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다음에는 감정이 아닌 기술로 맞설것이다.
마음속으로 대표와의 전쟁을 선포한 그날,
때마침 대표는 올해 수입 제품 선적 스케줄이 지연된 것을 이유로 우리 팀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나는 이때다 싶어 화두를 올렸다.
“대표님, 저번에 저희 팀 업무 조정을 다시 하신다고 하셨는데. 결정되셨나요?”
눈치가 빠른 대표는 한 발 물러섰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나는 멈추지 않고 선방을 날렸다.
건조하게 말하려 했지만, 이미 흥분해 말이 빨라지고 언성이 조금씩 올라갔다.
“후임 분한테 들었는데, 대표님께서 저랑 후임 분 업무를 180도 바꾸려고 하신다고… 그럼 제가—”
대표는 바로 한 톤 높여 맞받아쳤다.
“B대리, 내가 공식적으로 말했어? 아직 생각 중이라고 했잖아.”
나도 지지 않았다.
“아니, 이미 마음 정하신 것 같은데요?! 그럼 제가—”
그 말에 대표는 자존심이 상한 듯 언성을 확 높였다.
“아니, 왜 화내면서 말해?! 내가 공식적으로 말했냐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이성의 끈이 ‘탁’ 하고 끊어졌다.
“제가 대표님께 따로 말씀드렸잖아요!!!!
후임 분 질문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근데 또 업무를 바꿔서 인수인계하라고요?!
지금 계속 제 공백 대비해서 인수인계 하려고 하시는 거잖아요!!!!!!!!!!!!!!!!!!!!!!!!!!!!!”
.
..
...
내 언성에 놀란 대표는 갑자기 임원진을 모두 소환했다.
“야! 너 지금 나한테 소리 질렀어? 사장실 문 열어!!! 00 팀장, 00 차장 다 들어오라 그래!!! 빨리!!!”
임원진이 뛰어 들어오자, 대표는 갑자기 힘을 얻게 된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넌 내가 만만해!!!?
내가 공식적으로 말했냐고!!!
면접 때 말했지? 난 일 잘하는 사람 필요 없고 조직에 융화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넌 왜 자꾸 분위기를 깨고 조직 흐름을 망쳐?!!!!!!!!!”
몇 분 동안 고함을 듣고 있으니, 힘이 빠졌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혹시 정말… 내가 이 회사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인가?
“맞네요. 제가 이 회사 분위기를 망치고 있네요.
제가 이 조직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자 대표는 갑자기 당황한 듯 말했다.
“아니야,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들리지 않았다.
“제가 이 회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나가서 생각 좀 하고 오겠습니다.”
말을 던지고 사장실을 뛰쳐나왔다.
프롤로그에 말했던 서울 동부 법원 카페테리아에 앉아 나는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이켜보았다.
그렇다. 나는 하수였다.
세 가지 면에서, 프로페셔널하지 못했다.
1)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은 사항을 먼저 꺼냈다.
후임을 통해 들었어도, 대표 입에서 공식적으로 말하기 전까지 참았어야 했다.
내가 먼저 화두를 꺼내도, 대표는 언제든 "나는 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라고 발 빼기 쉬웠다.
2) 전쟁을 선포하더라도 언성을 높여선 안 됐다.
조직에서 아랫사람이 먼저 목소리를 높이면 내용이 맞든 틀리든 '평판'이 악화된다.
감정 없이, 팩트만 건조하게 차근차근 말했어야 했다.
차라리 상대만 흥분하게 두는 게 더 현명했다.
3) 후임에 대한 고충을 후임 앞에서 얘기하면 안 됐다.
그동안 후임의 질문 공세에 후임에 대한 스트레스가 누적돼 있었고, 그럴 때마다 "경력"직을 뽑아주지 않은 대표에 대한 원망이 커져 갔다.
그날 터진 건,, 사실 예고된 폭발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건 대표와 단둘이 이야기해야 할 내용이었다.
그날 감정이 폭발하여 후임 앞에서 '험담' 같은 말을 하게 된 것은 분명 프로 답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돌이켜봐도, 그날의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 행동은 미숙하고 어리석었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음번에는 더 단단하고 성숙한 방식으로 갈등을 마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