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그미 May 26. 2024

나의 악취미-남편의 이해를 연료로 삼은

안주安住와 경주傾注 사이에서 흔들리는 게 그저 어리석음 때문인 걸까

이삼 일이면 심심치 않게 뉴스에서 다루는 내용이, 공무원 처우개선이나 저연차 공무원의 퇴직이다. 내가 딱 그 저직급 저연차 공무원이라서 알겠다. 왜 떠나는지.

나도 떠나야 하는 것 아닐까.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 어디로 떠나야 하나. 작년부터 진지하게 해 온 고민이다. 그리고 작년부터 어느 자격증 시험에 관심을 두었다. 시험장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시험과목 중 한 과목도 제대로 일별하지 않은 장식 같은 머리를 달고, 임신 5개월 차의 봉긋한 배를 끌어안고. 가능성도 없이 미련한 짓이었다. 아는데도 다녀왔다. 이렇게 경험을 쌓고, 내년부터 진지하게 준비해 보자 하면서.

그 가짜 수험생활을 돕기 위해 저녁 육아를 남편이 온전히 맡다시피 하고, 임신한 나를 대신해 큰애와 잤다. 작은 아기침대에 맞춰 큼직한 몸을 구부린 채 자는 그의 모습은 자못 안쓰러웠는데도, 고마운 줄을 알면서도, 나는 책을 보기보다 드러누워 홈캠으로 아기와 남편을 구경하고, 웹 서핑을 하다가 잠드는 철없는 밤을 여러 번 반복했다. 남편이 모를 리 없다, 공부하는 사람의 책상과 아니하는 사람의 책상의 차이를. 그는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수험생활을 한다고 덤비는 나의 '헛짓거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결혼 직전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고민 끝에 공무원시험에 응시하기로 하는 바람에, 신혼은 수험생활과 함께 시작했다. 무려 3년을 응시했다. 시험마다 한국사 과목에서 '매국노' 점수가 나왔다. 마지막 시험에서 간신히 나라를 팔아먹지 않는 데에 성공하여 임용될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남편은 굳이 묵묵하게 곁을 지키지도, 나를 매섭게 재촉하지도 않았다. 부를 하면 하는구나, 안 하면 안 하는구나 했다. 정작 남편은 쉬지 않고 일했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어디를 가든 나와 함께 놀러 다녔다(남편은 학교에서 일한다).

어떤 밤에는 남편이 잠들기 전에 '내일은 출근해야 하네. 출근하기 싫다'라고 말했다.

그런 날 나는 '좋겠다, 출근할 곳이 있어서.'라고 답했다. 집에만 있는 것은 심심했다.

하지만 약간의 불안함 외에는 모든 것이 편안했다. 나는 그걸 깨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귀찮았다. 아침이면 잠결에 눈을 부스스 뜬 나에게 다녀오겠다며 포옹하고 입맞춤을 한 뒤 길을 나서는 남편, 저녁이면 칼퇴근하고 돌아와 내가 햄스터처럼 집안을 어지르기만 했어도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나를 안아주는 남편이 하루하루를 다정하고 따뜻하게 채워주는데, 왜 나가야 하는가? 바깥은 분명 집보다 추울 텐데.

돈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퇴사한 회사에서 조금씩 일감을 받았더니 심각하게 아쉽지가 않았다. 나 자신을 '프리랜서'라고 표현하면 그럴싸하기까지 했다. 애매함이야말로 인생의 적이다. 제대로 깨어 부수고 싶어지지 않는 한 애매한 만족은 새로운 것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애매한 수입, 애매한 자유시간, 애매한 나른함, 30대 초반이라는 애매한 젊음. 나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평생을 그렇게 지낸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당분간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사실은 평생 그렇게 지내라고 해도 할 수 있었다.)

일은 돈이 들어오니 스스로 했다. 하지만 공부는 스스로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소장하고 있던 개론서를 펼쳐놓은 채 만화 따위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하필이면 스마트폰이 너무 스마트해서, 스크린타임을 자꾸 보고하고, 그걸 보고하는 팝업 화면은 하필이면 남편과 함께 내 스마트폰으로 놀 때마다 여봐란듯이 나타나곤 했다. 나는 뻔뻔하게 침묵했고 남편은 침착하게 묵인했다.


