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들을 싫어한다

나는 불화하는 인간이다, 그게 마음에 든다

by 심그미

나는 요즘 누가 싫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 놓고 타인을 싫어한다. 싫으면 싫은 거다. 마음이 싫어하는 대로 싫어한다. 누구를 미워하는 내 마음에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내 마음이 그럴 만해서 싫어하는 거다. 감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내게 힘이 있을 때 가능하다. 힘은 권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를 지탱하는 힘을 가리킨다. 그건 자존감, 자신감, 자긍심에서 나온다. 내가 다른 이보다 낫다고 여겨서가 아니다. 남들이 틀리고 내가 맞아서가 아니다. 나도 충분히 옳다. 그런 생각이 있어야 감정을 품는 것도 가능하다.


예전 부서에서 같은 팀 직원이었던 A. 또래의 나이에 여러 직업을 돌고 온 나와 달리 대학 졸업 후 칼같이 합격하고 임용되어 벌써 9년 차 경력을 자랑하는 직원이었다. 동에서, 구에서, 사업소에서 여러 보직을 거친 덕에 짬밥이 대단했다. 처음에는 그녀도 나도 서로에게 또래라는 점에서 호감을 갖고 대했던 거 같은데, 언젠가부터 내게 뾰족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말에 딴지를 걸다가 어느새 사무실에서 면박을 주고 짜증을 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말 붙이기 어려운 관계가 된 것은 물론이고, 팀에서 함께 식사하러 가는 날이면 마음이 불편해서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팀원들은 그녀와 내가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다들 귀가 있으니 그녀가 내게 신경질적으로 구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내게 다가와 위로를 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나도 저번 팀에서 나한테 유독 무섭게 구는 분이 있었어요. 힘들었어. 주사님도 힘들죠? 다 지나가요."


A가 내게 좋게 대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미워하지 않으려고 내 나름 노력했다. 그녀가 내게 호의를 베풀던 그때에, 내게서 기대한 뭔가가 있었을 텐데 내가 그에 부응하지 못했던가 보다, 하고. 그러니 내 탓도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미워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힘든 것은 힘든 것이었다. 몇 가지 호의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고 해서 정도 이상으로 예의 없이 군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맞았다. 언젠가부터 내가 단순한 질문만 해도 '기본이지!'라며 언성을 높여 짜증을 내곤 했다. 그녀는 기본이 너무 많았다. 누구 맘대로 모든 것이 기본일까. 기본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기본이라고 면박 주던 것들은 전부 다 만들고 학습한 규칙들 투성이었다. 그녀가 나보다 오래 일하면서 학습했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익숙했을 것들. 이제 일을 배우는 내게는 낯설기도 한 것들. 그걸 왜 버텼을까? 무엇보다 내가 힘든 것이었는데. 내가 남의 기분을 먼저 생각해 예전엔 저 사람이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붙잡고 그렇게까지 미워하지 않으려고 버틸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의 마음이 이미 나를 싫어하기로 변했는데, 나는 무엇에 미련을 가졌던가.


어느 날 그 시절 같은 팀에 있던 B와 만났다. B가 나더러 '그때 고생 많이 하셨지요'라고 했다. 내가 휴직해 떠난 후 B가 A의 새로운 희생자(!)가 되었다고 한다.

나를 향한 변질된 악감정만 문제인 것이 아니었다. A는 그저 자기보다 만만한 사람이 있으면 함부로 대하는 행동에 반성이 없었던 사람이었던 건 아닌지. 나는 실망했다.

부서가 바뀌고 그 사람과 마주칠 때마다 그래도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곤 했으나, 결국 이제는 서로 알은체도 하지 않는다.


복직하고 만난 C팀장은 30대 초반으로, 본인의 팀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었다. 팀원들이 대부분 젊어 팀장과 나이차가 그리 크진 않았는데,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팀장은 평판이 좋지 않았다. 강약약강의 표본이며, 선민의식이 있고, 하급자에게 무례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그를 흉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어느 정도 동정심을 가졌다. 젊은 나이에 자기보다 연장자인 사람들을 데리고 일하느라 제 나름 고충이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이 팀장과 몇 가지 주옥같은 일화를 겪은 뒤로 이 사람과는 다시 상종할 일이 없기를 바라게 되었다.


