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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Dec 20. 2024

엄마가 예쁘긴 한데, 그래서는 아니고

엄마 품에 계속 계속 안겨있고 싶은 이유

놀이터에 가보면 아이들마다 성격도 제각각,

그에 따른 엄마들 고민도 제각각입니다.


재밌게 노느라 흥분하면 몸놀림이 너무 커지는 세살 여자아이 봄이 엄마는,

혹시 봄이가 휘두르고 다니는 팔에 다른 아이가 얻어맞을까봐 전전긍긍이구요.

네살인데 아직 친구들보다 엄마가 좋아 엄마한테만 딱 붙어있는 연이 엄마는,

이제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법을 좀 배웠으면 좋겠는데 방법을 몰라 고민입니다.


송이는 다른 엄마들에게 남자아이치고 얌전하다는 평을 듣는 아이구요.

작년엔 연이처럼 친구들에게 낯을 가렸지만, 이젠 처음 만나는 아이와도 5분이면 친구가 돼 같이 놀 수 있을 정도로 변죽도 많이 좋아졌어요.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노는 중에 실수로 친구를 때렸거나 마음 상하게 했을 때, '미안하다'는 표현을 잘 못한다는 점이에요.  


'사건'이 발생하면, 저는 송이에게 '친구가 괜찮은지 살펴보고,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하고,

송이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며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저는 변명하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더 엄하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니어도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송이는 정색한 얼굴에 목소리를 낮게 깐 엄마를 보고 삐죽거리다 울음을 터뜨리는 일에 반복입니다. 

엄마 품을 파고 들어와 한참을 울어요. 정작 맞은 친구는 벌써 잊고 신나게 놀고 있는데요. 나참.

맞은 친구 엄마가 송이에게 괜찮다며 달래주기까지 하는 상황이 되면, 정말 민망하고 속상해집니다.

엄마가 바라는 모습은, 친구가 다치지 않았는지 잘 살펴보고, 울면 달래주고, 다시 기분좋게 노는 건데요.

참, 아이는 엄마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너무 부끄럽대요.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걸까요. 그냥 엄마한테 혼나는 기분이 싫은 걸까요. 

미안하다고 하는 게 작아지거나 나빠지는 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아파하거나 슬퍼할 때는 들여다보고 공감해줄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어제는 엄마에게 돌진해 달려오다 그만 엄마 갈비뼈에 박치기를 해버렸네요.

순간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충격이 컸어요. 아들 키우다 보면 언젠가 뼈 한 번 부러지는 날이 온다는데, 오늘이 그 날인가 싶을 정도였죠. 숨이 쉬어지고, 뼈도 안 부러진 것 같자, 또 '무서운 엄마' 얼굴이 되어 송이에게 물었죠. 


"엄마 지금 송이 때문에 많이 아팠어. 엄마한테 뭐라고 해야 돼?"

"미안해..."


엄마 눈도 안 쳐다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 송이, 휙 돌아서서 다른 장난감을 찾아서 놀아요.

서운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한데, 한 5분쯤 놀았을까, 송이가 다시 엄마에게 다가왔어요. 


"엄마, 안아줘."

"이리와."


아기 젖먹이는 자세로 꼭 안고 흔들흔들 흔들어주며, 서운한 마음은 어느새 녹아가는데. 


"계속계속 안아줘."

"그래."

"내가 왜 엄마 품에 계속계속 안겨 있고 싶은지 알아?"

"음... 따뜻해서?"

"아니."

"푹신해서?"

"아아니."

"(아이가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장난 치고 싶어지는) 엄마가 예뻐서?"

"(그제야 송이도 웃으며) 예쁘긴 한데~ 그것도 아니고."


다른 건 다 잊어버리고 '예쁘긴 한데'에 꽂혀 벙실벙실 입이 벌어졌는데요.

(아이한테 예쁘다는 말 들으면 왜 이렇게 행복할까요.

돌아보면, 저도 한때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알았었네요. ^^)

같이 웃던 송이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아프다고 해서. 으엉엉!"


아이고. 또 시작이네요. 다른 사람 아프게 해놓고, 자기가 먼저 울어버리기.

엄마가 나 때문에 아프니까, 엄마 품에 안겨 있고 싶다?

T 엄마는 이거 인과관계가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들지만. 

아이 입장에선 엄마한테 안긴 게,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표현이었나봐요. 

그동안 친구를 아프게 한 걸 알고는 울어버렸던 것도요.

상대 입장에선 아주 황당한 사과죠. ㅎㅎ


그래도 아픈 엄마 신경도 안 쓰고 자기 놀기 바빴던 때보단 조금 자랐나봐요. 

자기 때문에 아픈 엄마가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안 좋았다는 거니까요. 

이렇게 아이는 조금씩이라도 자라고 있으니,

너무 서두르지 말고 잘 지켜보며, 좋은 사람으로 커갈 수 있도록 꾸준히 도와줘야겠지요. 

참, 개미만한 목소리긴 했지만 미안하다는 말도 이번엔 바로 했네요.

미안하다고 안 했다고 혼내기만 하고, 미안하다고 한 걸 칭찬해주는 건 잊었어요.

엄마도 아직 부족하고,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번 주말은 많이 춥네요.

꽁꽁 싸매고 눈썰매장이라도 가볼지, 실내에서 놀 만한 곳을 찾아볼지 벌써 고민입니다.

어디서든 아이는 땀에 머리가 젖을 정도로 신나게 놀겠지만요. ^^

그럼 이번 주말도, 육아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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