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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Oct 22. 2023

티엠아이를 뿌리는 사람과 거리 두기

티엠아이 (Too Much Information)는 그만...!

사건의 발단

새로 온 팀원 B. 온보딩 프로그램의 일부로 그녀와 몇 번의 미팅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 미팅이었나, 그가 회사에 들어온 지는 두 주 정도 된 시점이었던 것 같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저 가벼운 신상 얘기를 하는데, 대충 어느 동네에 사는지, 전에 살았던 곳은 어딘지, 출근길은 다닐 만 한지, 그저 그런 얘기였다. 지나가는 말로 전에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라고 질문을 했다. B는 신나서 이전 회사가 어떤 곳이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앗, 이 사람, 매우 피곤한 스타일이구나.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들어주었다. 아마 이미 정신줄을 놓고 저녁 메뉴라던가, 주말에 뭐 할지, 택배가 오늘 온다고 했던가 등등 딴생각을 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애긴데... 다른 사람들에겐 모른 척해주세요."

그러던 중 B는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긴데 솔직히 전 회사에서 잘렸어요."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전 회사에서 6개월 만에 옮겼다는 것은 이력서를 보고 대충 알고 있었는데, 뭐 우리 회사가 더 좋아서 옮겼나 하고 깊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우리끼리? 내가 B와 친해진 건가? 내가 너무 잘해줬나? 이 정도면 친한 건가? 의문이 마구마구 들었고, 그는 계속해서 사연을 털어놓았다. 사실 자신이 매우 매우 억울했다며. 자신이 일도 잘하고, 회사에서 하고 싶은 아이디어도 많았고, 위에 사람들도 좋게 봐주었는데 아주 억울하게 잘린 것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얘길 나에게 하지? 가볍게 건넨 질문인데, 해고를 당한 썰은 투머치였다. 그리고 웬만해선 해고를 당하진 않을 텐데, 혹시 이 사람 미친놈인가..? 계약이 끝나고 연장을 안 해주는 경우는 많다. 해고를 당한다는 건 업무 기밀을 유출한다거나, 상사에게 쌍욕을 한다거나 이런 심각한 잘못이 아니고서야 들어본 적이 없다. B는 자신의 상사가 자신을 질투했다고 했다. 그 상사는 능력 있고 똑똑한 그녀가 자신보다 잘 나갈까 봐 견제하고 대놓고 질투했다고 했다. 그리고 음식을 가리지 않고 그것도 많이 먹는데 운동을 따로 하지 않음에도 그녀가 날씬하다는 사실도 질투해 그녀를 미워하고 따돌렸다고 했다. 결국 그 상사의 주도 하에 그녀는 해고를 당했으며 자신의 억울함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적당히 '힘들었겠네요, 그런 사람이 있었다니…. 그래도 이제 이직해서 다행이에요" 라며 넘기려고 하는데 그녀는 한 술 더 떴다. 그렇게 억울하게 해고를 당한 후, 다음 직장을 구하려는데 바로 구해지지 않아 몇 달간 마음고생을 했으며, 우리 회사에서 다행히 받아주어서 이렇게 합류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얘기고 나도 그런 적이 있지만… 이제 막 다니기 시작한 회사에서 새로 만난 나에게 굳이 이런 얘기를...? 그녀가 의도한 바는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면접을 보러 다녔는데 다른 회사에서는 안 받아준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커피 타임을 마무리하며 그녀는 "다른 사람에겐 모른 척해주세요. 반딧 님이니까 얘기한 거예요"라고 말했고, 나를 믿고 이런 민감한 얘기까지 털어놓은 그녀인데, 나는 이미... 싸한... 거북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겐 너무 살가운 그녀, 나는 도망가고 싶었다. 

그 이후 그녀는 나와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여겼는지, 내게 특별히 더 살갑게 굴기 시작했다. 자신의 그런 속 깊은 이야기를 공유했으니 이젠 가까운 동료, 아니 친구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나의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질문도 훅훅 들어왔다. 나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녀가 부담스러워서 말을 아꼈다. 그런 내 태도에 그녀는 내심 상처를 받은 듯했고 서슴지 않고 서운함을 표현했다. 커피를 마시자며 불러내 계속해서 티엠아이를 뿌렸다. 


