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살아남다
오전 10시, 나는 서울 동부지방 법원 카페테리아에 앉아 있었다.
아침 시간에도 카페 내부는 사람이 붐볐고, 나는 카페 밖에 있는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테리아 창문 밖 풍경은 평화롭고 한산했다.
가을 하늘은 푸르렀고 바람에 조금씩 나무들이 잔잔히 흔들렸다.
탁 트인 하늘을 보자, 한 시간 전 상황들이 마치 며칠 전 일어난 일처럼 아득해졌다.
내게 소리치는 대표에 맞서 언성을 지르고 몸을 부르르 떨던 내 모습은 없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초연 해지고 고요해졌다.
"아, 이제 정말 끝인 것 같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구나"
"이제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커리어로 당장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외국계 회사 계약직을 들어가야 할까?"
현실적인 고민 들이 줄지어 떠올랐다.
하지만 후회는 되지 않았다.
속에 곪아있던 말들을 그날 터트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전날 장이 꼬여서 응급실을 갔을 때, 수액을 맞으면서 누워있을 때,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랐다.
"나는 도대체 이 회사에서 어떤 존재인 걸까?"
"언제까지 내 노동은 착취될 것인가?"
이런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가며 당장 부딪쳐야 할 나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을 때,
친한 과장님한테 연락이 왔다.
"B대리, 빨리 와. 지금 대표님이 전 직원 회의실에 불러서 B대리만 기다리고 있어."
"아니요,, 과장님 전 생각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요."
"10분 안에 안 오면 무단 결근한 걸로 처리한데.. 빨리 와"
"아뇨.. 전 지금 갈 수가 없어요. 대표님께 말씀 전달해 주세요.."
"B대리 지금 우리 모두 1시간째 기다리고 있어.. 우선 빨리 와. "
"휴.. 알겠습니다. 지금 올라갈게요."
바쁜 전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다 같이 얘기를 하자는 대표의 독촉에 나는 힘없이 올라갔다.
15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과장님의 말과 달리 모두 제자리에 일을 하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다 해산한 모양이었다.
나는 바로 사장실에 들어가서 결판을 지어야겠다 생각했다.
" 대표님 저한테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대표는 내 예상과 반응이 달랐다.
"아니요. 없습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내가 쳐다보니깐, 대표는 한번 더 강조해서 말했다.
"없다고, 없다니깐? "
당장 소리 지를 기세로 쳐다보는 대표를 두고 주섬주섬 나는 내 자리에 돌아갔다.
당장 해고 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물러서는 대표를 보며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