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때 다르다는 말이 너무 비겁하다고 느껴질 때
강의를 하다 보면 꼭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청, 공감, 배려 등등의 답을 드리면 꼭 이렇게 되묻는 분이 계신다.
"그게 맞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던데요?"
맞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그 방식이 통하지만, 또 어떤 상황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보통 강사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정답은 없어요, 그때그때 다르죠" 라며 자연스럽게 넘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대답이 때론 너무 비겁하다고 느껴진다.
오히려 중요한 건, '언제' 다르고, '어떨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노력한다. '그때그때 다르다'는 말을 넘어서, 그때그때가 정확히 어떤 맥락인지, 각각 어떤 소통 전략이 어떤 상황에서 다르게 효과적인지를 과학적 근거와 함께 설명하려고 한다.
작년에 만난 한 식품회사 신제품 기발팀의 이 팀장은 고민이 많았다.
핵심 팀원들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로 신제품 출시 프로젝트가 여러 차례 삐걱거리는 것을 경험하면서 걱정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PM(Project Manager)을 고차장에게 맡겼다.
고차장은 아주 강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명쾌하고 강력한 어조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명확한 결론 중심, 주저함 없는 자신감. 회의는 효율적이었고, 팀 내 일정도 빠르게 정리됐다.
그런데 문제는 타 부서와의 협업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고차장의 단정적인 말투는 반감을 샀고, 특히 협업의 가장 핵심팀인 R&D 팀은
"저 사람과는 더 이상 협력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 팀장은 어쩔 수 없이 후속 조치로 심 차장으로 PM을 교체했다.
R&D팀의 협조를 위한 고육책이었다.
심 차장은 고차장과 전혀 다른 소통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는 것보다는 질문이나 듣는 것을 잘하고, 상대방 배려를 하다 보니 명확함보다는 불확실하고 애매한 소통을 했다.
급한 상황에서도 꼭 의견을 물어서 확인하고, 혼자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못 견뎌했다. 아무리 신입사원이라도 정중한 어조로 존댓말을 하고, 조화로움을 가장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다.
문제는 R&D 부서와 협력이 끝난 다음부터였다.
프로젝트 마무리 단계로 국내 주요 대형마트와의 협상을 통해 제품 출시 일정을 확정해야 했는데 상대측인 대형마트의 베테랑 영업사원들이 심 차장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서
"답답하다,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을 끈다, 뭔가 일부러 저러는 것 같다" 면서 협상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팀장은 대체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혹시 강력한 의사소통과 힘을 뺀 의사소통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심리학자 Alison R. Fragle의 연구에 따르면 그는 의사소통 방식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강력한 의사소통으로 직접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자신감 있고 간결한 스타일의 소통을 말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명확한 실행계획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마치 위 사례에서의 고차장처럼 말이다.
다른 하나는 힘을 뺀 의사소통으로 잠정적이고 간접적이며 공손하고, 질문, 겸손한 방식으로 상대의 승인이나 동의를 구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주의 깊게 접근하여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받아 해결하려고 한다. 바로 심 차장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청중이 하고 있는 일의 상호의존성이다.
자신의 고객과 주어진 목표를 책임지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역할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 개별 영업,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개별적 조직문화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로 상호의존성이 거의 없다.
반면에 팀 단위로 움직이는 의료팀, 구성원의 협업과 조정을 통해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프로그램 개발팀, 앞 단계의 일이 완성되어야 뒷 단계의 일이 가능한 조립라인 제조팀 등은 전형적인 상호의존성이 높은 조직이다. 이들은 집단적 조직문화가 강해서 조직 관점의 일을 한다.
이러한 상호의존성에 따라 설득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상호의존성이 낮은 독립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의사소통이 큰 설득력을 발휘한다. 이를 통해 청중은 집중력과 동기부여를 높이고, 그렇게 해주는 리더에게 권위와 영향력을 부여한다.
상호의존성이 높은 협업, 유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존중과 협업 분위기를 조성시키는 힘을 뺀 의사소통이 큰 설득력을 발휘한다. 질문, 경청, 피드백 구하기 등을 통해 리더는 청중으로부터 협력과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이 팀장은 이후 전략을 전면 바꾸었다.
상황별 다른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먼저 총괄 프로젝트 매니저를 이 팀장 본인이 스스로 담당하면서 직접 일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처음 프로젝트 팀 내부 구성원을 설득할 때는 강력한 언어를 사용했다. 목표와 일정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제공하고 "이 프로젝트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단계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라며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집중력을 높였다.
협력 부서와 협업할 때는 심 차장에게 일을 위임했다. 심 차장은 평소 잘하는 힘없는 의사소통 방식으로 R&D 팀과 협업을 이끌어냈다.
"이번 협업이 여러분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불확실하지만 공손하게, 가급적 상대의 의견과 민감한 정서를 살피면서 함께 협업을 진행하여 많은 도움을 얻어냈다.
국내 대형마트 영업사원들과 협상할 때는 고차장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트 영업사원들은 개인의 성과를 중시하며, 실질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인지한 고차장은 자신의 적극적인 업무 스타일로 밀어붙였다. 빠른 의사결정과 얻게 되는 이득 중심의 제안, 결론 중심의 메시지로 베테랑 영업사원들을 매료시켰다.
결국 이 팀장이 얻은 교훈은 명확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상황과 청중에 따라 전략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
잘 들리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누구와 어떤 목적을 위해 말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당신은 지금 누구와 말하고 있는가?
그들은 어떤 방식의 소통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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