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사랑타령
뒤늦은 사랑타령
주고 싶은 걸 주는 연애
언젠가 연예 기사를 훑어보다 개그우먼 장도연 씨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오, 맞아! 하며 동조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개그맨 양세찬 씨와 함께 개그 코너를 기획하던 중 발생한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2년간 코너를 함께하며 단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고 했다. 장 씨는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 배려라 생각했고, 자신의 배려가 팀워크에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으나, 코너가 막을 내린 후 뒤풀이 자리에서 들어본 양 씨의 입장은 달랐다. 지난 2년간 자기주장이 없어 힘들었다는 양 씨의 하소연에 장 씨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고. 기사에 실린 방송에서 장 씨는 자신이 의견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성 파트너와 코너를 처음 함께하는 양 씨를 배려하고자 했던 것인데 마음이 통하지 않아 사뭇 서운했다고 토로했다.
기사를 다 읽고 난 후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 또한 장 씨와 비슷한 경험을 종종 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장 씨가 나와 같다면 어쩌면 그는 상대를 위한 배려가 아닌, 자신을 위한 배려를 한 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상대를 배려하는 '꽤 괜찮은 나'에 심취했거나, '의견이 충돌되는 상황 속 나'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과 같은.
가만 생각해보면 배려라는 것은 어쩌면 하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이 느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애인에게 내가 주고 싶은 배려와 사랑을 주고서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적잖이 서운해했다. 더 나아가 이따금씩 화가 나기도 했다. 한 예로 지난 8월, 멀리 떨어져 있는 애인의 생일날 무얼 해줄까 고민하다 생전 받아본 적 없다는 케이크와 꽃을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나름의 복병은 애인의 생일이 무더운 여름날이라는 것. 괜한 긁어 부스럼이 없기 위해서는 배송지를 집으로 해야 할 걸 알면서도, 애인에게서 받는 첫 케이크가 녹아 문드러질까 걱정되어(조금의 서프라이즈는 덤이라 생각했다) 회사로 정한 것이 화근이었다. 나름의 배려랍시고 배송안내에 꼭! 당사자에게 전화를 먼저 해주라고까지 적었더랬지만 배송 전 나의 서프라이즈를 알게 된 애인은 아주 당황해하며 왜 꼭 회사로 보냈어야 했느냐고, 마음은 고맙지만 배송지를 바꿔줄 수 있느냐 물었다. 나는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인지라 빠르게 배송지를 바꾸었지만 애석하게도 서운한 마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어쩌면 나는 해외 장거리 연애중에도 애인의 생일을 챙기는 '스윗 한 나'에 빠져있었던 걸까. 내가 한 배려와 사랑은 온전히 상대만을 위한 것이었으나, 그 마음이 당사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았았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고 속이 상했다.
이처럼 때때로 내가 한 배려가 배려가 아니었고, 내가 준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상처만 남을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면 나의 마음이 통하지 않았다는 상실감에 오래 머무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마음이 벽에 부딪혀 돌아올 땐 꼭 이상한 심술로 변해있다는 걸 몇 번의 연애에 걸쳐 정확히 알게 된 나는 이제 최선을 다해 그 순간의 상실감에서 빠르게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곤 한다. 물론 여전히 쉽진 않지만 말이다.
당신을 위하는 척 나를 위했던 행동들은 기어코 들통이 나고야 말기에 그 미숙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나는 여전히, 무던히도 애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