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다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다.
혼자 가만히 아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글썽거리게 되고, 가만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내 목숨을 다 바쳐 아이를 지켜주겠노라. 다짐하게 된다.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수시로 요동치는 감정을 작은 아이 하나 때문에 느끼게 된다.
아이를 낳게 되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아이가 말을 안 들어 속상할 때, 실랑이하다 결국 감정적으로 아이에게 화를 냈을 때, 그럴 땐 의식하지 않아도 종종 나 어렸을 때 부모님의 마음을 상상해 보게 된다. 사랑의 모양도 제각각, 그 방식도 제각각이라지만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어떨 땐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되고, 어떨 땐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하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도 있다. 아마 30대 후반을 넘어선 사람들이라면 모두 비슷하지 않을까.
그 시절엔 매를 드는 것을 ‘사랑의 매’라 아름답게 치장했을 시절이고, 매를 맞아야지 아이들이 올바르게 큰다고 믿던 때였으니 말이다.
육아 정보가 넘쳐나고, 아이들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금의 양육 환경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엔 그런 일이 흔했다.
당시 나의 회초리는 효자손이었다. 사랑의 매를 맞고 나선 어두운 방에 혼자 남겨져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진정되지 않는 감정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우는 소리가 혹시나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속으로 울음을 삼키다가 멍하니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던 시간이.
나는 가족 간의 사랑을 무조건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끝없이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조상 때부터, 그리고 내가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 간의 사랑은 당연하다 교육받은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보곤 했다. 그리하여 혹여라도 가족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대부분 사람, 나 역시 가족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일분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일까? 피를 나눴다고 해서, 오랫동안 같이 지냈다고 해서 정말 그게 모두 사랑일까?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가족을 사랑하도록 태어났을까? 어쩌면 우리는 가족을 사랑한다는 최면을 끝없이 걸어오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런 내 생각의 근원엔 아마도 엄마와의 관계가 영향이 있을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널 정말 사랑하니까 그러는 거야’라는 말을. 하지만 어떨 땐 그런 말들이 나를 옭아매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엄마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마음속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면 아마 나는 그러라 한 적이 없다며 억울해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이런 마음들을 서른을 앞두고 독립해 나오면서 서서히 깨닫게 됐다. 억눌린 무언가가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던 이십 대를 보내고, 서른을 앞둔 나는 울며불며 독립 선언을 했고, 점차 마음의 평온을 찾아갔다. 나를 사랑한다는 엄마의 말을 거역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두 마음의 충돌에 늘 괴로워했던 나는, 그래서 늘 죄책감에 억눌려 있던 나는 서른 살이 되면서 그 족쇄에서 벗어났다.
엄마와 거리 두기를 하면서 나 스스로 자책하는 습관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주름져서 쪼글쪼글해져 있던 마음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표현을 하던 나에서 조금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가 내 선택의 기준이 되었고, 모든 걸 쥐고 있기보단 놓아줘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눈치를 보느라 내 마음을 돌보지 못하던 상황에서 벗어나니 내가 조금 더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사랑이었겠지만 나에게 엄마가 베푼 사랑의 방식은 맞지 않았다.
나의 이런 경험들은 나의 육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감정 조절을 못 해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크게 화를 낼 때도 있지만, 내 어린 시절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리려 노력한다. 내 아이가 나 같은 생각을 갖지 않기를, 나와 같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기에 그런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내 지난 일들에 대해 누군가를 원망하진 않는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내가 겪은 어떤 작은 일도,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훗날 나에게 꼭 도움이 된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런 감정들에 대해 엄마에게 솔직히 털어놔 본 적이 있냐고 말이다. 나도 언젠간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엄마와 마주 앉아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둘 다 마음을 활짝 열고 여유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말이다. 그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