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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Jun 12. 2024

그렇게 번아웃이 내게로 왔다


언제부터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을까.


컴퓨터나 휴대전화가 과부하에 걸리는 것처럼 사람 역시 지나치게 사용하면 오작동을 하거나 기능을 멈추곤 한다.


몇 년마다 찾아오던 불청객은 적당히 넘어가주자(?) 재미를 붙였는지 6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냥 힘든 게 아니라 평소처럼 밥 먹고 일하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 몇 배로 힘들게 느껴진다. 출근길에 한숨을 내쉬고 퇴근길엔 남은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번 달에 퇴사하기로 한 직원부터 손목 통증을 호소하는 직원, 그리고 수시로 뭔가를 요구하거나 부탁하는 상사 혹은 직원들.


"밤 식빵 좀 사 올게요. 혹시 사장님 오시면 근처에 갔다고 얘기해 주세요."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빵 가게의 밤 식빵을 한 번 맛본 뒤로 계속 생각났고, 방금 구워져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어, 밤 식빵 없나요?!"

"네, 좀 전에 다 팔렸어요."

"네?! 일부러 시간 맞춰 온 건데..."


순간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다른 빵이라도 사려고 둘러보는데, 다른 직원이 아까 전화받고 두 개 미리 빼두었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굿즈를 어렵게 구한 팬처럼 저절로 목소리가 밝아졌다.





완벽주의적 성향은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괴롭힌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으니 저도 모르게 무리하게 되고, 그걸 지켜보는 지인들 역시 심적 부담감을 가지게 된다. 안다, 때론 모든 걸 잠시 멈추고 쉬어야 한다는 걸. 하지만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된다면 세상에 두렵거나 힘든 일이 얼마나 될까.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고 사우나로 향했다. 당장 집에 가서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피로부터 푸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느릿하게 샤워를 하고 탕에 몸을 담근 후 때를 밀었다. 옆에 계신 분이 등을 밀어주겠다고 했지만, 부드럽게 거절했다.


분식점에 들러 튀김을 먹고 순대는 포장해 왔다. 대강 짐만 정리해 놓고 새로 구입한 토퍼를 깔았다. 폭신한 촉감이 마음에 들었다. 눕자마자 그대로 눈을 감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자는데도 잠이 오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는가. 먹고 있는데도 허기가 지는 것처럼. 잠에 굶주렸던 난 작정한 것처럼 그렇게 숙면의 동굴로 기어들어갔다.



번아웃 따위 이제 무섭지 않다. 아니, 자주 봐서 정들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너무 자주 보진 말자. 가끔 봐야 애틋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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