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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맑은물 Feb 21. 2024

생각

생각을 모으는 사람(모니카 페트 글,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김연경 옮김)

  날마다 아침 여섯 시 반이면 내 집 앞을 지나는 아저씨가 있단다. 가로등 옆으로 구부정하게 걸어오는 아저씨. 내 창문 밑을 지날 때,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나지막이 "안녕하세요?" 인사한단다. 그럼 나도 인사를 건네지.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저씨는 외투가 딱 한 벌뿐인데, 얼마나 낡았는지 무릎 주변이 많이 닳아서 실오라기가 보일 정도야. 배낭 가죽끈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 도무지 바쁜 거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걷는단다. 아저씨는 생각을 모아. 모든 생각이 다 중요하거든. 생각들은 아주 예민해서 귀를 기울이며 도시 모퉁이나 골목을 돌아다녀.  그래야 생각소리를 들을 수가 있거든. 아무리 작은 생각이라도 아저씨 귀를 벗어나지 못하지.

  아저씨는 생각을 배낭에 담아서 집으로 돌아온단다. 많이 걷고 나면 배가 고프고 피곤하니까 간단하게 음식을 먹고는 모아 온 생각을 가방에서 꺼내는 거야. 그리고 생각 선반에 정리하지.

  고운 생각은 기역 선반에, 너그러운 생각은 니은 선반에, 더러운 생각은 디귿 선반에 등등. 그 일은 아주 조심성이 필요해. 생각을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고 혼동하기 일쑤거든. 어떤 생각은 아저씨한테서 도망치려고 어딘가 숨기도 하니 말이야. 그럴 때면 아저씨는 생각을 찾아 무릎으로 방안을 기어 다니며 컴컴한 구석과 모서리를 뒤지곤 하지. 그런 일은 아주 드물지만, 건방진 생각, 제멋대로 구는 생각, 나쁜 생각, 못된 생각들을 찾는단다. 아름다운 생각이 손에 들어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잊고 말아. 

  정리를 끝낸 아저씨는 생각들이 잠시 있게 선반에 그대로 놓아둔단다. 시간쯤 걸려. 그러면 조심조심 생각 바구니에 생각을 담아 방을 나오지.

  밖에는 화단이 있어. 생각들을 바구니에서 꺼내 흙 속에 심는단다. 겨울에는 온실에다 심지. 흙 묻는 손을 털면 아저씨 일은 끝나는 거야. 소파로 돌아가 한 시간가량 신문 읽고 차 마시고는 잠자리에 들지.

  다음 날 아침, 자명종이 울리면 일어나 창문으로 간단다. 그때, 이침놀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꽃들이 이슬 내린 화단에 반짝이고 있어. 상상밖에 할 수 없는 꽃들 말이야. 모두 기가 막히게 달콤한 향기를 내뿜고 있거든.  꽃으로 피어난 생각을 구경할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의자를 끌어다 놓고 담요로 몸을 감싸고 앉는단다. 아침놀이 어느샌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으면 날이 점점 밝아지는 거지.

  바로 그때 일이 일어난단다. 차츰차츰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꽃들이 녹고 있는 거야. 무수히 작은 조각들로 알알이 부서지는데, 마치 먼지 알갱이들이 햇빛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같아. 한줄기 바람이 일자마다 알갱이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날아가지. 그때, 무슨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데, 들리지 않아. 작은 소리에 아저씨는 귀에 손을 갖다 대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지. 순간 얼굴 위로 전율이 흐른단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거야.

  아저씨는 다시 길을 떠나지. 아저씨 말로는  생각들은 수줍음이 많대. 생각을 모을 때는 언제나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대.

    "꽃으로 피어난 생각은 아주 작은 알갱이가 되어 바람에 실려 날아갑니다. 높이, 점점 더 높이 날아올라, 눈 깜짝할 사이에 아직 잠으로 덮여 있는 지붕들 위에 떠 있게 되지요. 그러다 천천히 어디 벌어진 틈새로 들어갑니다.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간 생각들은 사람들 이마에 가만히 내려앉아 새로운 생각으로 자라지요.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 없다면, 생각은 줄곧 되풀이되다가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질지 모릅니다. 어는 도시건 어느 마을이건 같이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 있답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답니다. 생각을 모으는 사람들은 있는 대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일하니까요."

  아저씨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매일 생각을 모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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