그 방만한 시간의 즐거움을 나 홀로 누리던 어느 날, 저녁 산책을 하다가 남편이 말했다. '우리는 언젠가 아이를 낳을 건데,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이거나, 유치원에 다닐 즈음만 되어도, 엄마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대. 주영이가 나중에 아이에게, 열심히 해서 무언가 이룬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이제 정말 이렇게 지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남편이 묵인하는 시간도 이제 점점 끝을 향하려는 것 같았다. 남편이 그런 마음으로 말한 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나 자신이 이제는 나를 내버려 두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험은 쉽게 붙지 못했다. 강의를 마다하고 혼자 책으로 해결하겠다는 방법도 한참 잘못된 선택이기는 했다. 하지만 무슨 병에 걸려 전두엽이 반쯤 기능이 저하된 것처럼, 공부를 하기가 어려웠다. 힘든 시간이었다. 몸이 고되지 않아도, 마음이 호되게 다치지 않아도, 힘든 시간이었다. 세상을 느끼기 위해 밖으로 향하던 모든 촉수를 스스로 잘라버리고 잠든 동물 같았다. 리고 가끔 촉수를 세워 스멀스멀 바깥의 온도를 가늠해 보는. 그때 나는 남편 뒤에 숨어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집을 쓸고 닦거나 내가 쓸고 닦은 집에서 나만을 위한 생활을 하는 나날에 정말이지 진심으로 안심하며 지냈다. '아직 공부하는 중이야?'같은 물음을 만나지 않으면 나는 더없이 그렇게도 쭉 살았을 것 같다.


어느 날,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차서 임신을 계획하고, 그대로 아이를 가졌다. 나는 여전히 백수였는데 그걸 저질렀다. 남편은 조금 심란한 것 같았고, 나는 자주 드러누웠다. 의를 켜놓고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드러눕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여러 번, 역꾸역 버텼다. 시험장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잘 봤다. 그래서 간신히 직장을 다시 구하게 되었다.

다시는 수험생이 되지 않으리라!

남편을 만나기 전, 대학을 마친 뒤에도 3년을 '수험생활'로 흘려보냈다. 그 시간이 수포로 돌아간 후 조금씩 일을 하다가 다시 수험생활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처음부터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겨웠다. 일하는 기간이 짧으니 직장생활을 오래 한 친구들에 비해 경험의 깊이도, 인간에 대한 이해도, 사회생활의 요령도, 모두 모자란 것 같았다. 부끄러웠다. 돈을 많이 벌거나 모은 적이 없으니 마음 맞는 친구와 여행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아쉬웠다. 그러므로 내가 보낸 시간의 양과 질에 모두 만족할 수가 없었다. 다시는 책에 코 박고 쉽게 휘발되어 버릴 지식을 채우기 위해 바둥거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웬걸? 막상 직장생활을 다시 하고 보니 이전 직업들과 현재 직업을 자꾸 비교하게 되었다. 처우는 지금의 직업이 가장 좋기야 하겠지만, 복지제도가 다양하고 법정 휴직제도를 쓰는 데에 지장이 없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좋은 직장이긴 하겠지만, 과연 이게 다일까? 업무에 적용해야 하는 여러 가지 법령,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꿈꾸지 않는 조직, 복잡한 업무처리 순서, 끝없이 생산해야 하는 영양가 없는 공문서 등, 업무 자체를 위한 시간보다 업무의 업무를 위한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모든 것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기 위해 바쁘게 애써 보지만, 퇴근은 쉽지 않다. 내가 가져 본 여느 직업보다 열심히 일해야 하고, 힘들게 일해야 하는데, 손에 쥔 돈은 턱없이 적다.

똥 밟았다. 잘못 걸렸다. 세간의 말에 속은 것 같다. 안정성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 그 마음이 가득 차올랐지만 출산과 육아라는 인생 과업을 해내다 보니 쉽지가 않다. 그래서 계속 망설였다.

