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포르투갈
농도(濃度)
지하의 서늘한 숨결이 수백 년의 침묵을 마중 나오는 곳
오크통의 거친 결마다 결론을 유예한 시간들이 나이테로 흐른다
들끓던 효모의 욕망이 가장 뜨거운 정점에서 스스로를 멈춰 세울 때
투명한 소멸 대신 진득한 머무름을 택한 결단
상하고 부패할까 두려워 붉은 불길을 제 몸에 수혈하던 시린 인내의 기록
그늘진 어둠 속에서 모서리를 깎아내며 독기를 단맛으로 바꾸어낸 액체는
이제야 비로소 생의 달콤한 향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문을 열고 나서면 도루강은 이미 거대한 와인잔
지붕들은 살구색 노을을 머금고 철교의 리벳마다 석양의 눈물이 맺힌다
변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흔들려야 했던 운명들이
강물 위로 호박색 윤슬을 토해내는 시간
오늘을 서둘러 매듭짓지 않는다
발효의 한복판에 멈춰 선 채 저녁이 고이는 소리를 듣는다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깊어지는 것들
생은 그 농축된 고임만으로도 충분히 달다
포르투의 공기는 습기와 단내가 뒤섞여 있다. 페레이라의 육중한 문을 열자 수백 년을 머금은 지하의 서늘한 숨결이 마중 나온다. ‘페레리냐’라 불린 도나 안토니아의 생애는 박제된 전설이 아니다. 세월을 견딘 벽면의 이끼와 오크통의 거친 결 속에,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태도로 깃들어 있다. 거대한 오크통들이 줄지어 선 복도는 침묵의 시간표와 같았다.
침묵하는 오크통 사이를 걷다 보면 코끝을 스치는 달콤하고 그윽한 향이 있다. 양조가들이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르는 시간의 흔적이다. 오크통의 미세한 결을 타고 공기 중으로 스며든 와인의 영혼. 옛사람들은 줄어든 와인의 양을 보며 천사가 내려와 맛을 보고 갔노라 믿었다고 한다.
천사가 가져간 그 빈자리만큼, 통 안에 남은 와인은 비로소 자신의 몸을 줄여 농도를 얻는다. 무언가를 비워내고 잃어버리는 과정이 도리어 본질을 단단하게 응축하는 길임을 포르는 말해준다. 어쩌면 생의 고귀한 향기는 온전히 움켜쥐고 있을 때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기꺼이 내어준 상실의 틈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잔에 담긴 와인의 농도는 삶의 속도와 닮아 있다. 선명한 루비(Ruby)는 갓 따낸 과육처럼 싱그럽다. 거칠고 활기 넘치는 청춘의 맛이 혀끝을 두드린다. 반면 빛바랜 갈색의 토니(Tawny)는 잘 마른 낙엽이나 노을의 색을 품었다. 오크통 속에서 긴 세월을 견디며 모서리가 깎여나간 맛, 견과류의 고소함과 캐러멜의 달콤함이 완숙한 대화처럼 부드럽게 감긴다. 그러나 빈티지(Vintage) 와인 앞에 서면 모든 비유는 멈춘다. 오직 수확이 좋았던 해의 기억만을 박제해 둔 이 액체는, 코르크를 여는 순간 십수 년 전의 햇살과 바람을 일시에 쏟아낸다. 묵직한 권위가 혀를 누르고 지나간 뒤에는 서늘한 여운만 남는다.
포트 와인의 본질은 발효의 절정에서 개입하는 과감한 ‘멈춤’에 있다. 효모가 당분을 모두 먹어 치우기 전, 브랜디를 부어 숨을 멈춰 세운다. 떫고 투명해지는 대신 진득한 달콤함을 택하는 일. 끝까지 달려가 가벼워지기보다, 적절한 지점에서 멈춰 서서 생의 가장 뜨거운 당도를 보존하는 방식이다. 사람의 생 또한 그러하다. 모든 것을 소진하고 가벼워지기보다,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서서 소중한 것을 붙든다. 멈춤은 후퇴가 아닌 보존의 다른 이름이다.
시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저녁의 도루강은 비늘처럼 일렁이는 금빛을 토해낸다. 가이아의 언덕 위로 지붕들이 살구색으로 물들 때, 오늘을 섣불리 매듭짓지 않는다. 포트의 잔 속에 남은 묵직한 점성처럼, 발효의 한복판에 멈춰 선 채 저녁을 맞는다. 멈춘 자리에서야 비로소 더 깊게 고이는 것들이 있다. 오늘 하루는 그 고임만으로 충분하다.
*로드리고 레앙의 'Vida Tão Estranha(참으로 낯선 인생)'를 재생합니다.
이 곡의 정제된 현악 선율은 ‘숙성의 시간’과 참 닮아 있습니다. 묵직한 첼로의 저음이 와이너리의 지하 셀러처럼 가라앉아 있다가, 바이올린의 선율이 도루강의 윤슬처럼 일렁이며 삶의 농도를 이야기합니다.
https://youtu.be/CTyPuuq9yLM?si=91AgOBbvla1dEc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