고, 보호하라

바다캠핑 대신‘해양생태과학관’

by 혜솔

"할머니! 바다에 가고 싶어요! 로리도 꽃게랑 조개 잡으러 가고 싶어요."


며칠 전, 로리가 <내가 좋아하는 바다생물>이라는 책을 보다가 내게 소리쳤다. 그 한마디에 우리 가족은 잠시 바다 캠핑을 계획했지만, 서로의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대신 지난 주말, 가족이 함께 찾은 곳은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해양생태과학관’이다.

2025년 7월 1일에 개관한 이곳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주말임에도 주변이 한적했다.


1층에는 다양한 해양 생물이 유영하는 전시 수조와 시흥시 갯벌의 생태를 담은 영상 콘텐츠가 마련되어 있다. 서해안의 해양 생물과 생태 환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보호 수조도 인상적이었다.

2층은 교육실과 생태 체험 공간인 ‘오션필리아랩(LAB)’에 대한 설명이 알기 쉽게 펼쳐져 있고

3층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해양생태과학관’은 해양생물의 전시만이 아닌,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해 해양 생물의 구조·치료·재활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소개한다. 바다와 갯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위급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며, 구조된 생물이 건강하게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관리와 복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해의 보물, 갯벌


▲서해의 보물갯벌이 펼쳐지자 달려가 갈매기와 인사하는 로리. ⓒ 신혜솔


푸른빛 터널이 시작되는 1층 전시장 입구에서, 나는 로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로리야, 우린 지금 서해 바다에 와 있는 거야. 바닷고기들도 많고, 갯벌도 보이지?"

로리는 신나서 "야호!" 하고 탄성을 내 품었다.


갈대밭을 스친 후 갯벌 영상이 벽면 가득 펼쳐졌다. 그 순간, 로리는 화면 속 갯벌을 향해 달려갔다. 마치 바다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작은 손이 갈매기를 향해 흔들 때마다, 바다가 로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듯했다.


'미래에 물려줄 인류의 자산입니다.'

전시관 벽면에 새겨진 문장을 읽으며 나는 걸음을 멈췄다. 갯벌, 스크린 속 새 한 마리가 게를 물고 날아올랐다. 로리는 그 새를 따라 두 팔을 활짝 폈다. 아이의 그림자와 새의 그림자가 한순간 겹쳐졌다. 갯벌은 육지와 바다가 맞닿은 경계의 땅.

그곳에서 생명은 밀물과 썰물의 리듬에 맞춰 숨 쉬고 있었다. 나는 그 리듬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쉼’과 ‘기다림’을 보았다.



바다의 관계를 배우며

바다에서는 많은 생물들이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요.


벽에 적힌 글귀처럼, 서해의 모든 존재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먹고 먹히는 관계만이 아니라,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질서가 공존한다.

로리는 뭔가 생각하더니 물었다.


"할머니, 게가 없어지면 새도 슬프겠네?"

로리가 하는 말에는 뜻이 있었다. 그래서 웃음이 나면서도 왠지 모르게 진지하게 된다.

"그럴수도 있지, 바다의 새가 게를 입에 물고 날아가는 걸 봤구나?"

아이의 마음속에서 생태의 언어가 자라나고 있었다.


▲날아올라나도 조개랑 게 잡고 싶어요! ⓒ 신혜솔


걸음을 옮겨 전시실 모퉁이를 돌자 옆 패널에는 노란빛 물고기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수조에는 많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그중에 노란 물고기는 ‘노랑자리돔’이라 불리는 물고기다. 수온이 높아질수록 그 서식지가 북상하고 개체 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물고기를 ‘기후변화의 지표 생물’이라 부른다.


"노랑자리돔은 더운 바다를 좋아한대요?"

로리는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 질문 속에서 지구의 열기를 느꼈다.



오션필리아, 바다와의 우정


2층 ‘오션필리아 LAB’은 바다와 친구가 되는 공간이다. 기후변화로 사라져가는 해양생물들, 그리고 그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벽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알고, 사랑하고, 보호하라."

제 시작은 탐험이었습니다.
바다 밑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순간순간에 저는 반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다가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 깨닫고 말았을 때,
저는 제가 사랑하는 존재를 위협하는 모든 것에 대항하는
캠페인을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벌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도 제가 가는 길을 따르길 바랍니다.


해양학자 '자크 이브 쿠스토'의 인터뷰 내용 중에 있는 말을 벽면에 옮겨 놓은 것이다.

바다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그 바다가 위협받고 있음을 깨닫자 사랑을 행동으로 바꾸었다는.

‘알고’ 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이해 되었다.

로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설명해주긴 어렵지만 마음은 전달 될 거라고 믿으면서.


전시 한편에는 이미 지구에서 사라진 해양동물의 그림이 있었다. 한때 한반도 바다를 헤엄치던 바다사자인 독도강치였다. 이제는 기록 속에만 존재한다. 멸종된 것이다.

세계의 상어와 가오리의 37%, 산호의 36%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붉은 원 안에 새겨진 ‘멸종위기’라는 단어가 오래 눈에 남았다.



생명을 돌보는 손길들


교육실에는 초록 이불을 덮은 거북 인형이 누워 있다. 교육용으로 나와 있는 듯 했다.


"로리야, 이 거북이는 지금 치료 중인가봐."

아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구조–치료–방류’, 바다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벽에 그려져 있었다. 로리는 천천히 거북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빨리 나아서 바다로 가야 해."

그 한마디가, 어른의 설명보다 더 큰 울림으로 가슴에 남았다.

이곳은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환경 교육기관이기도 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교육실구조된 해양 생물들은 이곳에서 치료와 재활을 거친 후 방류된다.그 과정을 교육하고 체험할 수 있는곳. ⓒ 신혜솔


우리의 미래는?


마지막 전시실의 거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거울 속에는 나와 로리, 그리고 문장 하나가 함께 비쳤다.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 바로 인류를 지키는 길이에요.


그 문장을 바라보며, 바다를 지키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다.

플라스틱 컵을 덜 쓰고,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하고, 아이의 마음속에 생명을 향한 존중을 심는 일,

그 작은 손에서 시작되는 변화는 언젠가 파도처럼 세상으로 번질 것이다.


거울 뒤편에는 붉은 조명 아래 버려진 타이어와 부표, 바닷가에서 수거된 플라스틱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그 붉은빛 속에서도 나는 희미한 희망을 보았다. 아직 인간은 바다를 사랑할 줄 안다는 증거가 이곳에 있었으니까.

오늘 로리와 함께한 바다는 멀리 있지 않았다.

우리가 서 있는 땅 위에도, 우리 마음속에도, 늘 바다는 흐르고 있었다.


▲각종 프로그램으로 해양 생태에 관한 교육과 체험이 가능하다. ⓒ 해양생태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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