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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joge Sep 10. 2020

가족의 탄생, 사랑의 탄생

영화 <가족의 탄생> 리뷰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 질문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영화 <가족의 탄생>의 출발점에 있었던 질문은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 가족이란 뭘까?

- 혈육의 정은 거의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것인데 서로 죽자고 싸우는 가족들은 왜 그러는 걸까?

-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죽고 못 사는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영화는 조금 특별한 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경석이네.

  경석은 누나와 절반만 피가 섞였다. 엄마는 같고 아빠가 다르다. 어린 시절 기억 속 누나는 항상 화가 나있었다. 잘 풀리지 않는 연애,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일 이런 것들 때문에도 힘들었겠지만 무엇보다 아빠와 헤어지고 소모적인 연애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엄마를 무척이나 미워했던 것 같다. 엄마의 마지막 연애 상대가 경석의 아빠인데 가장 오래갔지만 가장 비정상적인 연애였다. 경석의 아빠가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병세가 악화되어갈 무렵 누나는 경석의 아빠 집에 쳐들어가서 엄마를 사랑하냐고 묻는다. 가족들 앞이라 당황하며 웬 미친 사람이냐고 내쫓을 줄 알았는데 경석의 아빠는 엄마를 사랑한다고 꿋꿋이 말한다.

경석의 누나가 엄마의 사랑을 깨닫고 오열하던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결국 내 마음을 움직이는 건 너의 마음이다.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누나는 엄마가 두고 간 가방을 열어 본다.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풀기 위해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한다. 그러다 어떤 번호를 생각해내고는 드디어 가방을 여는 데 성공한다.(아마 누나의 생일이 아니었을까.) 가방 안에는 누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 사진, 아빠가 선물해준 시계, 아주 어릴 때 신었던 신발까지. 누나는 물건들을 껴안고 엉엉 운다. 아마 이 순간이 아니었을까. 누나가 엄마를 '이해'하게 된 순간. 엄마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경석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누나는 신기하게도 엄마를 꼭 닮아 있었다.


채현이네.

  채현이네 가족은 아무도 피가 섞이지 않았다. 두 엄마 모두 친엄마가 아니다. 두 엄마에게는 한 명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엄마 1(고두심)의 애인이자, 엄마 2(문소리)의 동생이었다. 어린 채현이 두 엄마의 집으로 처음 찾아왔을 때 채현을 반겨준 유일한 사람은 남자였다. 두 엄마 모두에게 채현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책임의 무게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만은 전혀 그런 눈치가 아니었다. 마냥 귀여워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채현에게 과자를 사다 줄 테니 백까지만 세고 있으라 하고 나간 남자는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가 떠난 집에서 엄마 1(고두심)은 이상 엄마 2(문소리)에게 부담을 줄 수 없었다. 채현을 데리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 2(문소리) 크게 말리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채현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세 사람은 신기하게도 한 가족이 되어 있었다. 무엇이 두 엄마를 다시 뭉치게 한 것일까.

채현이 두 엄마 집으로 경석을 데려왔을 때 헤어져도 밥은 먹어야하지 않냐며 경석을 붙잡은 사람도 엄마2(문소리)였다.

  엄마 2(문소리)는 항상 누군가를 먹이는 사람이었다. 학생들에게 아주 위생적이진 않아도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였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남자와 엄마 1(고두심)에게도 묵묵히 밥상을 차려 주었다. 남자가 돌연 떠난 후에도 엄마 1(고두심)과 채현에게 수많은 밥상을 차려 주었을 것이다. 연민 때문인지 책임감 때문인지 혹시 돌아올지 모를 남자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내적인 동기는 스스로도 확실치 않았을 것 같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밥이나 먹고 보자 이런 마음에 가깝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매일 남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먹이며 성실히 삶을 꾸려온 엄마 2(문소리)에게 두 명 정도는 더 먹여 살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난 것일 수도. 결국 엄마 2(문소리)의 밥 지어 먹이는 이 '행동'이 세 사람을 가족으로 만들어준 원동력이 아닐까.


가족의 탄생, 사랑의 탄생

  가족이 된다는 것은 함께 산다는 것이다. 함께 사는 것은 혼자만의 영토에서 벗어나 공동의 토양을 다지는 일이다. 공동의 토양을 단단하게 다지려면 각자 마음속에 있는 돌덩이들이 깨지는 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단단한 돌덩이들을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 굳어진 '자아'라는 이름의 돌덩이.  돌덩이들은 웬만해선  쪼개지지 않는다. 잘게 쪼개지지 못한 돌덩이들만 쌓여있는 땅은 척박하다. 척박한 땅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없다. 단단한 돌덩이가 쪼개지는 순간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깊이 '이해'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순간은 행복을 통해서 시간을 통해서도 오지만 시련을 통해서 가장 강렬하게 온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로 가득한 오해와 다툼, 분노와 실망의 계곡을 지나 비로소 ‘이해라는 고요한 강가에 다다르면  마음속 단단한 돌덩이에 빠지직 금이 간다. 많은 사람들이 고요한 ‘이해 강에 다다르지 못하고 중간에서 포기한다. 외면하고 묻어두거나 멀어지고 헤어진다. 상대방이 가진 선한 빛을 쫓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게 하는 . 사랑의 힘이다. ‘이해'만큼 중요한  '행동'이다. 상대방을 위해 달라지기로 결심하고 '행동'   돌덩이는    깨진다. 단단했던 돌덩이는 쪼개지고 쪼개지면서 잘잘한 흙이 되어 간다. 너와 나의 토양이 단단해진다. 어느 한쪽의 돌덩이가 크게 박혀 있는  토양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비가 오면 약한 부분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서로 깊이 '이해'하고 '행동'하며 각자의 돌덩이를 부수어 나갈  함께 딛고  토양이 단단하게 다져진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함께 있는 세상이  든든하고 풍요로워서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진다. 진정한 가족이 된다.

  

  마음 속 돌덩이들이 쪼개져 단단하게 다져진 '우리'라는 토양과 그 안에서 꽃이 피고 지는 짧지만 아름다운 순간들. 이 모든 과정이 사랑이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결국 사랑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두 엄마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채현은 싸우다가도 경석의 발에 밟힌 꽃을 걱정하는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자랐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사랑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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