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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블랙독

by 은수달

블랙독,


이 녀석은 별 이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놀라게 하곤 했다.


-매튜 존스톤, <굿바이 블랙독>


내 주위를 맴돌며 끊임없이 유혹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존재. 그것은 바로 우울증이다. 특정한 사람들의 증상이라 여겨졌던 우울증이 언젠가부터 많은 이들을 괴롭히는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뭐? 아직 이십 대인데 자살을 했다고?"


몇 년 전, 지인의 남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과 함께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장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던 그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대화도 피한 채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사회 초년생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 지켜보기만 했던 그의 가족은 어느 날 아침, 비극의 현장을 목격해야만 했다.


얼마 전, 4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자살은 그동안 10대~30대의 주요 사망원인이었으나 이제는 40대까지 확산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 참고할 것)



https://www.mk.co.kr/news/society/11429034


암도, 교통사고도 아닌 자살이 왜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게 된 걸까. 왜 우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인간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고,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성장하거나 좌절한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에 따라 변화를 받아들이고 회복하는 방식이 다르기 마련이다.


뚜렷한 이유 없이 식욕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날들이 반복된 적이 있다. 주위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채 혼자만의 동굴에 갇혀 지냈다. 그 당시엔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우울증'인 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심해져 갔고, 결국 전문가의 손길을 요청했다. 처음 만난 정신과 의사는 내게 문제가 있다며 권위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고, 운 좋게 나의 진짜 문제 혹은 원인을 발견해 줄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몇 달 동안 꾸준히 상담받으면서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초자아의 압박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던 자아가 비로소 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기하면서도 두려웠다.


'이래도 되는 걸까?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거나 상처 주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상대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데 믿어도 되는 걸까?'

'나만 잘하면 다들 편할 텐데...'


내 안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은 희미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굿바이 블랙독>에서 나온 구절처럼, 부정적인 기운을 품는 대신 가능한 멀리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블랙독을 키우며

산다는 것은


단순히

의기소침해지거나

슬퍼지거나,

우울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모든 감정이 메말라버릴 수도 있다.


위의 구절처럼, 수시로 변하는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어 외면하다 보니 어느새 감정이 메말라버렸다. 슬픈 영화를 봐도 감흥이 없었고, 주위의 고통뿐만 아니라 나의 고통조차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숨은 쉬지만 존재하지 않았고, 살아있지만 죽어지냈다.


밝고 당당했던 소녀는 주위의 기대로만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우울증 환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점점 가면에 익숙해졌고, 가면이 진짜 자신이라고 믿게 되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쓸 필요는 있다. 하지만 '나'라는 본질을 잃어버리면 그 가면조차 무의미할 것이다.


당신의 존재를 갉아먹는 '블랙독'을 그냥 내버려 둔 것인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쫓아버릴 것인가.



http://aladin.kr/p/HNVfG


http://aladin.kr/p/jyL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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