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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Dec 22. 2019

난임도 유전이 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도 난임일 수 있다는 건 생각도 안해봤는데...

시험관 시술도 세 번 내리 실패한 뒤.

'반복 착상 실패 검사'를 받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패 원인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한 것으로,

발견될 수 있는 문제는 총 네 가지다.


- 보통 사람보다 엽산을 잘 흡수하지 못하는 경우 ; 고용량 엽산을 먹어 보충

- 면역세포의 한 종류가 너무 활발해 수정란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경우 ; 면역억제제로 조절

- 자궁으로 혈류가 잘 흘러야 착상이 유지되는데 혈전 문제가 있어 이를 방해할 경우 ; 아스피린과 다른 주사들로 대처

- 염색체에 (일상생활엔 지장 없지만 임신은 어렵게 하는) 문제가 있는 경우 ; 이건 좀 상황이 복잡해진다...


검사 비용은 (내 것만) 88만원.

피 한 통 (실은 네 통) 뽑는 데 88만원이라니,

게다가 대부분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고 하니, 돈이 좀 아깝다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 돈 안 아까운 결과가 나왔다.

우리 부부는 네 가지 문제 중 세 가지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휴, 아무 문제 없었으면 괜히 돈만 버리는 거였는데 다행이네!


...


라고 생각했을 리 없다.

충격에 입이 떡 벌어지는, 그리고 맘대로 다물어지지 않는 뭔가 만화같은 경험을 처음으로 해봤다.

뭉크의 절규 같은 얼굴이었을 나를 보며 선생님은, 그래도 원인을 알았고 앞으로 잡아나가면 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부러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도 웃으며 진료실을 나오고 싶었지만, 것도 맘대로 안 됐다. 실은 울어버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내게선 면역과 혈전 문제가 발견됐다.

이건 비교적 처방이 명료하고, 앞으로의 시술 계획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울 뻔 했던 건, 남편의 피검사로 확인된 염색체 전좌 때문이었다.

 

전좌. 용어가 낯선 분들이 있을 거다.

나도 살면서 처음 들어봤다.

단순하게 말하면, 염색체 두 개가 서로 일부분이 바뀌어 있는 상태다.

두 염색체를 강아지랑 고양이라 친다면, 둘이 꼬리만 바뀌어 있는 상태랄까. 대체 왜 그러고 있는 건진 모르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론 필요한 유전정보들이 빠짐없이 있는 거니까 본인의 건강이나 생활에는 영향이 없는데,

수정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아빠, 엄마 염색체가 반쪽씩 만나 합쳐질 때는 손실(? 정확한 용어는 모르겠다)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경우 착상이 되더라도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이식 전에 배아 선별 검사를 통해 손실이 없는 배아만 골라내는 과정이 추가된다.


정상 배아가 나올 확률은 25% 정도라지만, 배아 열 개를 검사 보냈는데 정상이 하나도 안 나왔다는 후기도 봤다.


개당 수십만원인 검사비도 걱정이었지만, 힘들게 채취해도 정상 배아가 안 나오면 이식도 해볼 수 없다는 데서, 벌써부터 좌절감이 밀려왔다. 앞서 두 번의 채취에서 나온 (이식 가능한) 배아는 각각 세 개 씩 뿐이었으니, 이유 없는 좌절감은 아니었다. 딱 한 번만 더 채취하고 실패하면 포기하려 했는데, 이식도 안 해보고 포기할 수 있을지, 정상배아가 나올 때까진 채취를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건지, 머리가 아파왔다.


머리가 아픈 것과는 별개로, 가슴을 아프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선별 과정을 통과한 정상 배아는 두 가지 케이스 중 하나다.

염색체 문제가 없거나,

염색체 전좌를 그대로 물려받았거나.

두 번째 케이스일 경우, 아이는 겉보기에도 남들과 다르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만, 20년이나 30년이 흘러 아이를 갖고 싶어졌을 때... 우리처럼 난임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러니까, 난임이 (극히 일부의 경우지만) 유전될 수도 있단 얘기고, 이건 지금까진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얘기다.


