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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 갈아 만드는가

by 은수달


"대기접수도 마감이라고요?!"


몇 년 전, 쇼핑하러 간 김에 L 베이글을 먹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후 2시 무렵, 대기조차 마감되어서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러다 며칠 전에 L 베이글에서 일하던 직원의 과로사 소식을 접했다. 주 80시간 근무라니... 일주일 내내 근무한다고 쳐도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 셈이다. 거기다 식사도 거른 채 피로가 누적되어 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1104102400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밥벌이라는 목줄에 잡혀 장시간 근로를 강요받는 건 단지 L사 직원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 식품회사의 끼임 사고부터 자동차 업체의 디자이너 자살 사건까지. 사망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를 사지로 몰고 가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잔업 거부해서 사장님한테 찍혔어요. 여긴 잔업 거의 없어서 좋았는데..."


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직한 직원이 털어놓은 적이 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선 잔업을 해서라도 마감일을 지키거나 생산성을 높이는 게 유리할 것이다. 나도 아주 가끔 할 일이 남았을 때는 평소보다 늦게 퇴근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잔업수당을 쳐준다고 해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도, 생명을 단축하면서까지 일하고 싶은 근로자가 얼마나 될까.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은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 평균 연간 노동시간은 1,901시간으로 5위를 차지한다. 주 52시간 근로상한제 등 제도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복지국가까진 아니더라도 무고한 생명을 갈아 넣어 기업이나 사회가 유지된다면, 결혼과 출산을 꺼릴 뿐만 아니라 극심한 근로 환경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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