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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Dec 10. 2024

추상적인 공포: 알베르 카뮈, <페스트>


"공익에 대해 말씀하시려는 거군요. 그러나 개인들이 행복해야 공익도 이루어지는 겁니다."

의사는 다른 생각을 하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말했다.


페스트가 더욱 기승을 부려 사망자 수가 일주일에 평균 오백 명에 이르는 요즘, 병원에서 보낸 그날들이 정말 추상적이었을까? 그렇다, 불행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는 추상에 신경을 써야 한다. (페스트, 108쪽)


코로나 19 바이러스 덕분에(?) 위의 작품을 세 번이나 읽었고, 독서 모임에서도 두 차례 다루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불안과 공포,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재고해 보고, 카뮈가 다룬 시대의 암울함보단 그나마 지금이 낫다고 위로하게 되었다.


1947년에 출간되어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고전 중 하나이다. 프랑스 소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염병의 재앙과 그로 인해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지는 인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명작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허위와 관례를 고발하고 인간이 나아가야 할 연대의식의 지평을 보여주는 카뮈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답게 현대인이라면 죽기 전에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오랑에서는 시간이 없고 생각할 수도 없어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13)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바쁘게만 흘러가던 풍경은 페스트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스쳐 지나갈 질병쯤으로 여기던 사람들은 '코타르'라는 환자를 계기로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라는 전보를 받게 된다.


우리 시민들은 순종했고, 흔히 말하듯 적응했는데,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의사 리외는 바로 그것이 불행히며,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은 절망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214)


지독하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면,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 혹은 권태보다 낫지 않을까. 살아남기 위해 국가에 순종하고, 타인을 공격하거나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 페스트라는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작품 속의 인물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그는 오랑 시민의 모순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시민들은 자기들을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따뜻함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 따뜻함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멀어지고 있다. 이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이웃 사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스트를 옮길 수 있고 방심한 틈을 타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231)


코로나 시절, PCR 검사를 받으려고 보건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문득 재난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알베르 카뮈가 묘사한 페스트라는 전염병은 코로나보다 몇 배 더 무섭고 잔혹한 추상이 아닐까.


우리는 받아들이기 힘든 불행 앞에서 때론 현실을 부정하거나 미화시킨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할 때는 정신 바짝 차리고 추상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카뮈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품 속 구절은 알베르 카뮈, <페스트>(문학동네, 2015)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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