자연임신한 친구가 샘나면서도, 걘 내가 겪은 일들 안 겪어도 돼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난임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지친 얼굴을 보면, 모두 안쓰럽고, 마음이 쓰리다.

하물며 우리 아이가, 늦게 만나 더 애틋할 그 아이가, 임신을 원하는데 되지 않거나 자꾸 유산이 된다면, 그게 우리 부부가 (알고도) 물려준 염색체 때문이라면... 곁에서 지켜보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아이한테 솔직하게 말은 해줄 수 있을까?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었어. 미안.


물론 난임이라고  불행하진 않을 거다.

난임으로 이렇게 고생할 거면 태어나지 말 걸 그랬어, 라고 생각해 본 적도 당연히 없다. (제일 힘들었을 땐 죽어도 상관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는 정작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2, 30년 후엔 의학 기술이 발달해 난임이 아주 쉬운 문제가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 그것도 먼 미래의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건 불안이 많은 성격 탓이다.

그래도 괴로운 건 괴로운 거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남편이 퇴근하길 기다렸다.

전화로 하기엔 너무 복잡한 얘기였으니까.


기다리며 다짐했다. 절대 남편을 원망하는 말은 하지 말자고.

남편의 잘못이 아니니까.

나보다 더 놀라고, 속상해할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 깨달았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는 걸.  

이 일이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부부의 문제'로 다가온다는 게, 그런 내 마음이 마음에 들었다.  


(희한한 건 시부모님에겐 괜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는 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좌는 돌연변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부모님을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남편은 예상보다 더 크게 충격 받았다. 낯빛이 하얬다가 붉었다가 검었다가,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하긴, 어느 날 갑자기 "당신 염색체에 문제가 있대."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 그래?" 라며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한참 검사지를 움켜쥐고 노려보기만 하던 남편의 첫 마디에 웃음이 터졌다.


"살면서 내 염색체 사진을 볼 줄이야..."


웃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고,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란 게 받아들여졌다.

이젠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들이 남아있었다.

- 다니던 병원, 다니던 선생님을 믿고, 필요한 처방들과 배아선별검사를 추가해 계속 시술을 받거나.

- 비임신, 유산의 가능성이 높더라도 지금까지처럼 선별검사 없이 (비정상 배아를 포함해) 이식 받거나. (난자나 배아의 갯수가 적은 경우 이렇게 진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 더 정확한 배아선별검사를 하고 있다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거나.

-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고통과 비용을 감수해야 할텐데, 이만 포기하고 시술을 접던가.


이게 한 달 반 전의 고민이고,

우린 첫번째 선택지를 택했고, 천만 다행히 한 번의 채취로 하나의 정상배아를 만났고, 다음 달에 이식할 예정이다.


남편에게, 당신 잘못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더 고생하게 됐으니 나한테 잘해달라고 응석을 부렸었다.

그 말이 씨가 됐는지 이번 채취는 앞의 두 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후유증이 심했고, 남편은 내 부탁 이상으로 나를 잘 돌봐주었다.


50키로 대 몸무게에서 사나흘 만에 5키로가 빠졌으니, 심하긴 심했다.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고, 이 글도 생각보다 많이 늦게 쓰게 됐다.


고생한 보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다음달엔 난임시절을 끝내고

우리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아이에게 난임을 물려주게 된다면,

아이는 우리를 많이 원망할까?


돌이켜보면 나도 나쁜 것들을 물려준 부모님을 참 자주, 가볍게 원망했었다. 넙적한 얼굴을, 지긋지긋한 비염을, 답 없는 곱슬머리를. 하지만 좋은 건 훨씬, 훠얼씬 더 많이 받았다는 걸 안다. 내가 가진 나쁜 것은 대부분 내가 만들었지만, 좋은 것은 다 부모님이 주신 거다.

생각해보면 나쁜 건 하나도 안 물려받은 완벽한 아이란 존재할 수도 없는 건데.

그러니, 용기를 내보자. 난임 뿐 아니라 다른 나쁜 것들도 물려주게 될 지 모르지만, 좋은 것도 충분히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보자고.


지금은 그저, 냉동탱크에 꽁꽁 언 채 잠들어있을 우리 아이를, 하루 빨리 품어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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