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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Oct 27. 2022

대학교 방학을 만끽할걸

죄책감 없이 뻔뻔하게.

1.

얼마 전 나는 무서운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은퇴’라는 것을 해야만 온전히 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온전히’라는 단어도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은퇴를 해야만 ‘그나마 그럴듯하게’ 쉴 수 있다. 그전까지는 어떠한 형태로든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이 간단명료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나는 얼마 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2.

나는 이런 방면으로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은퇴할 때까지 회사에 다닌다는 것이 어떤 인생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그림 그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은퇴할 때까지 회사 생활을 하는 삶이란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60세 전까지는 듣기 싫은 알람 소리를 매일 새벽 들어야 하는 삶이다. 10시간이 넘는 16부작 드라마를 ‘출근 걱정 없이’, 그리고 ‘마음 편하게’ 몰아보는 여유도 60세 이후에야 비로소 누릴 수 있다. 60세 전까지는 ‘이렇게 늦게 자면 내일 회사에서 굉장히 힘들 텐데.’라는 거슬리는 걱정을 마음 한 구석에 품고 드라마를 봐야 한다. 한 때 유행처럼 번졌던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언젠가’ 나도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그 ‘언제’가 60이 넘은 노년이라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면 재빨리 경제적 자유(Financial Independence)를 획득해서 일찍 은퇴(Retire Early)해 버리는 파이어(FIRE)족들은 이런 방면으로 굉장히 머리가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그들은 나와 다르게 노년까지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들이 획득한 것은 경제적 자유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조기에 은퇴함으로써 자고 싶은 만큼 자는 자유,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자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자유를 모두 획득한 것이다. 그들은 은퇴를 해야만 비로소 쉴 수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나 잘 알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40대에 은퇴하는데, 나는 이제서 깨달은 것이다. 



3.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깨닫기’ 씩이나 했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왔었는지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착실하게 직장에 다니고 있는 회사원이지만, 회사에 다니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언제든지 회사를 그만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까. 보통은 다음 밥벌이-재취업이나 창업 같은-를 생각하고 회사를 그만두기 마련이지만 나는 아무런 대비 없이도 당장 회사를 그만 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사실 이미 아무런 준비 없이 직장을 때려치운 전적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결국 재취업 하기는 했지만.)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쉬고 싶은 만큼 쉰 다음에 재취업하면 되고, 취직이 안 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계를 유지하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에는 이렇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프리터족’이라는 단어까지 있다던데, 이런 단어를 보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딱히 무리인 계획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하든지 내 한 몸쯤은 얼마든지 건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쉬고 싶으면 언제든지 회사를 그만두고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물욕이 강한 편도 아니다. 이전 글에서 샤넬백을 샀다고 말한 주제에 가증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고 싶은 것은 많은데, 꼭 사고 싶은 물건, 즉 강하게 물욕이 동하는 물건은 별로 없다. 그저 돈이 있으면 사고, 돈이 없으면 사지 말자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실 물욕도 부지런해야 생긴다. 나같이 쉴 생각만 하는 에너지 없는 사람은 물건을 사고자 하는 욕구보다 침대에 눕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한 법이다. 서울살이가 너무 비싸 버겁다면 시골살이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직장 상사보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주제에 가증스럽지만 나는 사실 귀촌에 대한 로망도 있다. 그래서인지 일을 그만두고 쉴 만큼 쉰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제든 쉬고 싶을 땐 사직서의 결재상신 버튼을 클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말하기 퍽 조심스럽지만, 나에게는 ‘그래도 정 안되면 그만 살지 뭐.’하는 생각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삶이 정말 죽을 만큼 힘든 분들에게 송구하지만, 철이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인간은 이렇게 인생을 푸대접하기도 한다. 



4.

그러니까 나는, ‘나의 안식이 철저하게 내 선택에 달려 있는 삶’만을 상상하며 살아온 것이다. 정말이지 은퇴하는 한 60세 정도까지 절대 쉬지 못하는 삶은 상상하지 못하였다. 



5. 

