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를 떠나며
포르투갈을 떠올리면 내게 먼저 오는 것은 지도가 아니다. 빛과 푸름, 낮은 목소리, 오래 남는 표면들이다. 리스본의 언덕과 포르투의 저녁놀은 결국 하나의 감각으로 정리된다. 이 글은 내가 걸었던 도시의 구석구석을 나열하기보다 그곳에서의 감성을 담아둔 기록에 가깝다.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 그리고 몬테고르도와 스페인 국경까지.
포르투갈로 들어가는 첫 문은 책이었다.
먼저 떠오르는 책은 『리스본행 야간열차』다. 그러나 이 소설은 포르투갈 문학이 아니다. 리스본을 배경으로 한 독일어권 소설이다. 나는 그 점을 오히려 더 소중하게 느낀다. 내게 그 책은 포르투갈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이었기 때문이다. 리스본으로 향하는 인물의 사유를 따라가며, 나는 실제의 리스본에 닿기 전부터 이미 떠남과 귀환의 문장을 마음속에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은 언제나 현실의 발걸음보다 먼저, 문장 속에서 시작되니까. 그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아직 닿지 않은 도시를 이미 한 번 떠나고, 한 번 돌아온 셈이었다.
실제의 리스본과 포르투를 걸으며, 나는 이 나라가 자기 언어로 남겨 둔 표정을 만났다. 아줄레주가 그중 하나다. 처음에는 그저 아름다운 타일이라 생각했지만, 오래 볼수록 장식이라기보다 기록처럼 보였다. 상벤투역의 푸른 벽 앞에서 특히 그랬다. 리스본의 푸름이 빛 속으로 스치듯 흩어진다면, 포르투의 푸름은 벽에 붙어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같은 색인데 태도가 달랐다. 한쪽은 지나가고, 한쪽은 남는다.
음악도 그랬다. 파두는 그리움의 음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리움과 함께 살아가는 속도를 가르치는 음악이었다. 크게 터뜨리지 않고 낮게 견디는 목소리. 그래서인지 파두가 아닌 노래에서도 비슷한 온도가 느껴졌다. 낮은 목소리, 낮은 빛, 낮은 숨. 포르투갈의 미학은 종종 ‘작게 말하는 방식’에서 더 또렷해진다.
문학을 돌아보면 페르난두 페소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 사람이 하나의 이름으로만 살지 않았다는 그의 감각은, 리스본의 골목처럼 겹겹이 겹친다. 한 도시는 더더욱 그렇다. 도시는 한 가지 얼굴로만 남지 않는다. 빛과 시간에 따라 같은 장소도 전혀 다른 표정으로 바뀐다. 리스본은 밝지만 그늘을 품고, 포르투는 단단하지만 저녁빛이 오래 머문다.
소피아 드 멜루 브레이너 안드레센,『사물의 이름』(O Nome das Coisas)을 남긴 시인의 절제도 생각난다. 그의 문장은 감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사물의 이름을 정확히 놓고, 남은 여백으로 마음을 건넨다. 바다와 빛을 오래 본 사람의 언어는 군더더기 없이 맑다. 포르투갈이 내게 가르쳐 준 것도 그와 비슷했다. 더 많이 말하기보다, 더 오래 남게 말하는 것.
포르투에서는 스며드는 법을 배웠고, 가이아에서는 반복의 힘을 알게 됐다. 아침에는 모루정원에 올라 강을 내려다보고, 저녁에는 같은 자리에서 해 지는 것을 보았다. 페레이라 앞을 매일 지나치며, 명소가 풍경이 되는 감각도 얻었다. 낯선 곳이 잠깐의 일상으로 바뀌는 순간은 늘 이런 작은 반복에서 생겼다. 여행의 깊이는 멀리 간 거리보다 같은 길을 몇 번 걸었는가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내 문장의 속도를 바꿔 놓은 나라, 여행 내내 써 둔 일기장은 한동안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제야 펼쳐 들었고, 이제야 분명해졌다.
나는 포르투갈을 다 쓰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여행이 남긴 것은 풍경의 목록이 아니라 문장의 습관이었다. 빛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푸름은 오래 머물렀다. 노래는 높지 않았지만 깊었다. 이곳을 떠난 뒤에도 어느 저녁이면 그 낮은 목소리가 돌아와 내 안의 조용한 곳을 건드릴 것이다.
* 오늘의 포르투갈 음악 — Mariza 〈Ó Gente da Minha Terra〉 (오, 내 땅의 사람들이여)
“오, 내 땅의 사람들이여 / 이제야 내가 지닌 이 슬픔이 당신들에게서 온 것임을 이해한다"
브라질 사람들도 매우 좋아하는 가수이자 노래이며 포르투갈어를 쓰는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한답니다.
여행을 마치고 이 노래를 들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꾸 반복해 듣다 보니 어떤 나라를 떠올릴 때 남는 것은 풍경의 정보가 아니라, 그 나라가 내 안에 남겨둔 감정의 결이라는 것을.
‘나의 땅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이 목소리에는 개인의 그리움과 한 나라의 정서가 함께 실려 있지요. 크게 울리지 않는데 오래 남는 노래. 포르투갈을 떠난 뒤에도 문득 돌아와, 내 안의 조용한 곳을 건드리는 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