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중히 감시받는 부품

by 은수달


그곳에는 나를 주시하는 창문도 없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함정도 없으며, 뒤에서 내 목덜미를 노리는 바늘도 없다.


-보흐밀 흐라발,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오래전, 영화 <트루먼쇼>를 보면서 우리의 삶도 연극무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거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상이 반복된다.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멍하니 어딘가를 쳐다보거나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이렇게 평생 일만 하다가 죽는 건 아닐까? 가끔 내가 저기 놓여있는 부품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사회체제 안에서,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감시받고 있다. 하루 평균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보안 카메라는 얼마나 될까. 적어도 100대는 넘을 것이다. 덕분에 치안이 좀 더 강화되고, 범죄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유용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패놉티콘(panopticon)처럼, 많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보이지 않은 감옥'이 도처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현대 문명에서 살아가려면 이러한 감옥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존재하는 걸까.


시간이 갈수록 감시 체계는 점점 더 교묘해지고 복잡해진다. 감시받고 억압당한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지고, 자발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복종한다. 취업을 잘하기 위해 성형이나 다이어트를 하고,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명적인 약점을 숨긴다. 부모가 자녀를 감시하고, 교사가 학생의 자유를 제한하고, 연인이 상대를 억압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한다.



"칼답은 기본이고, 영상통화로 어디서 누구랑 무얼 하는지 보고해야 했어요."

"매일 통화하거나 얼굴 보는 걸 강요당했어요."

"아이들 키우고 나서 어렵게 취직했는데, 남편 반대가 너무 심해서 결국 그만뒀어요."


본인의 불안을 상대한테 전가해서 구체적인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당장 불안은 해소되겠지만, 또 다른 형태의 불안이 생겨난다. 지나친 불안은 괴물을 만들고, 괴물은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도 집어삼킨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에 탑승하게 된다. 평생 무언가를 강요받거나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칸에 속할 지 정도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옆좌석을 함부로 침범하거나 마음대로 자리를 바꾸는 대신,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지켜내며 완제품이 되는 상상을 해보는 건 어떨까.




*패놉티콘은 그리스어 'pan'(모두)와 'opticon'(보다)의 합성어로,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감옥 형태이다. (위키백과 참고)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6화분노의 부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