우리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께서 상을 치를 일이 생겼다고 한다. 국장님께서 조문차 가신다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C팀장이 국장님을 모시러 나가려던 중에 내 자리에 들러, 국장님 성함이 인쇄된 부의금 봉투를 찾기에 꺼내드렸다. 그걸 받고는

"이것만 주면 어떡해요? 돈은요?"라고 되묻는다.

돈이라니? 부의금을 미리 준비했어야 한다는 건가. 어디의 누구를 조문하러 가는지 알지도 못한다고 면박을 준 것도 모자라(아무도 나에게 공유해주지 않았고, 업무 출장 차 나간 시간에 들르시기로 한 터라 그 건으로 출장을 따로 기안하지도 않았다), 미리 지시한 적도 않은 돈타령이라니. 부서의 살림은 서무님이 하시니, 그분께 일단 여쭤보자 싶어서 발걸음을 돌렸다.

"인수인계를 다시 받아야겠어요!"

내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기분이 팍 상해서 돌아봤더니 제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부의금 봉투를 채우고 있었다. 서무님께 가서 이런 일에 부의금을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규정상 직원 경조사 외에는 부서 경비를 쓸 수 없어요. 외부 민간단체여서 못 줘요."

대화를 마치고 돌아보니 팀장은 달아나듯 출장을 떠난 후였다. 저 팀장이 규정도 모른 채 직원을 볶다니. 규정대로 혼을 내도 저런 식으로 비꼬면 불쾌할 판인데 본인이 잘못해 놓고 남을 잡도리하려고 들어?

팀장은 본인이 규정을 잘못 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내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팀장은 사무실에서 앉은 채 쌍욕을 해서 더욱 눈총을 샀다. 타 부서에서 온 서류가 간단해도 욕을, 일하다 말고 감탄사 쓰듯 욕을, 추임새 넣듯 쌍욕을 했다. 파티션 너머에 과장님이 앉아 있어도 거리끼지 않았고, 목소리를 낮춰 남몰래하는 것도 아니어서 건너편 팀에 앉은 사람까지 쌍욕이 들린다고 했다.

무례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놀라며 믿기 어려워했다.

누군가 참다못해 국장님 귀에 이 이야기가 들어가게끔 만들었다. 국장님이 듣자마자 사실인지 확인한 뒤, 팀장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 후로 C팀장이 사무실에서 욕을 하진 않게 되었다.

이 이야기마저도 강약약강의 일화였다. 팀원들 듣기에 불편할 거라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던 건가? 국장님이 나무라고 나서야 행동을 고쳐먹다니. 그리고 그 한마디에 그토록 쉽게 고쳐먹을 수 있는 행동이었으면서. 상급자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떨고, 하급자를 대하는 데에는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를 잊을 만큼이었다는 것.

그 사람의 얕음이 보이는 일화로 남았다.


나는 한동안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그 모든 생각을 스스로 금지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나 자신을 지독하게 싫어했고 남에 대한 호오를 갖는 기준조차도 폐기했고 나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다. 내가 겪은 타인의 전부를 보려고 했고 그전에 생기는 판단은 모두 무시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을 억누르려고 했다. 내가 덕이 있어 인내한 것이 아니라, 나는 내 판단을 믿지 않았다. 나와 불편한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어느 쪽의 노력이 짧았던 걸까? 지금 나는 사람을 마음 놓고 싫어하거나 미워한다. 타인이 나와의 상호작용에서 좋았느냐, 안 좋았느냐를 생각한다. 내 마음에 드느냐, 아니냐를 생각한다. 꺼려지는 감정이 들면, 그 감정에 따른다.


누군가를 흉본다는 것은, 그 대상과 나 사이에 선을 긋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흉을 본다는 것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다.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자연스레 이런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흉보면서 어떤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은가를 확인한다. 인식을 확인하고 공유하면서 도덕과 풍속의 울타리는 더 단단해진다. 공유하는 동안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은 하지 않는 우리'가 만들어져 나간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져 가는 '우리'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이제는 그런 결속력이 생길까 봐 대화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끈끈하게 '도덕적인 우리들'을 만들지 않아도 나 스스로 사람을 좋아하고, 미워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을 나의 기준대로 판단하고 좋아하거나 미워할 수 있는 것도 마음의 힘이라면 힘이다. 나는 힘이 생겼다. 내 기준을 믿고 내 마음을 따를 수 있는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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