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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by lala

경찰이 찾아온 건 서연이가 의식불명이 되고 난 다음 날이었다. 나를 찾는 이유는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자 신고자였기 때문이겠지만 경찰이 내게서 뭘 얻어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서연이가 어쩌다가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지게 된 건지 전말을 물을 테지만 사실 난 아직도 서연이가 의식도 없이 병원에 누워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그러니까, 지금 이 모든 일이 서연이가 꾸민 장난이거나 꿈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질 만큼 이 상황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학교 언덕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 내려가자 낯선 바람이 볼을 스쳤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익숙한 감각. 그제야 나는 소름 끼치듯 놀라 휙 옆을 돌아보았다. 평소라면 옆에서 함께 걸었을 서연이가 없었다. 서연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서늘한 공기는 느끼지 못했을 텐데. 한동안 서연 덕에 잊고 있었던 감각이 피부를 타고 흐르는 듯했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려 하늘을 보자 얼룩덜룩 뭉쳐진 잿빛 구름이 스산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서연이가 위험하다는 걸 말해주려는 듯이. 차라리 시원하게 비라도 쏟아지면 좋으련만. 무거워진 구름만큼이나 엉겨 붙은 그날의 파편들이 머릿속에 짤랑거렸다.


쨍그랑.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도어벨 소리에 놀란 형사는 목을 빼내고 도윤 학생, 하며 손짓했다. 그 어정쩡한 손동작과 찰나의 눈빛이란. 세상에는 보고 싶지 않아도 너무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나를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는 마음을 애써 웃음으로 감추려는 듯 한 저 형사처럼 말이다. 처음 수사과에서 연락이 왔을 때부터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신고자와 용의선상에서 가늠하는 듯한 그 떨림을. 내 기대에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생긴 형사가 저기 앉아 나를 부르고 있었다.


“저어...시간 내줘서 고맙다. 라테 주문해 놓았는데 괜찮니?”

남자는 희끗희끗한 턱수염을 긁으며 다른 손으로 커피를 가리켰다. 그의 손길을 따라가자 머그잔 위에 찌그러진 하트가 그려진 라테 아트가 보였다. 아르바이트생이 신입인 건지 끝 모양이 뭉툭하게 일그러져 버린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작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할 수만 있다면 망친 우유 거품을 다 밀어내고 다시 그려내고 싶은 기분이 밀려왔다.


“먼저 내 소개를 좀 하자면 나는 이번 임서연 학생 사건 관련해서 수사를 맡게 된 류승민 형사야.”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내 앞에 명함 한 장을 들이밀었다.

“듣기로는 서연과 매우 각별했다던데. 충격이 클 텐데 나와 줘서 고맙다.”

형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들고 온 수첩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각별한 사이, 나는 속으로 그 말을 되뇌며 곱씹었다.

“서연이는 다행히 네가 빨리 신고해 준 덕분에 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은 됐다만 아직도 의식 불명 상태야.”

그 말에 멍하게 커피 잔에 머물러있던 내 눈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형사가 이렇게 수사한다고 겁먹거나 할 건 없고 그냥 솔직하게 그날의 일을 얘기해주면 돼.”

여전히 입을 떼지 못한 나를 보며 형사는 덧붙여 말했다.

“그날의 일이라면 저번에 다 말씀드렸는데요.”

의도치 않게 목소리가 흉하게 갈라져 나왔다.

“CCTV가 없었던 터라 실족인지 투신인지 좀 더 면밀하게 추락 경위를 조사할 필요가 있고, 지금으로서는 현장에 있었던 네 진술이 무엇보다 중요한 터라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협조 부탁한다.”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얹은 형사가 가늠하듯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말투는 나긋나긋했지만 두 눈은 날이 서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날 진술한 게 전부예요. 서연이한테 할 말이 있어서 집까지 찾아갔는데 말다툼이 좀 있었어요. 화 좀 식히려고 화장실 갔다 나와 보니까 서연이가 떨어져 있었고요.”

“뭣 때문에 굳이 집까지 찾아갔던 건데?”

형사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입 끝만 움직이며 다그치듯 물었다. 그 모습을 보자 취조당하는 기분에 턱이 질끈 물렸다. 내 눈빛을 알아챈 건지 형사는 좀 더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당시에 관계가 안 좋았던데.”

나는 형사를 빤히 쳐다보며 말없이 입안의 속살을 잘근잘근 물었다. 우리 사이는 그저 좋았다, 안 좋았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여느 인간관계에서든 감정의 파고는 있는 법이고, 서연이가 떨어졌던 그 당시에는 우리에게 격랑이 일었던 시기였을 뿐이다.


그날 서연의 집까지 찾아갔을 때 나는 상당히 고양된 상태였다. 서연과 화해하고 싶다는 고즈넉한 마음도 아니었고, 내가 좋아하는 만큼 되돌아오는 게 없어서 투덜거리는 서운한 마음도 아니었다. 당시 내 기분은 그런 고아하고 미려한 상태와는 거리가 먼 두려움에 가까웠다. 어쩌면 정말 서연을 뺏길 수 있고 잃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공포가 나를 떨게 했다. 덜거덕거리는 관계라도 함께라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믿었던 건 나약해 빠진 나의 순진함이었다. 서연이는 삐걱대고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나를 끊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흐음... 그럼 학교생활이 어땠는지 얘기해줄 수 있을까.”

한동안 내 입에서 대답이 나오지 않자 형사가 펜대를 굴리며 말했다. 나는 식어 빠진 라테 위로 시선을 떨어뜨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분명 서연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였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이 모든 게 아연했고 도대체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네가 서연이를 처음 알게 된 날부터 말해주면 돼.”

형사는 대답 없이 축 늘어진 나를 보며 다시 구체적으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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