나는 가진 게 부족하다. 부족한 체력, 부족한 시간, 부족한 돈. 수험생활을 하려면 당장 강의비부터 필요한데 어쩐다?

나는 많이 가졌다. 육아동지인 남편, 토끼 같은 자식들. 내가 시간과 사랑과 정성을 내어 돌봐야 할 내 가족이다.

그러므로 계속 망설였다. 그러다가 결국 작년에도 임신한 몸으로 시험장을 기웃거리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 시험에 응시한 것은 '응시함'이 아니라 '시험장을 방문함'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한 해가 지나서도 나는 수험생이 되지 못했다.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깨끗하게 단념한 것도 아니다. 대체 뭘 하는 거지? 나에게 묻지만, 나도 답할 수가 없다. 자신에게만큼은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나 자신에게도 우물쭈물하는데, 어쩌면 좋을까.


올해 3월, 시험 접수를 해 두고 나는 진심으로 곧고 뜨겁게 결기 어린 마음으로 메모를 적었다.

'나는 수명이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해내고 말겠다.'

그리고 그 결기 어린 마음에 걸맞은 태도로 비타민과 피로회복제 등을 입에 때려 넣으며 '2주' 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다. 2주 동안, 감기에 걸려 앓으면서도 최대한 말똥 하게 깨어 학습을 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꺾이고 말았다. 아이들이 차례로 아프게 되면서부터다.

이건 아닌 건가? 이 시험은 시작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나는 이제 나이 들었고, 아이들은 어리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게 아닌 건가? 아이들을 우선에 두고 공부를 후순위에 두더라도, 안 되는 걸까? 어쨌거나 상황이 도와주지 않은 것뿐인데 마치 운명이 허락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과하게 파고들기는 청승맞은 일이라, 나는 당분간 마음과 책을 접고 아이들 돌보기에 힘썼다.

결국 지지난 분리수거일에, 몇 권 안 되던 수험서를 종이류에 내놓고 말았다.


난 왜 그랬을까? 수험생활을 오래 한 경험이, 나 자신을 '가능성 있는 나'에 중독되게 만들어버린 것일까? 하지만 내 직업적 현실은 객관적으로 봐도 타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내부에서 개선될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면, 나는 다른 우물을 파기 위해 노력함이 맞는 것 아닌가? 나는 내 삶을 더 낫게 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이 수험생활은 아닌 걸까? 이렇게 두 번의 시험기회를 날렸다. 벌써 햇수로 2년이 지난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무것도 못 했는데.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더 나은 삶을 바라고, 그걸 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하고 싶지만, 그 '현실적인 노력'이 나의 '현실'과 불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수험생활을 다시 할 생각 따위는 하지 말아야 할까? 지금까지 해온 방법이, 알아 온 방법이 그것밖에 없으니, 그걸로라도 어떻게 해 보기 위해 지금부터 다시 안간힘을 써야 할까? 아니면 차라리, 정말 '나의 현실'과 정합하게, 얌전히 복직하여 적게나마 받는 봉급에 감사하며, 바라던 삶과는 다른 방향으로 '치열하게' 살아야 할까? 또 다른 선택을 탐색하는 피로는 접어 두고. 새로운 공부와 경쟁에 대한 두려움은 느낄 필요도 없게.

이제까지 이룬 것 속에서의 안주와, 이제까지 이룬 것을 다지려는 노력의 경주. 혹은 이제까지 이룬 것도 다시 무너뜨리고 새로 시작할 위험한 패기와, 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을 이루려는 노력의 경주. 희망과 안분지족 사이에서, 나는 아직도 갈등한다. 오늘도 고민한다. 이 고민을 하며 나 자신을 자꾸 혹독하게 평가하다 보니, 나도 나 자신을 자꾸 말려버리는 것 같다. 바람이 분다. 내 생각의 속살이 살살 부르튼다. 바람이 속살에 더 든다. 말랑하던 속살이 자꾸 딱딱하게 말라간다.



이전 01화 프롤로그-하루,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