그러던 나에게 60세까지 쉴 수 없으며 소처럼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존재가 있으니, 말해서 무엇하냐 바로 ‘자식’이다 ‘자식’. 


다시금 언급하자면 나는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좋지 않다. 그래서 자식을 낳은 순간까지도 이 존재가 나의 안식을 철저히 앗아가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곧 나에게 허락될 육아휴직을 조금 기대했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에 이런 머저리가 다시없다. 합법적으로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꿀 같은 시간인 줄 알았는데, 휴게시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노동착취의 삶이었다. 야근만 해도 욕지거리를 달고 사는 나에게 야근은 기본이요 당직까지 서야 하는 업무환경은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닳게 만들었다. 출산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므로 다른 이에게 하소연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지만 삶이 너무 고된 나머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징징거렸다. 



6.

하지만 육아의 고통보다 더 한 것은 자식이 나에게 ‘정신적인 족쇄’를 채웠다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돈이 없으면 안 사고 만다는 안일한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나는 어떠한 형태로든 돈을 벌어서 자식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보송보송한 기저귀를 채워 줄 것이다. 도시살이가 힘들면 시골로 도피해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나의 마지막 보루도 없어졌다. 나는 도시에 거주하면서 자식에게 세속적인 양질의 교육을 최대한 시킬 작정이다. 특히 이제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 마음대로 인생을 종료할 수가 없다. 나와 내 배우자가 자식을 낳기로 ‘결정’할 때 자식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세상으로 끌어들였으니 우리는 자식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세상은 무자식이 상팔자이고, 자식이 웬수(원수가 맞는 표현이다)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표현하지만 내게는 정신적인 족쇄가 더 맞는 말이었다. 내가 기꺼이 찬 족쇄. 그 족쇄로 인하여 극한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으니 단 한 번도 그 족쇄를 찬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 행복의 대가로 나는 나의 안식을 지불하였다. 



7. 

그러니까 나는 대학교 1, 2학년 방학 때 충분히, 그리고 죄책감 없이 쉬며 휴식을 만끽했어야 했다.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학교 1, 2학년 방학이 내가 은퇴 전에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안식이었다. 학창 시절은 온갖 방학숙제와 입시를 위한 공부 때문에, 대학교 3~4학년 때에는 졸업하고 먹고살 궁리를 하느라 쉴 수 없었다. 졸업 후 세상에 나온 후에는 말하여 무엇할까. 회사 일과 육아에는 ‘마음 한구석이 찝찝한 휴식’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게다가 이 고단한 상태를 적어도 은퇴 전까지 지속해야 한다.

 

그러니 대학교 1, 2학년 방학 때 휴식을 만끽하지 못한 것이 후회될 수밖에. 물론 대학교 1, 2학년 방학 때 전혀 쉬지 못한 것은 아니다. 나는 워낙에 에너지가 없는 인간이라서 방학 내내 침대에 누워 다운로드한 드라마를 보며 방학을 보냈다. 내가 후회하는 것은 남들과 비교하며 방학 내내 자책했다는 것이다. 에너지 넘치는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고, 자전거에 몸을 싣고 전국일주를 하는데 나는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시간만 죽이고 있다고 자책했다. 귀하디 귀한 휴식 시간을 우주의 쓰레기가 된 기분으로 오염시키며 방학을 보낸 것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며 당당하게 쉬었어야 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그 짧은 자유를 온몸으로 느꼈어야 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앞으로 60세까지는 이런 황홀한 안식이 없을 것이니 마음껏 즐기라고. 





+후회 그 후... 

이미 지나간 방학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래도 배운 점은 있다. 휴식을 만끽하는 데에 ‘불안감’과 ‘죄책감’은 하등 쓸모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쌓여있는 일을 외면하고 소파에 누워 몇 시간씩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낭비할 때에도, 기왕 쉬기로 했으면 맘 편히 휴식을 즐기려고 한다. 어차피 쉴 것이면 그 휴식을 온전히 즐기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쉴 때가 아닌데, 어서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 하는데’라는 불안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니 쉬고 나면 느끼는 우주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도 확실히 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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