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피었다
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 지원 사업 선정 작품
안개는 물에서 시작한다. 미세한 물방울이 공기를 떠다니며 시야를 흐릿하게 하는 묘한 수분 상태. 신비로운 안개 풍경이 초월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도 물의 몽환적 속성이다. 물로 돌아가는 안개 운명은 잠시, 사라지는 경계에서 사색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보이지 않는 순간에 운명이 되는 것, 그것은 순환하는 자연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주요 모티브는 물과 안개다. 이들은 사물이나 존재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초월적 영역에 다가서게 만든다. 평상시 드러나지 않았던 사물의 측면에서 어떤 정신이나 영혼을 발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 (이기봉 화가, WHERE YOU STAND, 17 Nov – 31 Dec 2022)
이기봉 화가는 얇은 아크릴판이나 폴리에스테르 섬유를 겹쳐 그림 위에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안개 낀 것 같은 중첩된 이미지 앞에서 저절로 그림 속으로 눈길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즉물적 사고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습기 찬 생각만을 고집하겠다는 듯, 수증기 같은 형태의 가변적 행동만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조용히 사물을 끌어들이는 것 같은 그림에 반응하고 말았다. 그의 작품은 인간 정신과 영롱한 영혼보다는 평상시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의 다른 면, 즉, 악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어느 강 이야기 때문이다. 안개가 짙어지는 날이면 종종 죽은 사람이 떠내려간다는 이야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죽은 자를 생각하니 세상 본질은 불투명하고 흐린, 그리고 혼란스러운 어떤 것들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개는 흐릿하지만 너무도 또렷한 의식을 간직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역설의 본질이 아닐까,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잠시라도 소멸하거나 소거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환상이 왠지 슬픔과 연결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과 충돌하면서 형체 없이,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 어떤 것들의 속울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주위를 돌고 도는 복잡한 관계성으로 어지러울 때, 안개가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존재할지도 모를 선을 가장한 악이 안개 저편에 있는 것은 아닐지 우려한다. 뿌옇게 가려져 있는 것은 종종 불안을 데려오기도 하니까.
안개는 위안과 불안의 답보 상태다. 선과 악의 돌연변이 형태다. 실재와 환상의 생태다. 안개 자욱한 강에 우두커니 서 있으면 물의 악연이, 빛을 잃은 사연이 생각난다. 강에는 타락으로 끌어들일 요소가 없음에도 흐르는 물과 함께 악용하는 무리가 모여든다. 고립된 상황에서 인간을 초월적 경지에 이르게 하는 환상이 물과 물방울 협업으로 충분히 일어날 법하다. 잘 모르고 있었던 일이 나쁜 일일 때, 낙망한다. 각각의 신념이 초월하는 힘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나쁜 일은 능력을 발휘한다. 특특한 강바닥의 힘으로 물안개가 퍼지기 시작하면 헤싱헤싱한 느낌은 깡그리 전멸한다. 그러다 아주 낯선 타인처럼 보이는 생면부지의 자기를 만나기도 한다.
생과 사 변곡점에서 분별할 수 없는 흐릿함이 아릿하게 삶을 파고들 때, 삶이 변화하는 지점마다 매우 간결하고도 토막 난 호기심을 자극한다. 호기심은 과거와 현재 경험과 미래로 이어질 생각과 행동으로 흔들린다. 변곡점에서 악은 무감하고, 간사하고, 사악하고, 조용하고, 잔인하고, 무취하고, 몽롱하다. “위선은 악이 선에 바치는 경배”라 했던 라로슈푸코(프랑스 작가, 1613~1680)의 말은 무슨 의미일까. 선을 가장한 악이 어쩌면 강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뜻일까. 손을 휘저어 나가면 바로 앞만 볼 수 있는, 바로 앞에서만 보이는 것이라는 말일까. 그 이상을 보려는 것은 초월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어서 벌을 받거나 악의 꼬임에 넘어간다는 해석일까.
강에 몸을 던진 이름 모를 누군가의 죽음. 깊은 곳에 빠지면 끝이라고 생각했을까. 강 안개를 휘저어 들어가면 깊고 깊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까. 강의 깊이와 물살과 상관없이, 현실과 상관없이, 이미 안개 저편 세상에 매료되었던지, 아니면, 아무 근거 없는 희망마저 경멸하기로 작정했던지, 이도 저도 아닌 무력감이었던지…. 무엇이 안개 자욱한 강으로 생명을 끌어들였을까.
강물은 계속 흘러가겠지만, 죽음을 품은 강이 만난 안개는 이런 삶의 투명성에 관한 외침인지 모른다. 절대적인 형태가 없는 것처럼, 절대적인 선이나 악도 없는 것이니 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의 몽환적 느낌은 거짓말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절실함에는 허구가 아닌 사실이 필요하다고. 앞이 보이는 현실이 보고 싶다고. 그냥 지나면 알게 된다는 말 따위는 그만 듣고 싶다고. 강으로 몸을 던진 그 누구의 신음이 안개가 하는 질문이라면,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사라질 뿐.
안개 낀 강물에 몸을 던진 그는 누구인가. 희생을 강요당한 인생이었다면, 억울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왜 그랬는지 알고 싶지 않았을까. 혹시, 철저히 감추어진 거짓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이들이 쉬지 않고 어지러운 상황을 만들어 더욱 혼란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또 어떤 이들이 혐오와 갈등이 난무하는 세상을 멈추려고 고군분투하고 틀어진 것을 바로잡으려 한다는 것이 진행 중이기는 한 것인가. 꼬이거나 비틀어진 아픔이 기억나는 것은 결코 마음이 꼬이거나 뒤틀려서가 아니라는 말을 해도 되는가. 이런 생각이 안개 같은 혼돈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잠시 눈을 감을 일이다. 안개는 걷힐 것이니.
강에서 안개를 만나거든, 그곳은 실존하는 장소가 아니니 바라만 보아야 한다. 안개가 만난 사물은 형태가 보이지 않아 오리무중, 언젠가 사라질, 꿈같은 것이니까. 피었다 지는 꽃 같은 것이니까. 기억이 나질 않는 말 같은 것이니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곳인지도 모르니까. 안개 낀 강줄기 따라 시체가 떠내려갔으니까. 뒤죽박죽 교란하는 삶을 애도하면, 강에 빠진 혼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그 혼과 함께 알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야 하니까.
안개는 그 어디에도 있지 않은 환상의 총체다. 안개 너머 더욱 짙은 안개는 거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삶의 욕구는 안개처럼 철저히 감추어져 있다. 악을 가장한 선이, 선을 가장한 악이 강 언저리로 안개를 불러왔는지 모른다. 안개는 선과 악의 중첩으로, 복잡한 인간 마음 사이에서 서서히 나타나 천천히 사라진다. 부연 안개는 언젠가 사라져 물을 내보이며 모든 생의 질서를 돌려줄 것이다.
안개는 보려는 욕구를 자극하며 물과 타협한다. 선과 악, 그 어디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