그녀의 이런 성향을 나만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막 회사에 들어온 B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런 깊은 이야기를 나에게만 했다고 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속으로만 답답해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할수록 그런 얘기를 듣는 것도 불편했고,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를 피해 다니자니 B는 꽤나 서운해했는데, 그렇게 그녀를 적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 마음, 챗 GPT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챗 지피티의 조언: 

동료가 과도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대처할 수 있습니다:  
1. 주제 전환하기: 동료가 과도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화를 다른 주제로 전환해 보세요. 업무 관련 사항이나 중립적인 주제를 생각해 보고, 개인적인 세부 사항에서 초점을 돌릴 수 있는 주제로 대화를 이동시켜 보세요.  
2. 행동을 격려하지 않기: 동료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과도한 관심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대화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제하도록 격려할 수 있습니다.  
3. 경계 설정하기: 과도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지속되거나 불편하다면,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동료에게 업무 관련 대화에 집중하거나 보다 전문적인 환경을 유지하길 원한다는 것을 예의 바르게 알려주세요.  
4. 모범을 보여주기: 자신의 대화를 업무 관련 주제에 집중하여 전문적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동료에게 전문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보여주세요. 적절한 행동을 모범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직장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5. 비공개 대화하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문제가 계속된다면, 동료와 비공개 대화를 나누는 것을 고려해 보세요. 공감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생산성과 직장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현해 주세요. 예의를 갖추고 더 전문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제안을 하세요.  
6. 필요한 경우 상급자 참여하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이로 인해 업무 능력이 저하되거나 팀의 업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상급자나 매니저의 개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도를 제공하고 문제를 공식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점은, 이러한 상황을 세심하고 예의 바르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개인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데에 대해 다른 편안함 수준을 가지고 있으므로, 양측 모두에게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가 B의 행동을 부추긴 건 아닌가.

음... 우선 내가 혹시라도 나도 모르게 B를 격려 한 건 아닌가 돌아보았다. 과도한 관심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수다를 들어주었고 가끔 맞장구도 쳐주었다. 내 딴에는 예의 상 한 행동이었지만, B는 내가 정말 관심을 가지고 들어준다고 오해했을 수도 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내가 아닌가. 내가 대충 둘러대며 답한 내용도 그녀에겐 관심과 성의로 보였을 수도 있다. 


우선, 사적인 대화를 하며 다가오는 그녀에게 더욱 무관심을 표현해보려 했다. 일을 하다가도 딴 얘기를 하면,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바쁜 척을 했다. 아 그렇군요, 네네, 그런데 00 프로젝트는요. 하면서 일 얘기로 다시 (애써)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나에 대한 얘기도 더욱 말을 아꼈다. 어차피 내게 질문하는 이유는 본인의 얘기를 하고 싶어서긴 하지만 어쨌든, B가 질문을 해오면 예의 상으로 얘기하던 수준보다 더 낮추어 거의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았다. 


내 태도의 변화에 B는 역시나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런 B를 무시하는 건 참 힘들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애초에 싸함을 느꼈을 때, 싹을 잘라버렸어야 하는데... 대면해 그녀와 얘길 하진 않았다, 아마 그랬으면 그녀는 적으로 돌변해 나를 공격했을 수도 있다. 대신 내 수준에서는 정말 냉정하게 그녀를 쳐냈고, 다른 동료였으면 아무렇지 않게 했을 정도의 대화도 그녀와는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나 회식 자리 정도에서만 그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몇 번의 서운한 눈빛 후에 그녀도 포기하고 날 내버려 두었다. 


내 바운더리를 알게 되며 느낀 편안함

그렇게 나는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바운더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깨달아 갔다. 그리고 그 바운더리를 지키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관계 맺는 방식에 끌려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훅 들어오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그에 휩쓸려 갈 이유가 없다. 반대로 내가 친해지고 싶은데 내 바운더리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내 바운더리에 맞춰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다가가고 부대끼면 되는 것이다. 


에필로그

B는 우리 회사에서도 1년을 못 채우고 내보내게 되었다. B가 TMI를 늘어놓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고, 자기 신상뿐 아니라 회사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자기 관점으로 각색해 여기저기 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다. 크고 작은 문제가 쌓여 그녀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이 되었고, B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어느샌가 B는 혼자 일을 하고 있었고, 윗사람들도 팀원들에게 B와 함께 일하라고 얘기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 결국 B는 팀을 떠나게 되었고, 얼마나 억울했는지 마지막 날 다른 팀 사람들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우리 회사 사람들 모두 링트인(linked in) 인맥에서 제거한 것은 덤이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간 부분에 들어갈 이야기가 더 있어, 아직 작성하고 있답니다. 곧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출간 안내

아프리카에서 진행했던 디자인 프로젝트를 포함해 "지속가능성"과 "디자인의 가능성"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 <아프리카로 간 디자이너>를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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